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니면 갈 곳도 없어요"…7080 수백명 몰렸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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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편 2000원·공연 5000원
극장 공연장 각각 하루 500명씩 인파 몰려
일반 영화관보다 자막 크고 휴게 공간도
계단마다 손잡이 난간 등 세심한 배려
매일 500~1000명씩 방문해도 적자
"노인 복지, 기초 생활 보장에 그치지 말아야"
극장 공연장 각각 하루 500명씩 인파 몰려
일반 영화관보다 자막 크고 휴게 공간도
계단마다 손잡이 난간 등 세심한 배려
매일 500~1000명씩 방문해도 적자
"노인 복지, 기초 생활 보장에 그치지 말아야"

종로구 낙원상가 4층 허리우드극장(허리우드클래식) 매표소 앞에서 만난 70대 박모 씨는 "오후 2시 30분에 시작하는 영화 '캐나다평원'을 관람하러 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고전 영화를 좋아한다는 박 씨는 거주지인 혜화동에서 이곳을 매일 오가며 영화를 관람하거나, 친구들과 담소를 나눈다. 그는 "젊었을 때는 출근할 곳이 있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으니 여기로 출근한다.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고 말했다.

초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일명 '건강한 노인'이 여가 생활을 보낼 곳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간 각종 노인 복지 정책이 의료·요양 등 환자 중심으로 설계돼 정작 건강하게 나이 든 노인들은 갈 곳이 없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노인복지시설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노인복지관은 366곳이다. 반면 노인요양시설은 4057곳에 이른다.
각 지자체가 '어르신 놀이터' 육성에 힘쓰는 가운데, 종로구의 한 민간 극장이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 낙원빌딩 4층 허리우드극장이다.

1969년 개관했던 근대식 영화관인 이곳은 2009년 김은주(50) (주)추억을 파는 극장 대표가 인수 후 노인들을 위한 '실버 영화관'으로 탈바꿈했다. 영화관에선 눈이 침침한 관객들을 위해 화면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의 큰 자막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공연장은 우렁찬 음량으로 공연을 진행한다. 휴게 공간에도 추억에 젖을 수 있는 각종 골동품이 즐비하다. 전국에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 실버 영화관은 허리우드극장을 포함해 4곳뿐이다.
이곳에선 55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영화 한 편을 2000원에 볼 수 있다. 주 1회 가수가 직접 90분짜리 공연을 펼치는 '낭만공연'은 5000원에 관람할 수 있다. 故 송해 선생님이 생전 100회 이상 거마비만 받고 진행했던 공연으로 유명하다.
매일 500~600명의 어르신들이 영화를 관람하러 방문하고, 낭만공연도 회차마다 상영관이 꽉 차 하루 500명가량의 관객이 모인다.
공연장에서 만난 서철수(80) 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공연을 보러 온다"면서 "추울 때 오면 따뜻하고, 더울 때 오면 시원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여기선 후딱 간다"며 "공연 시간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83세 이모 씨도 "앞서 영화를 이미 한 편 봤고, 이어 공연도 관람할 것"이라며 "이름만 낙원동인 게 아니라 여기가 우리한테는 진짜 낙원"이라며 "여기마저 없어지면 정말 갈 곳 없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김 대표는 "2009년 극장 인수 후 매년 적자라 집 3채를 팔았다"면서 "과거 영화업에 종사했고, 처음에는 폐관 위기에 놓인 허리우드극장의 명맥을 잇고자 이 일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나 말고는 어르신들의 공간을 꾸릴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사명감을 갖고 임한다"며 "짊어진 현실적 문제들이 무겁지만 어르신들이 '고맙다' 말씀하실 때 너무 뿌듯하다"며 "훗날 이 일을 누군가 이어 해주면 좋겠지만 사실 지원 여건이 열악한 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시를 통해 연 3000만원 수준의 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사실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관람료를 올리지 않고 양질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가수 섭외라도 시에서 도움을 주면 좋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