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역 유동인구를 쇼핑몰로 보내려고 개발업자가 벌인 일[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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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를 바꾼 빌딩들 >
박희윤 지음/북스톤
296쪽|1만9000원
오피스 빌딩을 뚱뚱하게 만들자 기업들이 좋아했다
박희윤 지음/북스톤
296쪽|1만9000원
오피스 빌딩을 뚱뚱하게 만들자 기업들이 좋아했다
디벨로퍼라 불리는 부동산 개발업자. 왠지 매정하고 돈만 밝힐 것 같은 어감이지만 이들은 도시의 모습을 바꿔주는 주역이다. 일본 도쿄가 그런 예다. 롯폰기, 마루노우치, 시부야, 하라주쿠 등 ‘도쿄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동네를 특색 있고 현대적으로 바꾼 것도 이들이다.
<도쿄를 바꾼 빌딩들>은 디벨로퍼들의 활약을 담은 이야기다. 저자 박희윤은 롯폰기 힐즈 등으로 유명한 일본 부동산 개발업체 모리빌딩에 한국인 최초로 입사했다. 이후 12년 동안 모리빌딩의 컨설팅회사인 모리빌딩도시기획의 수석 컨설턴트 및 한국 지사장을 지냈다. 지금은 HD현대산업개발 개발본부장을 맡고 있다. 책은 최근 개장한 아자부다이 힐즈를 비롯해 롯폰기 힐즈, 도쿄 미드타운, 마루노우치 마루빌딩, 니혼바시 코레도, 긴자식스 등 주요 도쿄 빌딩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마루노우치는 한국으로 치면 광화문과 여의도, 서울역 앞을 합쳐놓은 곳이다. 금융사, 언론사, 대기업 등 4100여 회사와 25만명의 회사원이 밀집한 일본 최대 오피스 거리다. 일본 경제 거품기인 1980년대에 마루노우치 지역 빌딩에 입주하고 싶은 오피스 수요가 최고조에 이르렀으나 1990년대에 거품이 꺼지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에비스, 시나가와 시오도메, 롯폰기 등 새롭게 개발된 지역으로 기업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미쓰비시그룹의 디벨로퍼 미쓰비시지쇼에 큰 위기였다. 미쓰지지쇼는 마루노우치 땅의 70%를 소유하고 있다. 한국의 광화문 종합청사, 세종대로변 교보빌딩, 서울프레스센터, 시청 앞 플라자호텔, 남대문 삼성빌딩,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를 한 회사가 모두 소유한 것과 같다. 미쓰비시는 바둑판에 돌을 놓듯 차근차근 마루노우치를 재개발하기 시작했다. 우선 도쿄역에 주목했다. 하루 200만명이 도쿄역을 이용했지만 역 밖으로는 잘 나오지 않았다. 오피스 지역이었기 때문에 업무 목적이 아닌 사람은 굳이 마루노우치를 걸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쿄역 유동 인구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첫 번째 포석이 2002년 준공한 마루노우치 마루빌딩이다. 저층을 패션과 식음료 점포로 채웠다. 건물 한쪽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다양한 이벤트를 여는 유리 아트리움 마루큐브를 붙였다. 그리고 31m 떨어진 곳에 마이 플라자 빌딩을 세웠다.
저자는 “상업 활성화를 위한 2핵 1몰 구조”라고 설명한다. “사람을 그 지역으로 끌어모으는 집객장치를 으레 ‘자석’에 비유하는데, 자석이 하나만 있으면 사람들이 그 자석 건물에만 머물며 지역을 돌아다니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일정 거리를 둔 2개의 집객 거점을 만들고 그 거점 간의 거리를 매력적으로 가꿀 때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미쓰비시는 이런 생각에서 두 건물 사이의 거리를 소비자 친화적으로 바꿨다. 저층부의 은행 등을 퇴점시키고 매력적인 상점을 유치했다. 차도를 좁히고 보도를 넓히면서 가로등과 벤치, 화단, 거리조각 등을 배치해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루노우치 어느 건물에 주차하든 같은 쇼핑몰에 주차한 것처럼 할인받을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삭막한 오피스 거리였던 곳이 전철로도 자동차로도 찾아오기 쉬운, 쇼핑과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활기차고 정감 있는 동네로 재탄생했다. 물론 이는 마루노우치 재생 프로젝트의 일부분일 뿐이다.
저자가 일했던 모리빌딩은 미쓰비시지쇼나 미쓰이부동산 등 대기업 계열 디벨로퍼가 아니다. 경제학 교수였던 모리 다이키치로가 1955년 설립한 부동산 개발 전문회사다. 아크 힐즈, 롯폰기 힐즈, 오모테산도 힐즈, 아부다자이 힐즈 등 도쿄 건축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규모 빌딩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00년 롯폰기 힐즈를 착공하고 나서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모리빌딩이 망하는구나”라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개발 전 롯폰기는 외국인 거주지이자 유흥지구라는 인식이 강했다. 상업 시설과 오피스는 들어오려는 시도조차 없던 곳이었다. 이런 동네에 연면적 오피스 10만명, 상업시설 2만5000평이 넘는 대규모 복합시설을 짓는 건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2003년 문을 연 후 20년 동안 4000만명이 롯폰기 힐즈를 다녀갔다. 21세기 일본 도시개발의 상징으로 꼽힌다. 삶과 일, 문화, 쇼핑을 한 곳에 모은다는 콘셉트가 먹혔다. 롯폰기 힐즈는 전망대가 있는 고층부에 ‘모리 미술관’을 넣었다. 레스토랑, 영화관, 오피스, 집처럼 살 수 있는 레지던스도 있다. 특히 오피스 임차인으로 골드만삭스, 맥킨지, 구글 재팬 등 유명 글로벌 기업이 많다. 54층짜리 오피스 건물이 뚱뚱한 게 도움이 됐다. 보통 고층 건물은 서울의 롯데월드타워처럼 높아질수록 좁아지는 경향이 있다. 롯폰기 힐즈는 사무실 한 개 층이 약 5400㎡(1630평)에 이른다. 꼭대기 층까지 다 같다. 이게 기업들에 호평받았다. 어지간히 큰 기업도 한 층에 모든 기능을 집약할 수 있었다.
관광지처럼 스쳐 지나갔던 일본 주요 빌딩들의 이야기를 디벨로퍼 관점에서 풀어낸 흥미로운 책이다. 다만 책을 다 읽고 나면 궁금증이 생긴다. 한국은 왜 이런 개발이 잘 이뤄지지 못할까.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무엇일까.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도쿄를 바꾼 빌딩들>은 디벨로퍼들의 활약을 담은 이야기다. 저자 박희윤은 롯폰기 힐즈 등으로 유명한 일본 부동산 개발업체 모리빌딩에 한국인 최초로 입사했다. 이후 12년 동안 모리빌딩의 컨설팅회사인 모리빌딩도시기획의 수석 컨설턴트 및 한국 지사장을 지냈다. 지금은 HD현대산업개발 개발본부장을 맡고 있다. 책은 최근 개장한 아자부다이 힐즈를 비롯해 롯폰기 힐즈, 도쿄 미드타운, 마루노우치 마루빌딩, 니혼바시 코레도, 긴자식스 등 주요 도쿄 빌딩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마루노우치는 한국으로 치면 광화문과 여의도, 서울역 앞을 합쳐놓은 곳이다. 금융사, 언론사, 대기업 등 4100여 회사와 25만명의 회사원이 밀집한 일본 최대 오피스 거리다. 일본 경제 거품기인 1980년대에 마루노우치 지역 빌딩에 입주하고 싶은 오피스 수요가 최고조에 이르렀으나 1990년대에 거품이 꺼지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에비스, 시나가와 시오도메, 롯폰기 등 새롭게 개발된 지역으로 기업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미쓰비시그룹의 디벨로퍼 미쓰비시지쇼에 큰 위기였다. 미쓰지지쇼는 마루노우치 땅의 70%를 소유하고 있다. 한국의 광화문 종합청사, 세종대로변 교보빌딩, 서울프레스센터, 시청 앞 플라자호텔, 남대문 삼성빌딩,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를 한 회사가 모두 소유한 것과 같다. 미쓰비시는 바둑판에 돌을 놓듯 차근차근 마루노우치를 재개발하기 시작했다. 우선 도쿄역에 주목했다. 하루 200만명이 도쿄역을 이용했지만 역 밖으로는 잘 나오지 않았다. 오피스 지역이었기 때문에 업무 목적이 아닌 사람은 굳이 마루노우치를 걸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쿄역 유동 인구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첫 번째 포석이 2002년 준공한 마루노우치 마루빌딩이다. 저층을 패션과 식음료 점포로 채웠다. 건물 한쪽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다양한 이벤트를 여는 유리 아트리움 마루큐브를 붙였다. 그리고 31m 떨어진 곳에 마이 플라자 빌딩을 세웠다.
저자는 “상업 활성화를 위한 2핵 1몰 구조”라고 설명한다. “사람을 그 지역으로 끌어모으는 집객장치를 으레 ‘자석’에 비유하는데, 자석이 하나만 있으면 사람들이 그 자석 건물에만 머물며 지역을 돌아다니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일정 거리를 둔 2개의 집객 거점을 만들고 그 거점 간의 거리를 매력적으로 가꿀 때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미쓰비시는 이런 생각에서 두 건물 사이의 거리를 소비자 친화적으로 바꿨다. 저층부의 은행 등을 퇴점시키고 매력적인 상점을 유치했다. 차도를 좁히고 보도를 넓히면서 가로등과 벤치, 화단, 거리조각 등을 배치해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루노우치 어느 건물에 주차하든 같은 쇼핑몰에 주차한 것처럼 할인받을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삭막한 오피스 거리였던 곳이 전철로도 자동차로도 찾아오기 쉬운, 쇼핑과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활기차고 정감 있는 동네로 재탄생했다. 물론 이는 마루노우치 재생 프로젝트의 일부분일 뿐이다.
저자가 일했던 모리빌딩은 미쓰비시지쇼나 미쓰이부동산 등 대기업 계열 디벨로퍼가 아니다. 경제학 교수였던 모리 다이키치로가 1955년 설립한 부동산 개발 전문회사다. 아크 힐즈, 롯폰기 힐즈, 오모테산도 힐즈, 아부다자이 힐즈 등 도쿄 건축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규모 빌딩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00년 롯폰기 힐즈를 착공하고 나서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모리빌딩이 망하는구나”라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개발 전 롯폰기는 외국인 거주지이자 유흥지구라는 인식이 강했다. 상업 시설과 오피스는 들어오려는 시도조차 없던 곳이었다. 이런 동네에 연면적 오피스 10만명, 상업시설 2만5000평이 넘는 대규모 복합시설을 짓는 건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2003년 문을 연 후 20년 동안 4000만명이 롯폰기 힐즈를 다녀갔다. 21세기 일본 도시개발의 상징으로 꼽힌다. 삶과 일, 문화, 쇼핑을 한 곳에 모은다는 콘셉트가 먹혔다. 롯폰기 힐즈는 전망대가 있는 고층부에 ‘모리 미술관’을 넣었다. 레스토랑, 영화관, 오피스, 집처럼 살 수 있는 레지던스도 있다. 특히 오피스 임차인으로 골드만삭스, 맥킨지, 구글 재팬 등 유명 글로벌 기업이 많다. 54층짜리 오피스 건물이 뚱뚱한 게 도움이 됐다. 보통 고층 건물은 서울의 롯데월드타워처럼 높아질수록 좁아지는 경향이 있다. 롯폰기 힐즈는 사무실 한 개 층이 약 5400㎡(1630평)에 이른다. 꼭대기 층까지 다 같다. 이게 기업들에 호평받았다. 어지간히 큰 기업도 한 층에 모든 기능을 집약할 수 있었다.
관광지처럼 스쳐 지나갔던 일본 주요 빌딩들의 이야기를 디벨로퍼 관점에서 풀어낸 흥미로운 책이다. 다만 책을 다 읽고 나면 궁금증이 생긴다. 한국은 왜 이런 개발이 잘 이뤄지지 못할까.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무엇일까.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