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빌의 조상님…살인도 미학으로 만든 일본 'B급 무비의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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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스즈키 세이준의 '아지랑이좌'
1960년대 '일본 뉴웨이브'의 기수
봉준호와 쿠엔틴 타란티노 등
장르 영화 거장들이 동경한 '살인의 낙인'
15일부터 아트나인서 다이쇼 로망 3부작
지고이네르바이젠, 아지랑이좌, 유메지 등
1980~90년대 이미지의 시대 작품 집중 조명
최초 '가부키 영화'인 아지랑이좌, 예술적 일탈 결정체
1960년대 '일본 뉴웨이브'의 기수
봉준호와 쿠엔틴 타란티노 등
장르 영화 거장들이 동경한 '살인의 낙인'
15일부터 아트나인서 다이쇼 로망 3부작
지고이네르바이젠, 아지랑이좌, 유메지 등
1980~90년대 이미지의 시대 작품 집중 조명
최초 '가부키 영화'인 아지랑이좌, 예술적 일탈 결정체
스즈키 세이준(1923~2017)은 오시마 나기사, 이마무라 쇼헤이, 마스무라 야스조 등을 포함해 1960년대 일본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이끌었던 ‘재패니즈 뉴웨이브’의 기수 중 한명이다. 봉준호, 쿠엔틴 타란티노와 같은 장르 영화 거장들이 가장 많이 언급했던 그의 대표작, <살인의 낙인> (1967)은 느와르와 컬트, 아트 영화와 대중 영화의 경계를 현란하게(?) 넘나드는 걸작이자 괴작이다.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들은 이미지가 서사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원색과 패턴을 애용하는 세이준 특유의 이미지들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에서 오마쥬 되기도 했다. 세이준의 영화들은 이토록 아름답고 강렬한 이미지들로 가득하지만 이야기는 인과관계와 시간, 장소의 법칙을 철저히 배반한다. 마치 순간에 등장하는 (혹은 등장 해야만 하는) 이미지를 위해 영화의 서사구조를 희생시키는 듯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이해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그의 작품적 경향은 <살인의 낙인> 이후로 더 현저해진다. 15일부터 열흘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열리는 '2024 재팬무비페스티벌'에서 상영되는 그의 ‘다이쇼 로망 3부작’ - <지고이네르바이젠> (1980), <아지랑이좌> (1981), <유메지>(1991) 역시 그런 경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 중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가장 난해한 작품은 아무래도 <아지랑이좌>가 아닌가 싶다. 다이쇼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 이즈미 교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가부키 영화’라는 전례에 없던 스타일을 취한 스즈키 세이준 미학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1926년 다이쇼 말년을 배경으로 한다. 극작가 마츠자키 순코는 길을 지나다 우연히 만난 ‘시나코’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는 곧 그녀가 자신의 후원자인 타마와키의 두 번째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갈등하지만 그녀의 편지를 받자마자 그녀가 있는 카나자와로 향한다.
영화는 그가 카나자와로 떠난 순간부터 더더욱 몽환적인 설정과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점쟁이가 점을 볼 때 이용하는 기괴한 인형들, 병풍을 메운 아름다운 풍속화들, 배를 타고 가는 두 명의 여인 등 영화의 이미지들은 마치 순리대로 정렬된 것이 아닌, 이야기와 무관한 듯 ‘전시’된다. 그럼에도 카나자와 이후의 서사적 틀을 굳이 맞혀보자면 순코가 시나코를 찾아 헤매는 동안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사건이 주된 내러티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순코는 꿈처럼, 환영처럼 등장하는 시나코를 마을의 이 곳 저 곳을 뒤져 결국에 조우하게 되고 그녀를 따라 죽음의 세계로 넘어간다. 영화에서 ‘가부키’는 매우 중요한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특히 그가 마을 어귀를 거닐다가 아이들이 하는 ‘가부키’ 공연을 목도하게 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고, 몽환적이다. 아이들의 가부키 공연은 마치 영화 속 영화처럼 짤막한 단막이 아닌, 극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가부키의 요소는 캐릭터들의 연기적인 요소로도 드러나는데, 영화의 설정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기도 한 등장인물의 섹스신과 키스신이 그 중 하나다. 이들은 마치 행위예술을 하듯, 서로가 닿지 않은 채로 떨어져서 입맞춤과 성행위를 ‘재현’한다. 인물들의 몸짓은 코믹해 보일 정도로 과장되고 극화된 형태를 보여준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감독 스즈키 세이준은 왜 이토록 처절하게 ‘서사’의 구조에서, 그리고 리얼리즘적인 재현모드로부터 이탈하고 싶어했는지 반문하게 된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스즈키 세이준의 놀랍도록 환상적인 이미지와 시대를 전복하는 미장센은 그의 탈(脫) 서사의 추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가 구현하는 이미지들은 기승전결에 종속(?)된 이야기구조에서 탄생할 수 없는 사생아적인 정체성을 띄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즈키 세이준의 작품들은 영화의 ‘관람’을 넘어선 영화적 ‘경험’을 전제로 한다. 특히 가부키와 전통예술, 샤머니즘과 토속문화를 ‘영화’라는 지극히 대중적이고 관객 친화적인 매체에 담아 철처한 하이브리드로 탄생시킨 <아지랑이좌>는 분명 세이준의 이러한 예술적 일탈, 그리고 (영화적) 관습으로부터의 이탈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