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가 ‘내가 본 가장 센세이셔널한 여성’이라했던 베이커의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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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변현주의 Why Berlin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베를린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최초로 공휴일로 지정한 도시이다. 여성의 정치·경제·사회·예술적 업적 등을 기리는 이 날은 자유를 위한 저항, 다양성에 대한 포용을 실천하는 베를린에서 2019년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되며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 같은 베를린의 정신을 반추하며 현재 신국립미술관 (Neue Nationalgalerie)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조세핀 베이커: 움직이는 아이콘 (Josephine Baker: Icon in Motion)>을 소개하려 한다.
흑인 여성 최초로 메이저 영화에 출연. 흑인 여성 최초로 프랑스 팡테옹에 안장. 최초로 프랑스 20센트 동전의 얼굴이 된 흑인 여성. 이처럼 여러 가지 ‘최초’의 타이틀을 지닐 뿐 아니라 소설가 헤밍웨이가 ‘내가 본 가장 센세이셔널한 여성’이라 칭하고 비욘세가 그의 ‘바나나 코스튬’을 입으며 헌사를 바치기도 한 조세핀 베이커. 그는 1906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출생했고 19세가 되던 해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공연을 펼친 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해 유럽을 주 무대로 활동한 댄서이자 가수, 배우, 레지스탕스, 페미니스트, 반인종주의 인권운동가였다.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아이콘으로서 영향을 미치는 조세핀 베이커의 삶과 다양한 예술 세계를 재구성하기 위해 전시는 신국립미술관 관장인 클라우스 비젠바흐(Klaus Bisenbach) 혼자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학자 테리 프란시스(Terri Francis) 박사와 분데스쿤스트할레 본(Bundeskunsthalle Bonn)에서 베이커의 전시를 기획했던 모나 호른카스틀레(Mona Horncastle) 관장, 전시 디자인을 함께 마무리한 아티스트 캔디스 윌리엄스(Kandis Williams)를 초대하고 협업해 인물을 다각도로 재조명하였다. 엔터테이너였던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 공연과 무대를 자연스레 접하고 8살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었던 조세핀 베이커는 15세에 부모를 떠나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연 극단에 합류했고 댄서로서 재능을 발하며 뉴욕 등 미국 내에서 공연하다 1925년 19살의 나이에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샹젤리제 극장에서의 이 공연으로 ‘검은 비너스’, ‘검은 진주’, ‘검은 여신’이라 불리는 등 찬사를 받으며 그는 이후로 수십 년간 댄서로서뿐 아니라 배우, 가수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했다.
깊고 폭넓은 리서치를 바탕으로 준비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조세핀 베이커》는 다채로운 영상 자료를 모니터로 재생해 흑인 여성 최초로 메이저 영화에 출연한 그의 활약, 댄서로서의 화려한 기술과 움직임, 그가 부른 노래 등을 전시하며 조세핀 베이커가 어떠한 예술가였는지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전시된 다수의 베이커의 흑백 사진들을 보며 그의 화려한 영향력을 짐작하게 하였다.
특히 20세기 초 당시 국제 예술 현장의 중심이었던 파리에서의 활발한 활동은 그를 아르데코(Art Deco)의 아이콘이자 수많은 아티스트의 뮤즈로 추앙 받게 했다. 전시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isier)나 파울 클레(Paul Klee)가 그를 그린 드로잉,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가 헌사한 그림,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가 그를 위해 만든 모빌 등을 선보이며 당시 그들의 예술적 교류를 상상하게 한다. 더불어 세대를 가로질러 2022년 흑인 여성 작가 중 처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로 참가하고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시몬 리(Simone Leigh)가 베이커에게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도 전시한다. 이 전시의 맥락에서 리의 ‘덮개(Slipcover)’는 앞서 언급한 조세핀 베이커의 ‘바나나 코스튬’과 조응한다. 바나나 코스튬은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그의 진보적이고 주체적인 사상을 반영한 센세이셔널한 무대 의상으로 바나나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고, 최근 비욘세가 월드 투어 공연에서 이를 차용한 의상을 입고 “그저 마음에서 비롯된 자유로운 춤을 춘 조세핀 베이커 같아지고 싶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조세핀 베이커를 더욱 흥미로운 인물로 만드는 지점은 바로 그가 예술가로서 활동한 것뿐 아니라 레지스탕스이자 스파이, 페미니스트,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는 점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가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 베이커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해 적들 앞에서 공연하며 기밀 정보를 전하는 스파이로 활약했다고 한다.
전쟁 이후 1950년대부터 1975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점차 예술가로서의 활동보다 인권운동가로서 인종차별과 여성 인권을 대변하는 활동을 넓혀 갔다. 그러한 조세핀 베이커의 활동은 높이 평가 받아 1961년 프랑스 군으로부터 무공 십자훈장을 받았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의 연설로 유명한 1963년 워싱턴 행진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이후 서로 다른 인종과 국적을 지닌 12명의 자녀를 입양해 키우며 자신의 사상을 몸소 실천했고, 2021년 흑인 여성 최초로 프랑스에 공헌한 위인들이 묻히는 국립묘지인 팡테옹에 안장되었다.
전시 제목처럼 ‘움직이는’ , 여전히 살아있는 아이콘인 조세핀 베이커는 다양한 영상과 사운드, 사진, 동료 및 세대를 넘어선 다른 작가들의 작품, 아카이브 자료 등 다층적 층위를 지닌 전시로 섬세하면서도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표현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여성으로서, 흑인으로서 받았던 차별에도 굴하지 않으며 정체되지 않은 채 삶을 영위한 베이커의 전시야말로 세계 여성의 날을 최초로 공휴일로 지정한 베를린에서 이 날의 의미를 생각하며 볼 수 있는 전시가 아닐까 싶다.
흑인 여성 최초로 메이저 영화에 출연. 흑인 여성 최초로 프랑스 팡테옹에 안장. 최초로 프랑스 20센트 동전의 얼굴이 된 흑인 여성. 이처럼 여러 가지 ‘최초’의 타이틀을 지닐 뿐 아니라 소설가 헤밍웨이가 ‘내가 본 가장 센세이셔널한 여성’이라 칭하고 비욘세가 그의 ‘바나나 코스튬’을 입으며 헌사를 바치기도 한 조세핀 베이커. 그는 1906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출생했고 19세가 되던 해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공연을 펼친 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해 유럽을 주 무대로 활동한 댄서이자 가수, 배우, 레지스탕스, 페미니스트, 반인종주의 인권운동가였다.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아이콘으로서 영향을 미치는 조세핀 베이커의 삶과 다양한 예술 세계를 재구성하기 위해 전시는 신국립미술관 관장인 클라우스 비젠바흐(Klaus Bisenbach) 혼자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학자 테리 프란시스(Terri Francis) 박사와 분데스쿤스트할레 본(Bundeskunsthalle Bonn)에서 베이커의 전시를 기획했던 모나 호른카스틀레(Mona Horncastle) 관장, 전시 디자인을 함께 마무리한 아티스트 캔디스 윌리엄스(Kandis Williams)를 초대하고 협업해 인물을 다각도로 재조명하였다. 엔터테이너였던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 공연과 무대를 자연스레 접하고 8살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었던 조세핀 베이커는 15세에 부모를 떠나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연 극단에 합류했고 댄서로서 재능을 발하며 뉴욕 등 미국 내에서 공연하다 1925년 19살의 나이에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샹젤리제 극장에서의 이 공연으로 ‘검은 비너스’, ‘검은 진주’, ‘검은 여신’이라 불리는 등 찬사를 받으며 그는 이후로 수십 년간 댄서로서뿐 아니라 배우, 가수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했다.
깊고 폭넓은 리서치를 바탕으로 준비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조세핀 베이커》는 다채로운 영상 자료를 모니터로 재생해 흑인 여성 최초로 메이저 영화에 출연한 그의 활약, 댄서로서의 화려한 기술과 움직임, 그가 부른 노래 등을 전시하며 조세핀 베이커가 어떠한 예술가였는지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전시된 다수의 베이커의 흑백 사진들을 보며 그의 화려한 영향력을 짐작하게 하였다.
특히 20세기 초 당시 국제 예술 현장의 중심이었던 파리에서의 활발한 활동은 그를 아르데코(Art Deco)의 아이콘이자 수많은 아티스트의 뮤즈로 추앙 받게 했다. 전시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isier)나 파울 클레(Paul Klee)가 그를 그린 드로잉,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가 헌사한 그림,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가 그를 위해 만든 모빌 등을 선보이며 당시 그들의 예술적 교류를 상상하게 한다. 더불어 세대를 가로질러 2022년 흑인 여성 작가 중 처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로 참가하고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시몬 리(Simone Leigh)가 베이커에게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도 전시한다. 이 전시의 맥락에서 리의 ‘덮개(Slipcover)’는 앞서 언급한 조세핀 베이커의 ‘바나나 코스튬’과 조응한다. 바나나 코스튬은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그의 진보적이고 주체적인 사상을 반영한 센세이셔널한 무대 의상으로 바나나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고, 최근 비욘세가 월드 투어 공연에서 이를 차용한 의상을 입고 “그저 마음에서 비롯된 자유로운 춤을 춘 조세핀 베이커 같아지고 싶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조세핀 베이커를 더욱 흥미로운 인물로 만드는 지점은 바로 그가 예술가로서 활동한 것뿐 아니라 레지스탕스이자 스파이, 페미니스트,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는 점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가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 베이커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해 적들 앞에서 공연하며 기밀 정보를 전하는 스파이로 활약했다고 한다.
전쟁 이후 1950년대부터 1975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점차 예술가로서의 활동보다 인권운동가로서 인종차별과 여성 인권을 대변하는 활동을 넓혀 갔다. 그러한 조세핀 베이커의 활동은 높이 평가 받아 1961년 프랑스 군으로부터 무공 십자훈장을 받았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의 연설로 유명한 1963년 워싱턴 행진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이후 서로 다른 인종과 국적을 지닌 12명의 자녀를 입양해 키우며 자신의 사상을 몸소 실천했고, 2021년 흑인 여성 최초로 프랑스에 공헌한 위인들이 묻히는 국립묘지인 팡테옹에 안장되었다.
전시 제목처럼 ‘움직이는’ , 여전히 살아있는 아이콘인 조세핀 베이커는 다양한 영상과 사운드, 사진, 동료 및 세대를 넘어선 다른 작가들의 작품, 아카이브 자료 등 다층적 층위를 지닌 전시로 섬세하면서도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표현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여성으로서, 흑인으로서 받았던 차별에도 굴하지 않으며 정체되지 않은 채 삶을 영위한 베이커의 전시야말로 세계 여성의 날을 최초로 공휴일로 지정한 베를린에서 이 날의 의미를 생각하며 볼 수 있는 전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