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보라/사진=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배우 남보라/사진=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시작부터 남달랐다. 2005년, 당시 주말 저녁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MBC '일밤-천사들의 합창'에 가족들이 출연하면서 남보라는 둥글고 귀여운 눈매에 똑 부러지는 장녀로 11남매를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단숨에 화제를 모았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남보라는 본래 연예계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이후 빗발치는 러브콜에 이듬해인 2006년 KBS 2TV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남보라에게는 2명의 동생이 더 생겼고, 10대였던 소녀는 의젓한 30대가 됐다. "얼떨결에 연기를 시작해 '이 길이 내 길이 맞나'라는 고민을 계속 했다"는 남보라는 한 때 공황장애를 겪은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제 답을 얻었다"면서 환한 미소와 함께 "나를 보고 사람들이 재밌고 유쾌한 감정을 느꼈으면 한다"면서 "나를 보며 즐거워했으면 좋겠다"면서 배우로서 목표를 전했다.

남보라의 가장 최근작인 KBS 2TV '효심이네 각자도생'의 정미림은 그런 그의 마음을 담아 마음껏 연기한 캐릭터였다. 변호사라는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을 두고 배우가 되고 싶어 부모님의 지원 없이 살기 위해 고시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남편 효준(설정환 분)도 만났다. 아이부터 덜컥 생기고, 뭘 하든 '우당탕탕'하는 모습에 시어머니 선순(윤미라 분)에게 갖은 구박도 당하지만 "어머님 힘내세요"라며 치어리딩부터 부채춤까지 선보이는 미림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귀엽다"면서 응원을 보냈다.
배우 남보라/사진=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배우 남보라/사진=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연기자로서 '발연기'를 연기해야 했던 것에 대해 남보라는 "직관적인 발연기가 느껴지도록 하는 게 포인트였다"며 "그러면서도 미림이의 진정성을 전달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했다"면서 발연기를 위해 쏟은 남다른 노력을 전했다. 그러면서 "저 역시 미림이와 같은 상황을 경험했다"면서 몰입에 어려움이 없었다고 전했다.

"대사를 과하게 올린다거나, 이상한 데에서 호흡을 끊는다거나, 과장되게 호흡한다거나 하는 '쪼'를 주면서 연기를 했어요. 그리고 저 역시 미림이와 같이 오디션에 떨어지고, 열심히 촬영해도 편집되는 상황들을 겪었기에 더 몰입됐어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이 미림의 대사에 녹아 있었어요. 대사를 하면서 제 경험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요. 미림이가 얼마나 속상했을지 이해도 됐죠."

미림에게 흠뻑 빠져 살던 남보라도 대본을 보고 깜짝 놀랐던 건 시어머니 앞에서 제시의 '눈누난나'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었다. 남보라는 "대본이 나오기 2주 전에 (조정선) 작가님이 한 댄스스쿨 영상을 보내주시면서 '준비하라'고 하셨다"며 "그 영상을 보며 미리 준비를 해두긴 했다"면서 촬영 후일담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따로 레슨을 받진 않았다"며 "절대 그 폼이 나오지 않을 거 같았고, 미림이답게 해야 하지 않겠나 싶더라. 시어머니를 재밌게 해주고 싶은 미림의 몸놀림이었다"고 설명했다.

미림은 전문직 고연봉의 변호사이지만, 남편은 변호사 지망생이다. 그런데도 시가에 함께 산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에게 구박당하는 모습에 일부 시청자들은 "미림이 정도의 능력이면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사는 모습을 보여줘도 충분히 멋있었을 거 같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남보라는 "미림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이 여성이 가정에서 갖는 역할에 대한 과도기적인 반응을 반영한 거 같다"고 해석했다.

"미림이 며느리가 됐으니 그 집안 살림을 다 맡아서 하고, 손님을 맞이하는데 저 역시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연기했던 거 같아요. '며느리니까 해야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몇몇 시청자들이 '미림이가 왜 저기서 그러고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도 미림이가 하는 모든 것들은 저희 드라마에서 전하고자 했던 '효'에 대해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며느리의 '효'를 미림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 거 같아요."
배우 남보라/사진=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배우 남보라/사진=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미림이는 살림에 서툴지만, 남보라는 동생들을 돌보며 성장했고, 식당을 운영하는 엄마의 레시피를 유튜브를 통해 공개할 만큼 빼어난 솜씨의 소유자다. 누군가의 며느리, 아내가 된 남보라의 모습을 가족들은 어떻게 봤는지 묻자, 남보라는 "부모님은 편안하게 연기하는 게 보인다고 응원해 주시고, 단톡방이 따로 있는 '5자매'들은 '언니가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우리에게 맛있는 걸 사주는구나', '언니가 춤추고 부채춤을 춰서 나온 결과물이구나' 하며 더 고마워하더라"라고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1989년생, 어느덧 30대 중반이 돼 주변엔 기혼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남보라는 "제가 '육퇴'(육아 퇴근)를 한 지 얼마 안 됐다"면서 실제로는 결혼 생각이 크지 않다고 고백해 폭소케 했다. 실제로 남보라의 막냇동생은 그가 대학교에 입학한 후 태어났다. "막내를 아들처럼 키우고, 학원도 직접 알아보고 보냈다"는 남보라는 "최근에야 육아에 손을 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주변엔 결혼하는 분들이 많지만, 저는 결혼 생각이 안 난다"며 "대화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50대분들이랑 더 잘 맞는 거 같다"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CEO라는 또 다른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남보라는 '효심이네 각자도생'에 출연하기 전까지 보라 도리를 운영하며 고용노동부가 뽑은 예비 사회적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효심이네 각자도생'에 집중하기 위해 사업은 잠시 접어놓았지만,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이 사업가였을 정도로 해보고 싶던 일이라 힘들어도 지치지 않는다"면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직은 예비 사회적 기업 단계지만, 앞으로 밀키트 등을 판매하며 사업 영역을 넓히고, 사회적 기업으로 점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거 같아요. 그동안 실적을 쌓기엔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어요. '하고 싶다고 다 할 순 없구나'라는 걸 느끼면서,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집중하려 해요."

남보라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유튜브 콘텐츠를 지속해서 선보였던 것도 사업과 연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붙잡고 싶다는 열정에서였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배우 남보라와 인간 남보라, 사업가 남보라의 모습을 모두 보여줄 수 있기 때문. 최대한 친절하게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유 역시 크게 보면 사업 확장의 영역과 연결돼 있다.

"생각보다 요리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영상을 만들 때 최대한 쉽게, 잘 설명해드려야겠다 싶었어요. 밀키트 등 간편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요리 콘텐츠를 제작하면서부터였어요. 간편하고 손쉽게 요리하고, 맛도 좋으면 사서 먹을 때보다 만족도가 더 높더라고요. 유튜브를 하면서 협업 제안이 오는 것도 바라고 있어요. 하하."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