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전공의 이탈로 진료 공백이 커진 대형 대학병원 대신 전공의가 없는 중소·종합병원 육성에 나선다. ‘전문의 중심 병원’을 키워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고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아 의료개혁 속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각급 병원이 규모가 아니라 실력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전문성을 갖춘 강소전문병원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 의존도가 큰 대형 대학병원의 환자 쏠림을 해소하고 중간 단계 병원을 육성해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겠다는 의미다. 국내 의료전달체계는 병원 특성에 따라 세 단계로 나뉜다. 경증 환자가 찾는 동네 병·의원(1차), 이보다 증상이 심한 환자가 수술 등을 위해 찾는 중소·종합병원(2차), 중증 암 환자 등이 주로 찾는 대형 대학병원(3차)이다.

단계에 따라 환자가 적절히 배분돼야 하지만 ‘빅5 병원’ 등 대형 대학병원 명성만 보고 경증 환자까지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아 2차 병원들은 고사 직전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전공의 집단사직은 이런 왜곡된 의료전달체계에 변곡점이 됐다. 의사 인력 40%가 전공의인 대형 대학병원이 제 기능을 못 하자 환자들이 중소·종합병원을 찾는 것이다. 전국에 분포한 109개 전문병원도 마찬가지다. 이들 병원을 육성하면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장기화하더라도 의료 시스템이 붕괴하는 것을 막는 버팀목이 될 것으로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의료개혁을 “원칙대로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 김수경 대변인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응급 환자와 중증 환자에 대해 빈틈없는 비상 대응을 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일각에서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데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부가) 철회해야만 대화에 나서겠다’는 건 진정한 대화 의도로 보기 어렵다”며 “현장을 이탈하는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교수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교수들의 집단 사직도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