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되는 입양아의 삶을 통해 본 인간, 가족, 그리고 공동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영화 <조용한 이주> 리뷰

영화 '조용한 이주'는 덴마크에 사는 한국인 입양아, ‘칼’ (코르넬리우스 클라우센) 과 그의 입양부모를 통해 정체성과 가족의 의미를 찾는다. 열아홉 살 칼은 덴마크의 한적한 시골에서 양부모와 함께 조용하고 단조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의 양부모는 언젠가 칼이 가족의 젖소 농장을 물려받아 가업을 잇기를 바란다. 시간이 흐르면서 칼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 한국이라는 세계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고자 한다. 그러나 수술을 받아야 하는 아버지와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 사이에서 그는 갈등한다.


칼의 외로운 일상은 함께 일하는 외국인 동료, 안제이와 가까워지며 변화를 맞이한다. 낙농업을 배우기 위해 가족을 떠나 칼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안제이에게 칼은 동질감을 느낀다. 동시에 칼은 동네에 사는 유일무이한 동양인 소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에게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들은 궁극적으로 칼로 하여금 태어난 곳, 한국에 대한 더 큰 호기심과 그리움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의로도, 타의로도 현재의 덴마크 가족을 떠날 수 없다.

전반적으로 말레나 최의 '조용한 이주'는 주제면에서, 미학적인 면에서 모두 실험적인 시도로 가득한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촬영 뿐 아니라, 영화는 환타지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칼이 상상하는 생모와 한국으로의 여정을 재현한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이러한 환타지 장면들은 80년대 괴기영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직설적이고 올드한 방식으로 보여지지만 덴마크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공간, 그리고 출생지로부터 오랜 거리와 시간을 두고 지낸 칼의 여정과 궁극적으로는 잘 어울리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말레나 최의 영화는 현재도 놀랍지만 앞으로 더 놀라울 것이다. 이방인의 부유 (浮遊)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당위를 추적하는 그녀의 행보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