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에 함몰되지 않는다"…캔버스에 감성 한 스푼 담은 리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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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사이드갤러리 최진욱 개인전
‘다르게 느끼는 우리’ 3월 14일부터 4월 13일까지
‘다르게 느끼는 우리’ 3월 14일부터 4월 13일까지
그림은 본질적으로 허구다. 현실에 존재하는 풍경이나 인물을 화폭에 담아내더라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일 뿐, 대상과 완벽히 일치할 순 없다. 사진과 영상이 등장하면서부터 그림의 재현(再現)적 가치는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점점 전통적인 리얼리스트를 찾기 어려워진 이유다.
최진욱(68)은 한국 화단에 몇 없는 ‘리얼리즘’ 작가다. 그런데 그의 리얼리즘은 조금 결이 다르다.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벗어나 사물을 눈으로 만지고, 볼로 비빌 수 있는 게 리얼리즘”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직접 보거나 사진으로 찍은 이미지를 자신만의 심상 언어로 빚어낸다. 이를 ‘감성적 리얼리즘’이라고 정의한 최진욱의 그림은 마치 사진을 뭉갠 듯 사실적이지 않지만, 보다 날 선 감각으로 대상이 품은 분위기를 전달하는 점에서 더 생생하고 사실적이다. 재현적 회화를 뛰어넘은 감각적 회화다. 그가 “내 그림이 그 어떤 리얼리스트의 그림보다도 리얼하다 믿고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다.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오는 14일부터 열리는 ‘창신동의 달’ 전시에 걸린 그림 18여 점엔 이런 최진욱 표 감성적 리얼리즘의 정수가 담겼다. ‘창신동의 달’ 연작과 ‘렌트’ 연작 등을 통해 딸이 사는 서울 창신동 아파트 고층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네를 담아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과거와 현재, 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표현했다. 최진욱의 그림은 언뜻 보기에 잘 그린 그림이 아니다. 선은 거칠고 터치도 정교하지 않다. 스케치도 파랑, 분홍색깔 물감으로 쓱쓱 그려내는데, 완성된 그림에도 이 두꺼운 스케치 선이 고스란히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높은 곳에서 한눈에 훑은 동네 풍경을 다음날 떠올린다면 최진욱의 그림처럼 투박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인지하는 순간, 그의 선과 터치에 대한 평가는 ‘시원스럽고 과감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 지난 7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단순히 재현하는 건 일반인도 할 수 있다”면서 “작가는 그걸 뛰어넘는 발견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전시의 묘미는 갤러리 3층에 설치된 ‘눈 온 뒤 인왕산’이다. 전시를 앞두고 최진욱이 17일간 갤러리를 작업실 삼아 서촌과 인왕산의 풍경을 그려냈다고 한다. 작가의 시선에서 실재하는 풍경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관객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갤러리에서 추진한 ‘스핀오프 프로젝트’다. 흰 눈으로 덮인 산과 동네를 온통 녹색 물감으로 칠한 건 겸재 정선을 따라 인왕산을 그린 그의 흥분과 설렘의 발로다. 전시는 3월 14일부터 4월13일까지.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