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Ctrl+z' 같은 인생, 그래도 늦지 않았다
한글 프로그램에서 자주 활용하는 단축키 중에 ‘Ctrl+z’가 있다. 잘못 작성한 글이나 표를 이전 단계로 계속 돌릴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우리도 살다 보면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면서 아쉬워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50~60대 인생 이모작을 준비해야 하는 중장년층 모임에 가보면 ‘Ctrl+z’ 기능을 활용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나도 기술을 배웠어야 했는데”, 기술을 배운 친구는 계속 일하고 있는데 기술이 없는 친구들은 산에 가 소일할 수밖에 없다는 푸념이다.

육체적 노동과 손기술을 경시하던 문화가 낳은 결과다. 다행히 최근에는 기술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국가기술자격 시험에 도전하는 중장년층이 늘고 있고 제과, 게임 개발 등 기술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찾는 청년도 증가하고 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며 막연히 스펙을 쌓기보다는 손에 잡히는 기술 하나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청년이 늘어가고 있다. 명문대를 졸업하거나 학업을 중퇴하고 자기만의 일과 시간의 가치를 찾아 기술직에 뛰어드는 젊은 그들이다. 산업현장의 마이스터, 즉 장인의 길로 직업 경로를 택해 꾸준히 개척해 나가는 ‘고슴도치형’ 인재들이다.

여성 목수 이아진 씨(23), 5년 차 목수인 그는 유학 경험자다. 건축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18세 때부터 목수로 일하고 있다. 그가 개설한 ‘전진소녀의 성장일기’라는 제목의 유튜브 채널은 개설 4년 만에 구독자 14만여 명을 모으며 세상을 바꿔 가고 있다. 여성 도배사 배윤슬 씨(29), 명문대 출신인 그는 2년의 도배사 경험을 글로 써서 출간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사회복지사로 일하다가 사표를 내고, 도배 기술을 익혀 2019년부터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목수수첩’팀은 2030세대로 구성된 젊은 시공팀이다. 시공과 관련한 노하우, 경험담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올리며 청년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국립대를 졸업한 조수성 목수수첩 팀장(35)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온 것이기 때문에 즐기면서 하고 있다”며 “업무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9.2점”이라고 강조했다. 체면을 벗어나 묵묵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기술 및 기능 영역에 도전해 땀을 흘리는 그들의 삶이 진정한 자유다.

한국은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서 19번 종합 우승한 기술 강국이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성공은 이렇게 꾸준한 연습을 통해 산업현장에서 성장한 숙련기술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동안 기술인 육성에 대한 소홀함과 저출산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는 국가 역량의 총합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청년과 중장년층이 노동시장에서 기회비용 없이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평생직업능력개발 상식’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기술을 배우는 것이 도전이 아니라 상식이 돼야 국가 역량을 늘려갈 수 있다.

“배관공이 되었습니다. 직접 나사를 깎고, 용접해서 도면에 따라 배관 모형을 완성했습니다. 10기압의 수압 테스트 합격!”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어느 중장년 기술 훈련생의 자신감이 자유의 외침으로 들린다. 인간은 늘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다. 일에서의 자유는 흥미롭고 가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 하는 자기 결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선 주인공이 “내 가치를 네가 정하지 마”, “내 인생 이제 시작이고 나 원하는 거 다 이루면서 살 거야”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있다. 기술의 가치로 나의 가치를 더 높이는 용기와 도전에 나서길 권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