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가 내년부터 현대자동차 등 국내외 자동차 업체에 ‘하이브리드 렌즈’를 공급한다. 또 올해부터 자동차용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IT기기 내 전류를 제어하는 부품) 매출을 1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인공지능(AI) 반도체용 고성능 기판(FC-BGA) 공급도 본격화하기로 했다. 전장(자동차용 전자장치)·AI 부품은 장덕현 사장이 취임한 2022년부터 힘주고 있는 제품들이다. 삼성전기가 ‘스마트폰 부품업체’에서 ‘전장·AI 기업’으로의 체질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기, 전장업체로 변신…현대차도 고객

2000시간 연속 발수 車 렌즈 양산

삼성전기가 내년부터 양산하는 자동차용 하이브리드 렌즈는 말 그대로 하이브리드 제품이다. 성능은 좋지만 비싸고 깨지기 쉬운 글라스 렌즈와 싸고 가볍지만 변형 가능성이 큰 플라스틱 렌즈의 장점을 살린 렌즈다. 최대 장점은 렌즈의 연속 발수(물을 렌즈 표면에서 흘리는 것) 성능 유지 시간을 늘려 운전자의 안전성을 높인 것이다. 기존 제품보다 약 1.5배 긴 2000시간 동안 고품질로 연속 촬영할 수 있다.

삼성전기는 차량용 카메라 모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회사에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TSR에 따르면 차량용 카메라 모듈 시장은 2022년 43억달러(약 5조7000억원)에서 2027년 89억달러로 두 배로 커질 전망이다. 자동차 업체들이 도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운전자를 모니터링할 목적으로 차량 1대에 20개 안팎의 카메라 렌즈를 탑재하고 있어서다. 삼성전기는 일단 내년부터 현대차·기아에 본격 공급한 뒤 다른 자동차 기업으로 납품처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車 MLCC 비중 25% 넘긴다

MLCC는 삼성전기가 렌즈만큼 공들이고 있는 전장 부품이다. 지난해 삼성전기의 전장용 MLCC 점유율은 13%로 무라타(41%), TDK(16%)에 이어 세계 3위다. 차량용 MLCC 시장은 전기차·자율주행차 시장의 성장과 함께 커지고 있다. 일반 내연기관 차에는 4000개 안팎의 MLCC가 들어가는데, 자율주행 기능이 들어간 전기차엔 최대 1만5000개가 탑재된다. 삼성전기는 1000볼트(V) 고압에 견딜 수 있는 MLCC 등을 개발해 납품을 늘리고 있다.

업계에선 지난해 8500억원 수준이던 삼성전기의 전장용 MLCC 매출이 올해 처음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내년에는 전체 MLCC 매출에서 전장용이 차지하는 비중을 25%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기가 올해 힘주고 있는 또 다른 제품은 서버용 FC-BGA(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다. 이 제품은 고성능 반도체와 IT기기의 메인 기판 간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AI 시대 핵심 부품이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최근 여러 반도체를 기판 위에 함께 올려 기능을 향상시키는 ‘패키지’ 형태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며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는 만큼 이미 기술력을 확보한 삼성전기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장·AI 부품은 삼성전기의 ‘체질 개선’을 추진 중인 장 사장이 키우고 있는 사업들이다. 스마트폰에 머무르지 않고 AI, 자율주행, 로봇 등 미래 산업에 올라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기는 내부적으로 2025년 전장·AI 분야에서 2조원의 매출을 거둔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장 사장은 최근 임직원 미팅에서 “성장성이 높은 전장 제품 매출을 늘리는 등 체질 개선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계속되는 호황이 없는 것처럼 계속되는 불황도 없다”며 “희망을 갖고 함께 나아가자”고 주문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