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서 가장 똑똑한 감독이 추자현과 컴백, 실컷들 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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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 리뷰
멜로와 미스터리 사이, 당신이 잠든 사이에 해야 할 선택
멜로와 미스터리 사이, 당신이 잠든 사이에 해야 할 선택
장윤현 감독(맞다. 1990년대 중 후반 ‘접속’과 ‘텔 미 썸딩’을 만들었던 그 감독이다.)이 만들고 추자현, 이무생이 주연을 맡은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는 두 가지 장르를 오가는 작품이다. 일단 이 영화는 제목 ‘당신이 잠든 사이’로 연상되듯이 산드라 블록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5)처럼 멜로 드라마인 척 한다. 또 한편으로 요즘 넷플릭스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미스터리 작가 할런 코벤의 숱한 작품처럼 미스터리 스릴러의 분위기를 잔뜩 풍긴다.
흔히들 이런 영화는 멜로영화인 척 스릴러인 경우가 많다. 알고 보니 가장 가까운 사람이 살인자였다는 식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트레인저’나 ‘비밀의 비밀’ 등 할런 코벤 작품 대부분이 그렇다. 진행 과정은 매우 흥미진진하지만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후반부에서는 큰 실망을 주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비현실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기억되는 작품들이 그리 많지 않다. 기억의 휘발성이 강한 통속 영화 대부분이 그렇다.
명석한 두뇌를 지닌 장윤현의 이번 작품은 거꾸로 간다. 처음 한동안을 미스터리인 척 하지만 나중엔 결국 멜로영화로 뒤집는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수순이다. 역설적으로 상업영화라는 측면에서 영리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미스터리보다, 그러니까 아내나 남편이 알고 보니 내 재산을 가로채고 나를 죽이려 한다는 식의 살인극보다 러브 스토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사랑이다. 사랑이 사람을 바꾸고 사랑이 세상을 바꾼다. ‘당신이 잠든 사이’는 멜로도 ‘그냥 저냥’한 수준이 아니다. 최루성이 엄청나게 강하다. 신파의 느낌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다. 이런 류의 영화가 실로 오랜만의 일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는 짐작되건대 영화 후반부에 꽤나 큰 눈물바다를 이룰 것이다. 솔직히 ‘당신이 잠든 사이’를 보기 시작하면서는 잠깐이나마 산드라 블록의 ‘당신이 잠든 사이에(While You Were Sleeping)’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비슷한 제목의 이 미국 영화에서는 기차 매표원 루시(산드라 블록)가 매일 토큰을 사러 오는 잘생긴 남자 피터(피터 갤러거)를 짝사랑한다. 루시는 피터를 열차사고에서 구한 후 그의 병문안을 갔다가 남자의 약혼녀 행사를 하기 시작한다. 남자가 코마 상태이기 때문이다.
장윤현의 ‘당신의 잠든 사이’와 비슷한 점이라곤 ‘기억 상실=코마’라는 콘셉트 정도이다. 그것도 억지 춘향으로 갖다 붙였을 때의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윤현이 이 제목을 차용하려고 고집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슷한 제목으로 멜로가 아닌 미스터리인 척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덕희(추자현)는 매일 같이 악몽을 꾼다. 덕희는 해리성 기억상실에 걸려 있다. 기억의 일부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이며 대체로 이런 병은 이중이나 다중인격 장애로 가기 십상이다. 덕희의 옆은 늘 남편인 준석(이무생)이 지킨다. 준석은 덕희와 함께 병원을 오가며 그녀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도록 애를 쓴다.
이런 남편이 없을 정도일 만큼 다정하고 착한 준석이지만 약간씩 특이점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덕희가 잠든 후에, 그러니까 ‘당신이 잠든 사이’에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준석은 심지어 여자까지 있고 그 여자와의 사이에서 애까지 낳을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여자는 아내 덕희의 오랜 친구 영미(박민정)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준석의 엄마, 덕희의 시어머니(손숙)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기억을 잃은 덕희를 사이에 두고 남편과 어머니, 친구까지 모두가 다 짜고 무슨 음모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이런 얘기는 넷플릭스 드라마들의 원작자인 할런 코벤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될 만큼 1980~1990년대 할리우드 B급 스릴러의 단골 소재였던 내용이긴 하다. 독일계 감독 볼프강 페터슨이 만든 1993년작 ‘가면의 정사(shattered)'는 ‘당신이 잠든 사이’가 초반에 따라가고 있는 전형의 작품이다. 아내인 쥬디스(그레다 스카키)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한 억만장자 댄(톰 베린저)는 사고 후 병원에서 의식을 차려 보니 얼굴이 너무 망가져 전체를 성형한 상태임을 알게 된데다 일부의 기억을 잃은 상태여서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보다 자기를 간호하는 여자가 진짜 자기 아내인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곧이어 여자의 가면이 벗겨진다.
‘가면의 정사’처럼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도 남편 준석의 베일이 벗겨진다. 시어머니가 왜 그렇게 늘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건지, 친구인 영미가 안고 있는 아이, 그녀가 키우고 있는 아이는 과연 누구인지 등등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 할런 코벤의 ‘비밀의 비밀’이나 볼프강 페터슨의 ‘가면의 정사’처럼 수수께끼가 풀리기는 하지만 ‘당신이 잠든 사이’는 엑스터시나 카타르시스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잠든 사이’는 미스터리 퍼즐을 푸는 것에 최종의 목적이 있지 않다. ‘당신의 잠든 사이’는 오히려 사랑의 힘이 갖는, 그 무한한 미스터리에 대해 묻고 있는 작품이다. 과연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면 정녕 이들처럼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러닝 타임 1시간이 지나갈 때쯤 영화는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한다. 남편 준석은 외도가 의심되는 집필 여행을 떠나겠다며 집을 나선다. 그는 작가이다. 그리 잘 나가는 소설가는 아니지만 출판사에서 고우스트 롸이터(ghost wrighter), 곧 대필 작가를 의뢰할 만큼 필력을 인정받는 친구이다. 준석은 강릉의 한 작은 호텔에 머문다. 그리고 곧 사단이 난다. 덕희는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남편 준석 대신 전화 한통을 받게 된다. 덕희의 일상은 무너진다. 그녀는 이때부터 남편의 행적을 캐기 시작한다.
비교적 너무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뒀던 감독 장윤현은 이제 젊은 세대들에게는 다소 잊혀진 이름이 됐지만 이번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로 자신이 여전히, 충무로에서 정식의 입문 과정을 통해 발탁됐던 정통의 감독임을 입증해 냈다. 이번 그의 시나리오에는 한치의 빈 틈이 없다. 앞 뒤 아귀가 딱딱 들어 맞는다. 미스터리 기법이 동원되는 만큼 인물들 하나 하나의 행동에 개연성이 떨어져서는 안된다. 그러면 이야기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충무로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평가를 들었던 만큼 이번 그의 시나리오는 완벽에 가까울 만큼 꽉 차 있다. 장윤현이 여전히, 상업영화 감독으로 한창 때라는 것을, 무엇보다 그의 기량이 전혀 녹슬지 않았음을, 오히려 ‘텔 미 썸딩’ 때보다 더욱 노련해졌음을 보여 준다. 추자현의 연기가 눈부시다. 기억상실에 걸린 여자의 애매한 표정연기에서 광기에 어린 분노의 연기까지 큰 폭의 연기를 자유롭게 오간다. 추자현이 무너지듯 주저 앉으며 우는 연기를, 절규하는 연기를, 이렇게 잘 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녀 최고의 연기는 ‘사생결단’ 때였다. 남자의 아버지가 광(곳간)에 숨겨 놓은 필로폰 가루를 발견한 후 자신의 치마를 움켜 쥐고 창고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다리 사이가 풀려 어쩔 줄 몰라 하는, 중독자 연기는 실로 일품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추자현은 감독의 연출 지시만으로 움직이는 배우가 아니라 본능 자체가 연기자인 인물임을 보여 준다. 추자현은 실로 좋은 배우이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추자현을 재발견하게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당신이 잠든 사이’는 뜻밖의 선물 같은 작품이다. 극장가는 이런 뜻밖의 작품들이 생겨날 때 불이 붙는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 찾아 오곤 한다. 불현듯 잠처럼 왔다가 꿈과 함께 사라지곤 하는 사랑은 늘 붙잡기가 힘이 든다. 사랑은 늘 기억처럼 왔다가 추억으로 남거나 희미해진다.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는 지금처럼 사랑이 부재한 시대에 순애보의 정수를 보여주려 한다. 이런 세상에서 그런 시도는 짐짓 순진하거나 무모해 보일 수도 있다. 실컷들 우시라. 자신을 울게 놔두시라. 사랑이 갖는 위대한 힘을 느끼시라. ‘당신이 잠든 사이’는 3월 20일에 개봉한다. / 오동진 영화평론가
흔히들 이런 영화는 멜로영화인 척 스릴러인 경우가 많다. 알고 보니 가장 가까운 사람이 살인자였다는 식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트레인저’나 ‘비밀의 비밀’ 등 할런 코벤 작품 대부분이 그렇다. 진행 과정은 매우 흥미진진하지만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후반부에서는 큰 실망을 주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비현실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기억되는 작품들이 그리 많지 않다. 기억의 휘발성이 강한 통속 영화 대부분이 그렇다.
명석한 두뇌를 지닌 장윤현의 이번 작품은 거꾸로 간다. 처음 한동안을 미스터리인 척 하지만 나중엔 결국 멜로영화로 뒤집는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수순이다. 역설적으로 상업영화라는 측면에서 영리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미스터리보다, 그러니까 아내나 남편이 알고 보니 내 재산을 가로채고 나를 죽이려 한다는 식의 살인극보다 러브 스토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사랑이다. 사랑이 사람을 바꾸고 사랑이 세상을 바꾼다. ‘당신이 잠든 사이’는 멜로도 ‘그냥 저냥’한 수준이 아니다. 최루성이 엄청나게 강하다. 신파의 느낌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다. 이런 류의 영화가 실로 오랜만의 일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는 짐작되건대 영화 후반부에 꽤나 큰 눈물바다를 이룰 것이다. 솔직히 ‘당신이 잠든 사이’를 보기 시작하면서는 잠깐이나마 산드라 블록의 ‘당신이 잠든 사이에(While You Were Sleeping)’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비슷한 제목의 이 미국 영화에서는 기차 매표원 루시(산드라 블록)가 매일 토큰을 사러 오는 잘생긴 남자 피터(피터 갤러거)를 짝사랑한다. 루시는 피터를 열차사고에서 구한 후 그의 병문안을 갔다가 남자의 약혼녀 행사를 하기 시작한다. 남자가 코마 상태이기 때문이다.
장윤현의 ‘당신의 잠든 사이’와 비슷한 점이라곤 ‘기억 상실=코마’라는 콘셉트 정도이다. 그것도 억지 춘향으로 갖다 붙였을 때의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윤현이 이 제목을 차용하려고 고집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슷한 제목으로 멜로가 아닌 미스터리인 척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덕희(추자현)는 매일 같이 악몽을 꾼다. 덕희는 해리성 기억상실에 걸려 있다. 기억의 일부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이며 대체로 이런 병은 이중이나 다중인격 장애로 가기 십상이다. 덕희의 옆은 늘 남편인 준석(이무생)이 지킨다. 준석은 덕희와 함께 병원을 오가며 그녀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도록 애를 쓴다.
이런 남편이 없을 정도일 만큼 다정하고 착한 준석이지만 약간씩 특이점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덕희가 잠든 후에, 그러니까 ‘당신이 잠든 사이’에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준석은 심지어 여자까지 있고 그 여자와의 사이에서 애까지 낳을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여자는 아내 덕희의 오랜 친구 영미(박민정)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준석의 엄마, 덕희의 시어머니(손숙)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기억을 잃은 덕희를 사이에 두고 남편과 어머니, 친구까지 모두가 다 짜고 무슨 음모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이런 얘기는 넷플릭스 드라마들의 원작자인 할런 코벤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될 만큼 1980~1990년대 할리우드 B급 스릴러의 단골 소재였던 내용이긴 하다. 독일계 감독 볼프강 페터슨이 만든 1993년작 ‘가면의 정사(shattered)'는 ‘당신이 잠든 사이’가 초반에 따라가고 있는 전형의 작품이다. 아내인 쥬디스(그레다 스카키)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한 억만장자 댄(톰 베린저)는 사고 후 병원에서 의식을 차려 보니 얼굴이 너무 망가져 전체를 성형한 상태임을 알게 된데다 일부의 기억을 잃은 상태여서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보다 자기를 간호하는 여자가 진짜 자기 아내인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곧이어 여자의 가면이 벗겨진다.
‘가면의 정사’처럼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도 남편 준석의 베일이 벗겨진다. 시어머니가 왜 그렇게 늘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건지, 친구인 영미가 안고 있는 아이, 그녀가 키우고 있는 아이는 과연 누구인지 등등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 할런 코벤의 ‘비밀의 비밀’이나 볼프강 페터슨의 ‘가면의 정사’처럼 수수께끼가 풀리기는 하지만 ‘당신이 잠든 사이’는 엑스터시나 카타르시스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잠든 사이’는 미스터리 퍼즐을 푸는 것에 최종의 목적이 있지 않다. ‘당신의 잠든 사이’는 오히려 사랑의 힘이 갖는, 그 무한한 미스터리에 대해 묻고 있는 작품이다. 과연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면 정녕 이들처럼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러닝 타임 1시간이 지나갈 때쯤 영화는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한다. 남편 준석은 외도가 의심되는 집필 여행을 떠나겠다며 집을 나선다. 그는 작가이다. 그리 잘 나가는 소설가는 아니지만 출판사에서 고우스트 롸이터(ghost wrighter), 곧 대필 작가를 의뢰할 만큼 필력을 인정받는 친구이다. 준석은 강릉의 한 작은 호텔에 머문다. 그리고 곧 사단이 난다. 덕희는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남편 준석 대신 전화 한통을 받게 된다. 덕희의 일상은 무너진다. 그녀는 이때부터 남편의 행적을 캐기 시작한다.
비교적 너무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뒀던 감독 장윤현은 이제 젊은 세대들에게는 다소 잊혀진 이름이 됐지만 이번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로 자신이 여전히, 충무로에서 정식의 입문 과정을 통해 발탁됐던 정통의 감독임을 입증해 냈다. 이번 그의 시나리오에는 한치의 빈 틈이 없다. 앞 뒤 아귀가 딱딱 들어 맞는다. 미스터리 기법이 동원되는 만큼 인물들 하나 하나의 행동에 개연성이 떨어져서는 안된다. 그러면 이야기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충무로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평가를 들었던 만큼 이번 그의 시나리오는 완벽에 가까울 만큼 꽉 차 있다. 장윤현이 여전히, 상업영화 감독으로 한창 때라는 것을, 무엇보다 그의 기량이 전혀 녹슬지 않았음을, 오히려 ‘텔 미 썸딩’ 때보다 더욱 노련해졌음을 보여 준다. 추자현의 연기가 눈부시다. 기억상실에 걸린 여자의 애매한 표정연기에서 광기에 어린 분노의 연기까지 큰 폭의 연기를 자유롭게 오간다. 추자현이 무너지듯 주저 앉으며 우는 연기를, 절규하는 연기를, 이렇게 잘 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녀 최고의 연기는 ‘사생결단’ 때였다. 남자의 아버지가 광(곳간)에 숨겨 놓은 필로폰 가루를 발견한 후 자신의 치마를 움켜 쥐고 창고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다리 사이가 풀려 어쩔 줄 몰라 하는, 중독자 연기는 실로 일품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추자현은 감독의 연출 지시만으로 움직이는 배우가 아니라 본능 자체가 연기자인 인물임을 보여 준다. 추자현은 실로 좋은 배우이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추자현을 재발견하게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당신이 잠든 사이’는 뜻밖의 선물 같은 작품이다. 극장가는 이런 뜻밖의 작품들이 생겨날 때 불이 붙는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 찾아 오곤 한다. 불현듯 잠처럼 왔다가 꿈과 함께 사라지곤 하는 사랑은 늘 붙잡기가 힘이 든다. 사랑은 늘 기억처럼 왔다가 추억으로 남거나 희미해진다.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는 지금처럼 사랑이 부재한 시대에 순애보의 정수를 보여주려 한다. 이런 세상에서 그런 시도는 짐짓 순진하거나 무모해 보일 수도 있다. 실컷들 우시라. 자신을 울게 놔두시라. 사랑이 갖는 위대한 힘을 느끼시라. ‘당신이 잠든 사이’는 3월 20일에 개봉한다. /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