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연말께 빠르게 올라 100엔당 900원을 웃돌던 원·엔 환율이 올 2월 들어 800원대로 다시 떨어지자 저점에 엔화를 매수하려는 투자 수요가 늘어난 결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올 한 해 엔화 가치 상승 여력이 제한적인 만큼 투자 목적의 엔화 매수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2월 엔화예금 5.5% 증가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지난 2월 말 기준 1조2129억엔으로 집계됐다. 1월 말(1조1497억엔)과 비교해 632억엔(5.5%)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다.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작년 4월 말 5979억엔에서 11월 말 1조1971억엔으로 7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다가 12월 1조1331억엔으로 감소세로 전환했다. 작년 11월엔 100엔당 원·엔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850원대까지 낮아져 엔화 투자 매력이 높아졌지만, 12월 들어 다시 910원대로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슈퍼 엔저, 일단 사자"…엔화예금 다시 급증
지난해 말 한풀 꺾인 엔화 투자 열기는 올 들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다. 원·엔 환율이 100엔당 900~910원대에서 횡보한 1월엔 엔화예금이 전월 대비 1.5%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2월 들어선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엔화 매수세가 집중됐다.

2월 들어 엔화예금 잔액이 상승폭을 키운 이유는 원·엔 환율이 다시 900원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싼값에 엔화를 사들이려는 매수 수요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하나은행이 고시하는 원·엔 재정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2월 1일 906원57전에서 2월 23일 883원59전까지 하락했다. 이후 100엔당 880~890원대에서 등락을 반복하던 원·엔 환율은 이달 11일 891원75전에 거래되며 횡보하고 있다.

“원·엔 환율 더 떨어질 수도”

2월 원·엔 환율이 다시 하락한 가장 큰 원인으로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조기에 인하할 것이란 기대가 꺾인 점이 꼽힌다. 미국의 긴축적 통화정책 장기화 우려로 달러가 강세를 보인 가운데 일본의 통화정책 전환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하면서 원화보다 엔화가 더 약세를 보인 것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원화 가치는 큰 변동이 없는 가운데 Fed의 금리 인하가 지연되면서 원·엔 환율의 하락 압력이 가중됐다”고 분석했다.

엔테크에 나선 투자자들은 100엔당 900원 밑으로 내려온 엔화 가치가 향후 오를 것으로 보고 엔화를 매수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엔화 가치가 큰 폭으로 오르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은 “최근 일부 일본은행 인사의 매파적인 메시지가 나오고 있지만,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보기엔 시기상조”라며 “일본은행이 통화정책을 긴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시기를 하반기로 예상하고, 원화는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일 전망인 만큼 올해 원·엔 환율이 100엔당 880원 밑으로 향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내다봤다.

박상현 전문위원은 “올해 Fed와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높고, 일본은행은 과거보다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예정인 만큼 원·엔 환율이 오를 것으로 본다”면서도 “한국의 수출이 반도체 중심으로 뚜렷하게 회복되고 있어 원·엔 환율이 올라봤자 900원대 초반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