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연광철은 사랑을 노래하고, 청년 선우예권은 뜨겁게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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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연광철·선우예권 리사이틀
슈만 '시인의 사랑' 등 들려줘
선입견 초월한 아름다움
나이 차를 넘어선 존경과 존중의 무대
슈만 '시인의 사랑' 등 들려줘
선입견 초월한 아름다움
나이 차를 넘어선 존경과 존중의 무대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가곡을 썼다. 그러나 음악사에서 가곡의 시대가 열린 것은 슈베르트가 등장하고부터였다. 분명 가곡은 낭만주의와 더불어 화려하게 꽃핀 장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낭만주의 시대에는 음악이 외적인, 특히 문학적인 상상력과 결합하는 경향이 강하게 두드러졌다. 처음부터 문학(시)을 기반으로 하는 가곡은 이런 경향에 안성맞춤이었다.
슈베르트와 더불어 화려하게 꽃피기 시작한 가곡이 슈만에 이르러 다시금 정점에 이른 것, 그리고 그 슈만이 ‘낭만주의의 화신’이라 불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슈만의 가곡은 사랑이나 실연을 주된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낭만주의 시대 다른 가곡들과 비슷하지만, 감정의 격동을 훨씬 생생하게 드러낸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슈만의 섬세한 영혼은 그런 격동을 온전히 견뎌내지 못했다. 그가 정신병원에서 생애를 마쳤던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이번 공연의 1부 순서는 슈만의 <시인의 사랑>으로만 채워졌다. 작곡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는 이 연가곡은 곳곳에 동경과 환희, 비탄과 절망이 넘쳐나는 작품이다. 이런 감정 상태는 청춘이기에 발생하고, 또 청춘이기에 비로소 정당화된다. 그런데 이 곡을 부른 연광철(59)은 현재 환갑을 앞둔 성악가이다. 물론 나이 자체가 이 곡을 노래하는 데 결격사유일 수는 없다. 사실 문제는 따로 있다. 오페라에서 베이스가 맡는 역할은 크게 세 가지이다. 왕, 아버지, 악당. 예외도 있지만 많지는 않다. 그리고 연광철은 세상이 알아주는 베이스이다. 그의 목소리는 악당 역을 맡기에는 너무 고상하고, 왕이나 아버지 역할에는 적격이다. 어쨌든 셋 가운데 어떤 것도 <시인의 사랑> 같은 곡과는 거리가 있는 이미지이다. 이 괴리감은 사실 근거 없는 선입견이지만, 선입견은 논리를 초월하는 것이기에 극복하려면 역시 논리를 초월하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표현력이고, 연광철은 분명 이를 갖췄다. 그는 첫 곡 ‘기적처럼 아름다운 5월에’는 말할 것도 없고, 여러 대목에서 힘차고 열정적인 가창으로 이따금 느껴지는 관조적인 인상을 효과적으로 보완했다. 열 번째 곡 ‘언젠가 그 노랫소리 들려올 때면’처럼 그의 장중한 노래가 오히려 더 비감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절망감을 극도로 생생하게 전달한 열세 번째 곡 ‘나는 꿈속에서 울었습니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이번 <시인의 사랑>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데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5)의 헌신적이고 감각적인 반주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반주자로서 연광철을 충실히 뒷받침하면서도 슈만 특유의 낭만성을 독자적인 경지로 펼쳐 보였다. 전반적으로 감정의 동요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으며, 열다섯 번째 곡 ‘옛날 동화에서 손짓을 보낸다’에서 들려준 생동감 넘치는 표현은 일품이었다. 열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곡인 ‘낡아빠진 못된 노래들’의 꿈결 같은 후주는 시의 화자가 겪은 그 모든 고통을 온전히 보상해줄 수 있을 것처럼 아련하고도 달콤했다. 다만 곡의 여운을 음미하기도 전에 성급하게 박수가 터져 나온 것은 무척 아쉬웠다. 아무리 작은 음이라도 마지막 한 마디까지 작곡가의 자산이고, 이를 전달하는 것은 연주자의 책무이다. 그렇다면 그걸 끝까지 즐기는 것이 감상자로서, 청중으로서 마땅한 도리가 아닐까.
1부에서 들려준 반주로 미루어볼 때 선우예권은 2부 순서의 핵심인 ‘다비드 동맹 무곡’ 역시 훌륭하게 연주해내리라 기대할 수 있었고, 실제 연주도 그에 걸맞았다. 그는 첫 곡 ‘생기있게’부터 천진함과 진지함, 열망이 교차하는 연주로 청년 슈만이 느꼈을 감정의 기복을 멋지게 담아냈다. 전곡의 거의 끊지 않고 이어 연주함으로써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간 것도 돋보였고, 전체적으로 폭넓고 과감한 표현과 감각적인 터치가 돋보이는 연주였다. 다행히도 여기서는 박수 역시 마지막 여운을 음미할 수 있을 만큼 천천히 터졌다. 이후에는 다시 연광철이 슈만의 가곡 ‘내 고뇌의 아름다운 요람’과 ‘나의 장미’, ‘헌정’을 노래했다. 전체적인 해석은 아까와 비슷했지만 ‘헌정’에서 표현한 뜨거운 열정은 이전의 어떤 곡에서도 접하지 못했던 수준이었다. 두 음악가는 청중의 열화 같은 박수에 응해 앙코르를 두 곡 들려주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내일!’은 원래 피아노 반주의 성악곡이지만 선우예권은 피아노 독주 버전으로 연주했는데, 아련함이 깃든 섬세한 연주는 역시 그다웠다. 이어 연광철이 다시 슈만의 가곡 ‘그대는 한 송이 꽃’을 노래했는데, 전체 공연을 마무리하기에 적당할 만큼 기품 있는 가창이었다. 총평하자면 단순히 완성도가 높은 것을 넘어서 두 음악가가 나이 차를 넘어 서로 존경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좋은 무대였다고 하겠다.
황진규 음악칼럼니스트
슈베르트와 더불어 화려하게 꽃피기 시작한 가곡이 슈만에 이르러 다시금 정점에 이른 것, 그리고 그 슈만이 ‘낭만주의의 화신’이라 불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슈만의 가곡은 사랑이나 실연을 주된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낭만주의 시대 다른 가곡들과 비슷하지만, 감정의 격동을 훨씬 생생하게 드러낸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슈만의 섬세한 영혼은 그런 격동을 온전히 견뎌내지 못했다. 그가 정신병원에서 생애를 마쳤던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이번 공연의 1부 순서는 슈만의 <시인의 사랑>으로만 채워졌다. 작곡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는 이 연가곡은 곳곳에 동경과 환희, 비탄과 절망이 넘쳐나는 작품이다. 이런 감정 상태는 청춘이기에 발생하고, 또 청춘이기에 비로소 정당화된다. 그런데 이 곡을 부른 연광철(59)은 현재 환갑을 앞둔 성악가이다. 물론 나이 자체가 이 곡을 노래하는 데 결격사유일 수는 없다. 사실 문제는 따로 있다. 오페라에서 베이스가 맡는 역할은 크게 세 가지이다. 왕, 아버지, 악당. 예외도 있지만 많지는 않다. 그리고 연광철은 세상이 알아주는 베이스이다. 그의 목소리는 악당 역을 맡기에는 너무 고상하고, 왕이나 아버지 역할에는 적격이다. 어쨌든 셋 가운데 어떤 것도 <시인의 사랑> 같은 곡과는 거리가 있는 이미지이다. 이 괴리감은 사실 근거 없는 선입견이지만, 선입견은 논리를 초월하는 것이기에 극복하려면 역시 논리를 초월하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표현력이고, 연광철은 분명 이를 갖췄다. 그는 첫 곡 ‘기적처럼 아름다운 5월에’는 말할 것도 없고, 여러 대목에서 힘차고 열정적인 가창으로 이따금 느껴지는 관조적인 인상을 효과적으로 보완했다. 열 번째 곡 ‘언젠가 그 노랫소리 들려올 때면’처럼 그의 장중한 노래가 오히려 더 비감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절망감을 극도로 생생하게 전달한 열세 번째 곡 ‘나는 꿈속에서 울었습니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이번 <시인의 사랑>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데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5)의 헌신적이고 감각적인 반주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반주자로서 연광철을 충실히 뒷받침하면서도 슈만 특유의 낭만성을 독자적인 경지로 펼쳐 보였다. 전반적으로 감정의 동요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으며, 열다섯 번째 곡 ‘옛날 동화에서 손짓을 보낸다’에서 들려준 생동감 넘치는 표현은 일품이었다. 열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곡인 ‘낡아빠진 못된 노래들’의 꿈결 같은 후주는 시의 화자가 겪은 그 모든 고통을 온전히 보상해줄 수 있을 것처럼 아련하고도 달콤했다. 다만 곡의 여운을 음미하기도 전에 성급하게 박수가 터져 나온 것은 무척 아쉬웠다. 아무리 작은 음이라도 마지막 한 마디까지 작곡가의 자산이고, 이를 전달하는 것은 연주자의 책무이다. 그렇다면 그걸 끝까지 즐기는 것이 감상자로서, 청중으로서 마땅한 도리가 아닐까.
1부에서 들려준 반주로 미루어볼 때 선우예권은 2부 순서의 핵심인 ‘다비드 동맹 무곡’ 역시 훌륭하게 연주해내리라 기대할 수 있었고, 실제 연주도 그에 걸맞았다. 그는 첫 곡 ‘생기있게’부터 천진함과 진지함, 열망이 교차하는 연주로 청년 슈만이 느꼈을 감정의 기복을 멋지게 담아냈다. 전곡의 거의 끊지 않고 이어 연주함으로써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간 것도 돋보였고, 전체적으로 폭넓고 과감한 표현과 감각적인 터치가 돋보이는 연주였다. 다행히도 여기서는 박수 역시 마지막 여운을 음미할 수 있을 만큼 천천히 터졌다. 이후에는 다시 연광철이 슈만의 가곡 ‘내 고뇌의 아름다운 요람’과 ‘나의 장미’, ‘헌정’을 노래했다. 전체적인 해석은 아까와 비슷했지만 ‘헌정’에서 표현한 뜨거운 열정은 이전의 어떤 곡에서도 접하지 못했던 수준이었다. 두 음악가는 청중의 열화 같은 박수에 응해 앙코르를 두 곡 들려주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내일!’은 원래 피아노 반주의 성악곡이지만 선우예권은 피아노 독주 버전으로 연주했는데, 아련함이 깃든 섬세한 연주는 역시 그다웠다. 이어 연광철이 다시 슈만의 가곡 ‘그대는 한 송이 꽃’을 노래했는데, 전체 공연을 마무리하기에 적당할 만큼 기품 있는 가창이었다. 총평하자면 단순히 완성도가 높은 것을 넘어서 두 음악가가 나이 차를 넘어 서로 존경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좋은 무대였다고 하겠다.
황진규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