방황하는 미국 이민자·유학생 이야기 9편 수록
뉴욕 반듯한 거리서도 헤매는 사람들…문지혁 소설집 '고잉 홈'
"앰뷸런스 부르는 순간 만 달러야. 입원 몇 달 하면 수십만 달러짜리 빌이 날아와서 집안이 망한다던데? 미국 사람도 돈 없으면 집에서 직접 상처를 꿰맨다잖아.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늘 사실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은 루머들이 '친구의 친구' 이야기로 둔갑해 사실인 양 떠돌았다.

"(단편 '나이트호크스'에서)
문지혁의 단편소설 '나이트호크스'는 미국 뉴욕의 한 가난한 한국인 유학생 부부의 이야기다.

타국에서의 궁핍하고 고단한 생활로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부부. 신년을 맞아 오랜만에 준비한 스테이크와 와인을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아내는 부엌의 접시가 깨지며 손목에 날카로운 자상을 입는다.

부부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면 비용을 줄여 치료할지를 고민하며 한인 약국과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 돌아다니고, 화자는 불안감과 비참함, 죄책감이 복잡하게 얽힌 감정에 괴로워한다.

'나이트호크스'라는 이 단편의 제목은 이들 부부가 우여곡절 끝에 치료를 마치고 나와 갑자기 느낀 허기에 찾아들어간 식당의 이름이다.

또, 이 식당 한켠에 걸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제목이기도 하다.

호퍼의 그림 '나이트호크스'(Nighthawks)는 인적이 끊긴 도심의 밤, 길모퉁이에 환하게 불을 밝힌 식당의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네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한 공간에서 함께 밤을 지새우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대화도 하지 않는다.

"난 항상 저 남자였어."
그림 속 등을 보이고 홀로 돌아앉은 쓸쓸한 뒷모습의 남자를 가리키며 아내는 말한다.

문지혁 신작 소설집 '고잉 홈'에는 이처럼 타국에서의 낯선 현실과 불안한 미래에 방황하는 이방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다.

"나는 가로세로 반듯한 길에서조차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이구나.

"
수록작 '골드 브라스 세탁소'의 주인공 유학생 영은 뉴욕 맨해튼의 잘 구획된 거리에서도 툭하면 길을 잃고 헤맨다.

한 유학생 모임에서 인연이 돼 연인으로 발전해가던 박사과정 남자가 자신뿐 아니라 유학생 커뮤니티 여기저기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여러 여성에게 추근댔다는 것을 알게 된 영은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나는 왜 이렇게 헤매기만 할까.

이외에도 소설집엔 미국의 한인 기독교 커뮤니티에 대한 화의와 환멸 속에서 각기 다른 믿음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는 '뜰 안의 볕', 유학생 부부가 결혼 1주년을 기념해 떠난 여행지에서 벌어진 잔혹 판타지물인 '핑크 팰리스 러브' 등 9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뉴욕 반듯한 거리서도 헤매는 사람들…문지혁 소설집 '고잉 홈'
전작 장편 '초급 한국어', '중급 한국어'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작가는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한 경험을 핍진하게 녹여냈다.

미국에 터를 잡고 사는 한국인 이민자나 유학생 이야기들을 다뤄온 그의 문학 세계는 어느덧 문지혁이라는 작가 고유의 정체성과 스타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고잉 홈' 수록작들은 '세상은 힘들지만 그래도 살만해요'라고 속삭여주는 듯한 결말이 주는 위로의 힘이 적지 않다.

가령, 단편 '골드 브라스 세탁소'는 주인공이 뜻밖의 위안을 얻게 된 한인세탁소 간판의 네온사인 글자들이 떨어져 나가고 남은 글자들이 만든 짧은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GOD BLESS YOU" (신이 당신을 축복하기를)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소설집을 끝냈다.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서 있고, 언젠가 이 여행이 끝나면 비로소 다 같이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모두에게 그 여행이 너무 고되지 않기를.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우리는 도착할 거니까.

"('작가의 말'에서)
문학과지성사. 320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