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해변전망대에서 사랑을 외치다, 도초도와 비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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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힘과 인간의 노력으로 빚어낸 비금도의 대동염전은 눈물 같고, 눈 같아 짜고 하얗다. 태양빛을 닮은 섬 보리는 대지에 파도를 치고, 좋아하는 이의 미소를 똑 닮은 수국은 도초도를 촉촉이 적신다.
여름을 정의하는 섬이 있다면, 도초도
지금의 나는 현실적으로 기억하기가 불가능하지만 분명 엄마 배 속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기억은 무의식에 남아 어느 때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만들고, 어느 장소에서는 그때와 같은 평화로운 기분에 젖어들게도 할 것이다. 암태남강선착장에서 비금가산여객선터미널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예전에는 비금도에 가려면 목포항에서 배를 이용해야 했는데 이제 신안의 암태남강선착장에서도 여객선을 이용할 수 있다. 신안 주민도 여행객도 반가운 일이다. 시간과 비용이 훨씬 줄어들었기 때문. 승용차를 선적하고 그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40여 분이 지났나. 눈을 뜨니 어느새 신안 비금도에 다다랐다. 어떤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목까지 꺾어가며 숙면을 취한 데는 엄마 배 속만큼 편안한 탑승감 덕분일 것이다. 비금도의 이웃 섬, 도초도까지는 대교가 건설되어 차로 약 19분이면 당도한다. 여름이면 도초도는 수국으로 환히 물든다. 강렬한 태양빛 아래 대지는 그 어느 때보다 푸르러지고 도초도의 수국은 진한 하늘색, 보드라운 분홍색, 발그레한 볼처럼 여름을 물들인다.마을도 그를 닮아 집집마다 지붕색이 파랗다. 1000여 개 이상의 섬이 있어 천사섬으로 불리는 신안은 각 섬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적극적으로 꺼내 보이고 있는 중이다. 수국공원 인근의 언덕에는 빼놓지 않고 가봐야 할 명소가 자리한다.
조선이 낳은 지식인, 대한민국 국민이 영원히 존경할 정씨 형제 중, 손암 정약전과 관련된 곳이다. 쫀쫀한 햇살을 맞으며 언덕길을 걸어 오르자 단단한 맵시를 자랑하는 초가집이 보인다.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이 지낸 초가를 재현해놓은 것이다.
선생은 신안의 흑산도에서 오랜 유배 생활을 했다. 함께 유배길에 오른 동생,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 머물게 되어 형제는 살아서 다시 만나질 못했다. 그리운데 만날 수 없는 절절한 마음에 파묻히는 대신 두 형제는 유의미한 작업을 이어나갔다.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 생활 중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집필했다. 흑산도 주변의 물고기와 해양생물을 종류별로 분류하여 이름, 모양, 습성, 맛, 건강 효능, 민속, 고기잡이 도구까지 정리한 이른바 물고기 백과사전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실학자로서 정약전은 늘 백성의 삶을 염려했다. 그가 <자산어보>를 집필한 계기도 그에 있다.
온 삶을 걸어 물고기를 낚는 뱃사람이지만 자신들이 늘 낚는 물고기가 어떤 쓰임이 있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잘 모르는 점을 안타까이 여긴 것이다. 영화 촬영을 위해 마련된 초가에 앉아 신안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정씨 형제의 어질고 큰마음처럼 한없이 넓고 깊은 푸른 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사람과 자연이 빚은 예술작품, 비금도
신안에서 출생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물에 빼놓을 수 없는 세 사람. 하의도가 고향인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안좌도가 고향인 현대미술의 거장 수화 김환기, 비금도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이다.2016년 열린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의 대결은 지금도 회자되는 역사적인 명장면. 이세돌 9단은 4국에서 180수 백불계승으로 첫 1승을 이뤄낸다. 감정 없는 AI를 인간이 뛰어넘을 수 있는가? 인간 실존의 의문을 가진 이들에게 감동의 여운과 쾌감을 전하기에 충분한 승리였다. 이 대결은 4 대 1로 알파고가 최종 승리했지만, 승패를 떠나 이세돌 9단이 우리에게 건넨 과제와 감동은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것이었다. 비금도 이세돌바둑기념관에 들러 그가 남긴 영광의 기록들을 마주했다. 이세돌 9단의 첫 번째 스승이자 영원한 스승은 그의 아버지였다.
작은 섬마을에서 농사일, 바둑, 개인 연구 활동까지 할 정도로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던 이수오 씨는 5세의 이세돌에게 바둑을 가르치며 일찍이 재능을 간파한다. 이세돌은 친형 이상훈을 따라 12세의 어린 나이에 입단해 ‘불패소년’이라는 별명을 얻고,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아는 천재 바둑기사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우리 어른은 누구나 작은 아이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작은 아이가 안락한 새장을 열고 훨훨 날아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도록. 결국 어른의 삶도 풍요로워질 테니. 오후가 되어 햇살이 좀 누그러지면 비금도 대동염전(국가등록문화재 제362호)에 눈꽃이 그러모아진다. 가산리 일대, 총 면적 45만3131㎡ 규모에 달하는 대동염전은 비금도의 주민들이 염전조합을 결성하여 조성한 것으로 저수지와 바닷물을 잡아두고 졸이는 증발지, 소금물을 농축시켜 소금으로 만드는 결정지, 간수를 보관하는 해주가 조화를 이루어 천일염전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비금도 곳곳에는 저마다의 개성을 간직한 해변이 자리한다. 명사십리해변은 해변이 크고 넓은 데다 토양이 단단해 차를 이용해 해변을 달릴 수도 있다. 말 그대로 CF의 한 장면. 비금도에 들렀다면 빼놓지 않고 가봐야 할 곳이다.
바다 한가운데 두 개의 등대가 마주 보고 있는 원평해수욕장에는 작은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름 모를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바다 가운데 점점이 떠 있는 무인도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내촌마을을 기준으로 왼쪽 방향에는 하누넘 해안, 오른쪽에는 고즈넉한 마을 끝자락에 내포해변이 자리한다. 내촌마을은 17~18세기에 형성된 유서 깊은 마을로 집집마다 막돌을 사용하여 쌓은 담장(국가등록문화재 제283호)이 인상적이다. 마을 뒤의 언덕을 향해 오르면 하트해변전망대. 해안이 하트 모양으로 형성된 하누넘 해변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해안의 하트 모양을 제대로 보고 싶으면 방문 전 물때 확인은 필수. 해변에 물이 가득 들어찬 시간, 전망대에 서면 완벽한 하트가 드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