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볼롱의 정물화속 ‘버터 더미’는 왜 상온에 방치돼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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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용재의 맛있는 미술관

음식평론가다 보니 나는 이런 작품을 보고도 좀 결이 다른 걱정을 한다. 아니, 이 많은 버터를 그냥 상온에 둔 거야? 그리고 바로 나의 멍청함을 깨닫는다. ‘버터 더미’는 1875~85년 사이에 그려졌고 우리가 아는, 프레온 가스를 냉매로 쓰는 냉장고는 1918년이 돼서야 미국의 제네럴 일렉트로닉스에 의해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냉장기술의 대중화 이전이었으니 버터는 그렇게 상온에 두고 먹는 식재료였을 것이다.

하지만 맛은 썩 좋지 않을 것이다. 상온, 즉 섭씨 20도라면 버터가 너무 녹아 기름져서 제맛을 못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그림에 매혹되더라도 따라하지 말고, 버터는 냉장고에 두고 먹을 것을 권한다. 원래 싸여 나오는 포장 채로 두었다가 먹을 때마다 조금씩 저며 얹거나 바른다. 예를 들어 따뜻하게 구운 빵에 차가운 버터를 얹으면 온도와 질감의 대조가 먹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그런 가운데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도 품질이 괜찮은 버터들이 그럭저럭 수입되고 있다.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는 물론 의외의 강자인 덴마크, 아일랜드, 영국 등 선택의 폭이 꽤 다양하다. 그런 버터들을 사서 포장지를 까보면 색깔이 대체로 볼롱의 그림에 등장하는 것처럼 누런색이다. 소가 뜯어 먹은, 싱싱한 풀이 함유한 카로틴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 소는 풀을 먹어야 우유(와 크림)도 고기도 더 맛있다고들 한다.

작품의 버터가 볼롱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실마리는 또 하나 있다. 앞서 언급했듯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못했었던 시기이므로 당시의 버터에는 방부제로서 소금 양념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요즘도 프랑스산 가염 버터는 무게 대비 1.5~2퍼센트의 소금을 더하는데 꽤 짠 편이다. 따라서 아내와 아들 둘의 네 식구였던 볼롱 가족이 먹자고 이만큼을 샀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작품의 계란과 견주어 보면 양을 파악할 수 있다).
말하자면 버터가 모델로 출연했을 거라는 말인데, 이처럼 정물이 볼롱의 작품 세계를 아주 풍요롭게 구축해 주었다. ‘춘희’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가 팬이었다는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듯, 볼롱의 작품은 오늘날 상당수가 개인 소장품이다. ‘버터 더미’는 미국 워싱턴 DC의 국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