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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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버지가 불러 뜬금없이 "인생은 요령이다. 요령껏 살아라"라고 했다. 연일 야근하느라 한집에 살아도 뵌 지 오래됐다. 은행에 들어간 걸 탐탁지 않아 한 아버지는 자식의 직장 일에 대해 이제껏 말씀이 없었다. 아버지는 전화 통화를 우연히 엿들었다며 계수계획은 잘 만들었냐고 묻고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느닷없이 상사의 말에 토를 달지 말라고 지적했다. “토를 달면 거역하거나, 반박하거나, 따르지 않는 것을 뜻한다면서 자칫하면 명령에 불복종하는 행위로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문제 된 건 본부에서 준 보고 서식을 무시해서였다. 제시된 보고양식이 단발적이고 예측이 자의적이라고 판단했던 때문이다. 다음 해 계수계획 작성 지시를 받고 처음 하는 일이라 학교에서 배운 대로 했다. 시계열 자료로 추세치를 상관분석해 수요예측을 했다. 거기에다가 고객변동 등 외부환경요인을 더해 시장 예측을 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를 본 상사가 전화해 양식을 바꾸면 안 된다고 한 데서 설명이 길어져서였다. 아버지께는 상사가 지적한 대로 잘 마무리했다고 말씀드려 안심시켰다. 그 말에 아버지는 산 중턱에 올라간 상사가 이제 막 산행을 시작해 잘못된 길로 오르는 너를 본 거다라며 부딪치는 난관을 극복해가며 정상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앞서간 이를 따르는 게 현명한 처신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버지는 평소처럼 요령(要領)’ 한자를 파자해가며 설명했다. ‘중요할 요()’자는 허리에 손을 올린 여인으로 무희가 춤추는 모습을 본뜬 글자다. 본래는 허리 요()’였으나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중요하다’, ‘요긴하다로 바뀌었다. ‘거느릴 영()’자는 영령()’ 자와 머리 혈()’ 자가 합쳐진 글자다. 대궐 앞에서 명령을 내리는 군주를 그린 것으로 사람의 목이 중심이 됨을 나타내 옷깃 영으로도 쓴다.

아버지는 옛날에는 죄인을 사형에 처할 때 무거운 죄는 허리를 베고 가벼운 죄는 목을 베었다라며 요령에 대한 설명을 보탰다. 삼국시대에는 목을 베는 참수(斬首)와 허리를 베는 참결(斬決), 참요(斬腰)가 있었다. ‘요령은 옷의 허리띠와 깃을 말한다. 옷을 들 때는 허리띠 있는 곳과 깃이 있는 곳을 들어야만 옷을 제대로 들 수 있다. 여기에서 허리띠와 깃이 요긴한 곳을 가리키는 말로 변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경찰이 범인을 체포할 때 몸의 중심인 허리띠를 잡는다.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어서다. 격렬하게 저항하더라도 허리띠를 잡고 있으면 쉽게 도망갈 수 없다라고 예를 들었다. 이어 "'체포 및 연행 업무 지침'에는 없지만, 범인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체포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흔히 쓴다"고 소개하며 "그게 바로 요령이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대체로 요령은 업무 지침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 오직 상사가 도제식(徒弟式)으로 전수할 뿐이다라며 그 때문에 상사의 방식에 토를 달지 말라고 다시 강조했다.

아버지는 요령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효율적이고 간단한 방법이다. 숙련도, 경험이나 지식을 통해 습득되는 실용적인 기술이다. 똑똑하고 효과적으로 일하는 능력과 직결된다라고 했다. “요령은 시간과 노력을 줄이고 더 많은 일을 더 빨리 쉽게 이뤄내 효율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한마디로 일 처리를 세련되게 한다며 그로 인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고 요령의 장점을 들었다.

아버지는 요령은 고사성어 요령부득(要領不得)’에서 왔다라며 “‘사물의 중요한 부분을 잡을 수 없다라는 말이다. 말이나 글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라고 했다. 사기(史記) 대원전(大宛傳)에 나온다. 한무제(漢武帝)가 흉노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서역과의 교류를 강화하고자 장건(張騫)을 파견했다. 장건은 흉노의 포로가 돼 10여 년을 억류 생활하며 아내를 얻어 자식까지 낳았다. 흉노가 안심했을 때 도망쳐 대월지국에 갔으나 교섭에 실패했다. 귀로에 또 흉노에게 붙들려 1년여를 억류되어 있다가 무려 13년 만에 한나라로 돌아왔다. 사관은 이 일을 "장건은 사명으로 그 요령을 얻지 못했다[騫不得其要領]"라고 적었다.

아버지는 인생은 요령이다라며 맹목적인 노력보다는 효율적인 방법을 통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도, 영리한 전략과 요령을 활용하면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요령껏 살라고 한 아버지는 유연성을 기르기를 당부했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고하는 게 유연성을 기르기에 좋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손주들에게도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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