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동초등학교 앞 '흡연 금지' 경고문. /사진=김세린 기자
서울 송파구 잠동초등학교 앞 '흡연 금지' 경고문. /사진=김세린 기자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었던 26일 오후 1시. 서울 송파구 잠동초등학교 담벼락 인근에서 양복 차림의 한 남성이 구청 소속 흡연 단속원에게 적발됐다. 곧이어 또 다른 캐주얼 정장 차림의 남성이 담뱃불을 태우려고 시도하다 이 단속원에게 덜미가 잡혔다. 1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 담벼락 너머엔 체육 활동하던 학생들이 수십명가량 나와 뛰어놀고 있었다.

이곳은 초·중학교와 마주한 상가건물 주변으로, 인근 직장인들 사이 '암묵적 흡연구역'이 형성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한차례 논란이 됐다. 한경닷컴 취재 결과, 학교 측과 학부모,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구청 측의 '흡연 특별 단속'이 실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은 흡연 단속원 2명이 상주하고 있었고, 흡연자들은 담배를 태우러 오다가도 눈치 보며 발걸음을 돌렸다.
구청에서 나온 흡연 단속원에게 적발된 남성 그는 초등학교 담벼락 뒷편 주차장에서 흡연하다 적발됐다. /사진=김세린 기자
구청에서 나온 흡연 단속원에게 적발된 남성 그는 초등학교 담벼락 뒷편 주차장에서 흡연하다 적발됐다. /사진=김세린 기자
정부는 2012년 12월부터 운동장을 포함한 학교 전체를 '전면 흡연 금지 구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학교 및 학교 출입문으로부터 50m 이내에선 담배를 피워선 안 된다. 이를 위반하는 자는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 및 자치구별 간접흡연 피해방지조례에 따라 1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여전히 간접흡연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는 민원이 여전히 접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된 구역에서 수시간째 단속을 벌이던 구 흡연 단속원은 "우리가 상주하고 있을 때는 흡연하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단속원이 나타나면 담배를 태우던 사람들도 눈치를 보다 자진 이동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담벼락에 붙은 금연구역 안내문을 무시한 듯 꽁초 여러 개가 버려진 모습. /영상=김세린 기자
초등학교 담벼락에 붙은 금연구역 안내문을 무시한 듯 꽁초 여러 개가 버려진 모습. /영상=김세린 기자
학교 건물 외관 모서리와 상가 주변, 주차된 차들 사이로 꽁초 수십 개가 여기저기 흩어진 채 버려져 있었다. 학교 주변으로 금연 관련 현수막 10여개가 걸려 있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현수막에는 '학교 절대정화구역으로 전 구역 흡연을 금지합니다', '학교는 전체 시설 금연 구역입니다' 등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런데도 이를 개의치 않은 사례가 이어지고 있었다.

3년간 잠동초등학교에서 근무해온 학교 보안관은 "한차례 뉴스에서 논란이 됐는데도 여전히 학교 담벼락 쪽에 서서 많이 태우고, 체육관 뒤 상가 주변에서도 많이 핀다"며 "부모들도 걱정하고, 우리 아이들이 보기에도 너무 안 좋다. 담배 연기가 바람을 타고 학교 안까지 들어올 수 있고, 강당이나 운동장에서 수업하는 아이들이 다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초등학생들은 흡연하는 사람들과 철창 너머로 가까이 마주하고 있었다. /사진=김세린 기자
초등학생들은 흡연하는 사람들과 철창 너머로 가까이 마주하고 있었다. /사진=김세린 기자
학교 뒤편 상가에서 일하는 업주들도 이런 불만을 가진 건 마찬가지. 단 특별 단속 이후 전처럼 무리 지어 몰려와서 피는 경우는 줄었다는 설명이다. 상가 건물 입구 가까이에서 20년간 문구점을 운영하는 업주는 "최근 단속이 시작된 이후로는 조금 나아졌다"면서도 "문을 열어두면 냄새가 바로 퍼지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서 피라'고 소리친다. 흡연자들이 '미안하다'고 말해도 눈치 보다가 결국엔 다 피고 가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8년째 이 상가 건물에서 근무 중인 경비원은 "단속이 심해진 뒤로는 흡연자가 5분의 1로 줄어들 만큼 좀 나아졌지만, 평소에는 피지 말라고 해도 바뀌질 않아서 힘들었다"며 "이 상가에 아이 학원을 보내는 학부모들도 많다 보니 오가면서 냄새 심하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흡연자들은 "이 주변에 필 곳이 없는데 어디서 피냐"는 입장이다. 오피스상권이 주를 이룬 여의도의 경우 직장가를 중심으로 흡연구역이 여러 개 설치돼있으나, 송파구 잠실역 인근 직장가를 중심으로는 공식 흡연구역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주변 대기업 등 건물의 흡연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이후 대부분 폐쇄된 것으로 전해졌다.
잠실역 인근 '흡연 유목민'들이 자주 찾는 '암묵적 흡연 구역'에 담배가 버려져 있다. /사진=김세린 기자
잠실역 인근 '흡연 유목민'들이 자주 찾는 '암묵적 흡연 구역'에 담배가 버려져 있다. /사진=김세린 기자
결국 인근 흡연자들의 발걸음은 차량 내부, 주차된 차들 사이, 불시에 단속하지 않는 상가 건물 외곽으로 향했다.

'흡연 유목민'을 자처했다며 익명을 요구한 직장인은 "지금은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냄새도 나지 않고 쓰레기도 따로 통에 보관해 다닌다"면서도 "같이 담배를 태우는 직장 동료들끼리 수십 년째 이 주변엔 담배 태울 곳이 없다고 말한다. 흡연자 입장에서도 금연 구역에서 피우는 게 눈치 보여서, 따로 흡연구역이 생기면 좋겠다"고 했다.

잠동초등학교 뒤편 상가 건물의 경우, 상가 측에서 4년 전 상가 천막을 치고 임시 흡연구역을 만들었지만, 연기를 배출할 방법이 없어 바로 철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곳 경비원은 "구청 측에서 아예 공식 흡연 구역을 지정하거나 담배 존을 만들어주면 쓰레기 청소와 민원 대응에 있어 훨씬 편할 것 같다"며 "흡연자들 입장에서는 담배는 피워야겠고, 필 장소는 없고 그러다 보니 외진 데 가서 피는 상황이 된 거다"라고 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