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오타니 신드롬
한국인의 일본 과소평가에는 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다. 평발에도 불구하고 현역 시절 아시아의 최고 왼발로 꼽힌 축구 선수 혼다 게이스케는 한국 네티즌 사이에선 ‘혼다의 세계일주’로 통했다. 그가 유럽의 빅클럽을 자주 옮겨 다닌 것을 두고 놀린 말이다. 혼다가 가장 존경한 선수가 박지성이고, 런던올림픽 한·일 간 3~4위전 승리 후 박종우가 ‘독도 세리머니’를 펼친 것에 대해서도 “애국심으로 이해한다”고 한 선수인데도 말이다.

세계에서 안타를 가장 많이 친 야구 선수 스즈키 이치로는 ‘입치료’로 조롱했다. 그의 ‘30년 망언’을 저격한 것인데, 인터뷰 원문을 보면 이치로는 한국뿐 아니라 대만을 포함한 아시아 야구의 맏형 격으로 일본의 자신감을 강조한 뉘앙스가 더 강하다. 한국 언론이 혐한으로 과장한 측면이 없지 않다.

스포츠에도 만연한 한·일 간 적대감을 허물고 있는 역대급 스타 오타니 쇼헤이가 화제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서울시리즈를 앞두고 LA다저스와 국내 팀들 간 평가전에는 그의 등번호인 17번이 적힌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1인당 2장씩으로 한정했는데도 장당 23만원짜리 유니폼은 판매 두 시간 만에 전 사이즈가 동났다.

오타니 신드롬을 불러온 것은 무엇보다 그의 인성이다. 방한 전후로 그는 SNS에 태극기 기호를 네 번이나 게시했다. 세계인의 관심거리였던 아내를 처음 공개한 사진에서는 ‘(한국 방문이) 기다려지다’란 한글 소감까지 달았다. 오타니의 한국 사랑에는 고교 시절 첫 방문 때부터 호감과 함께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면 운도 따라온다는 그의 ‘만다라트’ 계획표도 작용한 듯하다.

당대 최고의 야구 선수가 오랜 역사적 반목 관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존중과 애정을 표하는데 감동하지 않을 팬이 어디 있겠는가. 지난해 박지성이 자신의 첫 해외 구단인 일본 교토 퍼플상가를 다시 찾아 팬들 앞에서 유창한 일본어로 인사말을 하자 현지 언론이 “가슴 벅찬 역사적 순간”이라고 했다. 스포츠 스타들이 한·일 관계를 재정립하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