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파괴적 '네로 명령'과 의사 '집단 사직' [김동욱의 역사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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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3월 19일 독일의 패망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아돌프 히틀러는 ‘네로 명령(Nerobefehl)’이라고 불리는 ‘자기파괴 명령’을 냈다.
“독일 내 모든 군사적 교통수단, 방송 장비, 산업시설과 생활 관련 시설들을 적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즉시, 혹은 가능한 한 단시간 내에 파괴하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자살·자폭 명령은 1945년 3월 이후까지 독일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던 일부 지역에서 거침없이 수행됐다.
전쟁이 막바지로 갈수록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을과 도시를 사수하다 죽어라’라거나 ‘무기를 손에서 놔선 안 된다’라는 비이성적인 명령이 잇따랐다.
비합리적 명령에는 도시를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은 사살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히틀러의 비이성적인 명령에 열렬히 따르는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적지 않았다. 여전히 독일 내 상당수 지역에서 총통의 명령은 최고의 규범이었다.
나치당과 SS, 열렬한 나치 추종자들은 ‘파괴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들은 6주간에 걸쳐, 적군의 폭격과 포격이 파괴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부숴버렸다.
그들은 또 마을을 파괴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반대하는 자, 태업하는 자들에 대해 총살형과 교수형을 취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기 수 주에 걸쳐 독일인들은 한편으론 적군에 의해서, 다른 한편으론 자국 정부 기관에 의해 조국이 타오르는 모습을 봐야 했다.
‘네로 명령’에 앞서 2월 20일엔 제국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가 ‘유대인이 관련된 독일 내 모든 문서(비밀문서이거나 다루기 까다로운 모든 문서)를 조직적으로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어떻게 이렇게 극단적인 명령이 나올 수 있었을까. ‘천년 제국’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나치 독일에선 ‘히틀러 이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1933년에 총통(히틀러)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던 바이마르 시대의 정치인들이 대거 숙청됐다. 1944년에는 추가로 수천 명의 바이마르 시대 정치인과 관료들이 체포됐다.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을 때 히틀러는 자신의 조국이 “차라리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 더 좋고, 필연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1944년 말이 되면 독일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독일 지도부는 물론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를 입 밖에 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항복이나 강화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강요됐다.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Sein oder Nichtsein)’, ‘최후의 승리냐 몰락이냐(Endsieg oder Untergang)’, ‘이기거나 지거나(Siegen oder fallen)’과 같은 이분법적 이데올로기가 끝까지 작동했다.
그들에게 ‘중간’ 지대는 존재하지 않았고, ‘타협’이란 배신의 다른 말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이 충실하게 수행한 명령이란 것은 ‘자기 파괴’ 행위였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과대학 교수들이 지난 25일 끝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환자들에 대한 진료 시간 축소도 불가피해졌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기자회견에서 “2000명의 의대 증원과 정원 배정 결정을 철회하는 것이 대화의 전제 조건”이라며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과 주 52시간 근무는 예정대로 25일부터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정부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의 유연한 처리 방안 마련을 검토하는 등 대화의 손을 내밀었지만 사실상 이를 거부한 것이다.
일부 의사들은 그동안 '파업'의 이유로 "단순한 밥그릇 챙기기, 기득권 지키기가 아니다"며 정부의 필수 의료 정책이 비현실적이고, 정부 정책이 자칫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과 건보재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결국, 파업의 명분으로 가장 앞에 내건 것은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반대였다.
과연 의사들이 의대 정원 결정을 좌우할 권한이 있는지, 그런 결정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대화와 타협은 거부한 채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선택을 한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대 정원 확대가 환자들을 볼모로 삼아, 자기 파괴적인 집단 사직을 할 만한 이유가 되는지 의사들은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까.
김동욱 오피니언부장 kimdw@hankyung.com
“독일 내 모든 군사적 교통수단, 방송 장비, 산업시설과 생활 관련 시설들을 적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즉시, 혹은 가능한 한 단시간 내에 파괴하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자살·자폭 명령은 1945년 3월 이후까지 독일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던 일부 지역에서 거침없이 수행됐다.
전쟁이 막바지로 갈수록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을과 도시를 사수하다 죽어라’라거나 ‘무기를 손에서 놔선 안 된다’라는 비이성적인 명령이 잇따랐다.
비합리적 명령에는 도시를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은 사살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히틀러의 비이성적인 명령에 열렬히 따르는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적지 않았다. 여전히 독일 내 상당수 지역에서 총통의 명령은 최고의 규범이었다.
나치당과 SS, 열렬한 나치 추종자들은 ‘파괴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들은 6주간에 걸쳐, 적군의 폭격과 포격이 파괴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부숴버렸다.
그들은 또 마을을 파괴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반대하는 자, 태업하는 자들에 대해 총살형과 교수형을 취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기 수 주에 걸쳐 독일인들은 한편으론 적군에 의해서, 다른 한편으론 자국 정부 기관에 의해 조국이 타오르는 모습을 봐야 했다.
‘네로 명령’에 앞서 2월 20일엔 제국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가 ‘유대인이 관련된 독일 내 모든 문서(비밀문서이거나 다루기 까다로운 모든 문서)를 조직적으로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어떻게 이렇게 극단적인 명령이 나올 수 있었을까. ‘천년 제국’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나치 독일에선 ‘히틀러 이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1933년에 총통(히틀러)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던 바이마르 시대의 정치인들이 대거 숙청됐다. 1944년에는 추가로 수천 명의 바이마르 시대 정치인과 관료들이 체포됐다.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을 때 히틀러는 자신의 조국이 “차라리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 더 좋고, 필연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1944년 말이 되면 독일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독일 지도부는 물론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를 입 밖에 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항복이나 강화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강요됐다.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Sein oder Nichtsein)’, ‘최후의 승리냐 몰락이냐(Endsieg oder Untergang)’, ‘이기거나 지거나(Siegen oder fallen)’과 같은 이분법적 이데올로기가 끝까지 작동했다.
그들에게 ‘중간’ 지대는 존재하지 않았고, ‘타협’이란 배신의 다른 말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이 충실하게 수행한 명령이란 것은 ‘자기 파괴’ 행위였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과대학 교수들이 지난 25일 끝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환자들에 대한 진료 시간 축소도 불가피해졌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기자회견에서 “2000명의 의대 증원과 정원 배정 결정을 철회하는 것이 대화의 전제 조건”이라며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과 주 52시간 근무는 예정대로 25일부터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정부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의 유연한 처리 방안 마련을 검토하는 등 대화의 손을 내밀었지만 사실상 이를 거부한 것이다.
일부 의사들은 그동안 '파업'의 이유로 "단순한 밥그릇 챙기기, 기득권 지키기가 아니다"며 정부의 필수 의료 정책이 비현실적이고, 정부 정책이 자칫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과 건보재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결국, 파업의 명분으로 가장 앞에 내건 것은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반대였다.
과연 의사들이 의대 정원 결정을 좌우할 권한이 있는지, 그런 결정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대화와 타협은 거부한 채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선택을 한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대 정원 확대가 환자들을 볼모로 삼아, 자기 파괴적인 집단 사직을 할 만한 이유가 되는지 의사들은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까.
김동욱 오피니언부장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