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등골 빼먹나" 비난에…30대 은둔청년이 털어놓은 속내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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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의 삶 살고 있나요?…30대 청년 고백에 쏟아진 공감
'취업' 대신 '집' 선택한 청년 54만명
반복되는 구직 실패, 사회와 갈등도
"더는 숨지 않고 주변 도움 요청해야"
'취업' 대신 '집' 선택한 청년 54만명
반복되는 구직 실패, 사회와 갈등도
"더는 숨지 않고 주변 도움 요청해야"
"나는 지금 1인분의 삶을 살고 있나요?"
취업 대신 방안을 선택한 54만명.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2023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라 집계된 고립·은둔 청년의 수다. '고립'은 사회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긴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힘든 상태를, '은둔'은 사회활동을 하지 않은 채 거주 공간에 자신을 가둔 상태를 말한다.
유튜브 채널 '씨리얼'에는 지난 8일 '1인분의 삶을 살고 있나요'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는 서로 다른 이유로 5년 이상 취업을 하기보다 방 안을 선택한 5명의 고립·은둔 청년들이 출연해 장기 미취업자가 된 배경 등에 대해 털어놨다. 이 영상은 14일 기준 조회수 30만회, 댓글 수 2000여개 이상을 기록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영상에 출연한 20~30대 '은둔형 청년들'이 방 안으로 숨어버린 계기는 11년간 취업 공백기부터 성폭력 범죄 피해 후유증, 대학원 교수와의 갈등 등으로 다양했다. 반복되는 구직 실패와 스트레스성 폭식과 체중 증가로 인한 자존감 하락 등 이유도 있었다. 이미 길어진 공백기는 이들이 다시 사회로 나가기 두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됐다.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이었다는 30세 여성 A씨는 "대외적으로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었지만, 실상은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며 "대학 동기들이 대기업에 많이 가서 나도 당연히 갈 거라고 했는데 실패했다.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라고 하면서 안정적인 공무원을 할 거라고 했다. 그 자체가 회피였다"고 했다.
대학원생이었다는 28세 남성 B씨는 지도교수와의 갈등이 생겨 대학원을 중퇴한 뒤, 법정 싸움까지 간 계기로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방 안에 스스로 가뒀다"며 "화장실을 가야 하거나 밥 먹을 때 말고는 방 안에 불을 꺼둔 채 계속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사람 대하는 게 예전과 달라져 고립 생활을 시작한 여성도 있었다. 성폭력 피해 후유증으로 7년째 일을 쉬고 있다는 33세 여성 C씨는 "(스스로가) 식충이같이 느껴진다. 부모님 냉장고를 축내는 것 같아 죄책감이 심하다"면서도 "면접에서 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는 순간이 무섭다. 솔직하게 이유를 밝히면 채용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라고 우려했다. 고립 및 은둔 기간이 10년을 넘어선 청년들도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했으나, 2년 뒤 퇴사 후 11년째 취업 공백기를 가진 31세 여성 D씨는 "닥치는 대로 일하려고 공장 아르바이트 등을 했는데 일을 못 한다고 쫓겨났다"면서 직장에서 겪은 부정적 평가와 반응이 트라우마가 됐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아 이런 상황을 극복한 이들도 있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지난해 조사에서 전국 19∼39세의 대면 접촉을 꺼리는 고립·은둔 청년 2만1360명 중 80.8%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11년간의 공백기 후 취업에 성공했다는 37세 남성 E씨는 "친구의 도움으로 은둔 생활에서 빠져나왔다"며 "내 인생을 바꿀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두려움에 굴복해서 용기 내지 않았던 것에 대해 많이 반성했다"고 말했다. 유승규 은둔 청년지원단체 '안무서운회사' 대표는 "청년들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건 이 상황을 혼자 극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라며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면 '80대 노부모가 50대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일본의 '8050세대'의 문제가 우리나라에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 대표는 "사회에서 한심한 존재로 굳혀진 이들도 '고립'을 원해서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런 생활이 익숙해지는 관성이 발휘될 때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벗어나고 싶어 한다"며 "고립·은둔 생활도 고유의 경험이자 스펙이다. 54만명의 청년이 고립해 있으면 은둔 경험을 스펙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느냐"고 응원했다.
그러면서 "게으른 애들, 배부른 애들, 방 안에서 허송세월 보내고 부모 등골 빨아먹는 애들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사회에서 한심한 존재로 굳혀진 이들도 '고립'을 원해서 선택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 상황을 혼자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깨달음이 필요하다. 주변 지인이든 기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