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간 전 세계 미술계의 눈은 홍콩에 맞춰졌다. 올해 아시아를 넘어 세계 미술시장의 전망을 점쳐볼 수 있는 ‘아트바젤 홍콩’(26~29일)이 열렸기 때문이다.

매년 3월 개최되는 아트바젤 홍콩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이자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겨진다. 세계 미술업계가 이 페어에서 팔리는 예술품의 규모를 보고 한 해 시장 전망을 점치기 때문이다. 올해는 그 규모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으로 완벽히 회귀한 수준으로 열려 더욱 주목을 받았다. 40개 국가에서 242개의 갤러리가 참가했다. 지난해에 비해 37% 증가한 숫자다.
글로벌 미술시장 '풍향계' 아트바젤 홍콩, 첫날 판매실적도 공개 못한 까닭은?
하지만 VIP 오픈일인 26일이 끝나자 아트바젤 홍콩은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행사장엔 지난해 작품을 쓸어담던 중국 손님들의 대화 소리도 듣기 힘들었다. 화이트큐브에 나온 박서보의 7억2000만원짜리 작품도 대기자만 있을 뿐 쉽게 팔리지 않았다. 오픈일 이전 사전 판매만으로 부스 작품의 절반 이상을 팔았던 지난해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번 장터에 부스를 낸 242개 갤러리 중 한국 화랑은 10곳. 국제갤러리는 오픈과 동시에 강서경의 작품을 9만 달러(한화 약 1억 2060만원)에, 줄리아 오피의 작품을 11만 파운드(한화 약 1억 8600만원)에 판매했다. 하지만 한국 화랑들도 뜨거운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눈치다. 국제갤러리 윤혜정 이사는 “중국 손님보다 한국인이 많아진 건 사실”이라며 “지난해와 같이 오픈일이나 사전 판매로 불티나게 팔리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미술시장 '풍향계' 아트바젤 홍콩, 첫날 판매실적도 공개 못한 까닭은?
홍콩 당국은 정상화된 아트바젤의 성공에 사활을 걸었다. 특히 지난해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은 터라 더욱 총력을 다했다. 3월 한 달 내내 ‘홍콩 아트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다양한 ‘메가 이벤트’들을 들여왔다. 지난해에는 각종 글로벌 행사의 홍콩 진입을 위해 '메가 아트 앤 컬쳐 위원회'를 만들고 에이드리언 청 K11그룹 회장을 의장으로 선임하기도 했다.

에이드리언 청은 아트 페스티벌 기간 동안 아시아 최초로 대형 패션 행사인 컴플렉스콘, VIP 자선 파티 등을 열며 홍콩으로 빅샷들을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한스 울리히 오브히스트 서펜타인 갤러리 디렉터, 카린 힌즈보 테이트모던 관장 등이 이번 아트위크 기간 홍콩을 찾아오며 기대를 모았다.

행사가 열리기 전까지만해도 아트바젤 홍콩을 향한 전망은 낙관적이었다. 실제 지난 13일 아트바젤과 글로벌 금융투자회사 UBS가 공개한 ‘글로벌 아트마켓 2024’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예술시장은 9%가량 성장하며 2022년 영국에 내줬던 2위 자리를 탈환했다. 노아 호로위츠 아트바젤 최고경영자(CEO)도 개막 전 열린 간담회 자리에서 “지난해 글로벌 판매 리포트를 보면 중화권 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며 "중국은 지난해 주요 국가들의 매출 규모가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홀로 전년 대비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미술시장 '풍향계' 아트바젤 홍콩, 첫날 판매실적도 공개 못한 까닭은?
하지만 아트바젤 홍콩 주최 측에서는 올해 이례적으로 통상 첫날 오후 공개하던 ‘판매 리포트’도 공개하지 않았다. 아트페어의 특성상 VIP 공개일에 지갑을 가장 많이 여는 손님들이 찾기 때문에 남은 기간동안 비싼 작품이나 대작의 판매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글로벌 빅샷’들이 부활절 연휴(3월 29일~4월 4일) 직전인 27일 홍콩을 떠나며 고가 작품 판매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참가 갤러리 간 판매 실적 차이도 컸다. 주목받는 작품을 들고 나온 대형 갤러리들만 성과가 좋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우저앤워스 갤러리다. 이 갤러리는 350만달러짜리 마크 브래드포드의 작품과 에드 클라크의 110만 달러짜리 작품을 중국의 한 재단에 넘겼고, 그 외에도 어제 하루동안 9개의 작품을 판매했다. 한국 갤러리 조현화랑도 가지고 나온 이배 작품 세 점을 모두 인도의 한 컬렉터에게 넘겼다.

그러나 미국 갤러리 카르마를 비롯한 다른 갤러리에서는 “지난해 행사와 비교했을 때 올해 VIP 오픈일 판매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토로했다. 비싼 대작들 대신 ‘지갑을 쉽게 열 수준의’ 저렴한 작품들만 가지고 나오자는 전략을 택한 갤러리도 많았다. 일본 갤러리 웨이팅룸은 타카타 후지히로의 비디오 작품을 3000달러라는 싼 가격에 선보이기도 했다.

글로벌 미술시장 '풍향계' 아트바젤 홍콩, 첫날 판매실적도 공개 못한 까닭은?
대부분의 갤러리들은 이번 페어 분위기가 미지근한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는 중화권 경제 불황이다. 중화권 고객들이 아트바젤 홍콩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행사가 열리던 상반기까지는 중화권 경기에대한 낙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하반기부터 중국 부동산 위기, 홍콩 증시 하락 등으로 경기에 먹구름이 꼈다. 이번 바젤 또한 중화권의 경기 침체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두 번째는 서양 대형 갤러리 부재다. 실제 올해 아트바젤 홍콩에는 마리안 굿맨, 션 켈리 갤러리 등 2019년 홍콩 바젤에 부스를 냈던 세계 대표 갤러리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홍콩과 중국 간 정세 불안과 중화권 내 예술시장 경기 침체를 미리 예상한 까닭이다. 자연스레 수백억대의 대작 출품 수도 줄었다. 이날 현장을 찾은 컬렉터들도 "서양 대형 갤러리가 빠져 볼 만한 작품이 줄어들었다"며 "지난해 12월 열린 아트바젤 마이애미와 달리 비싼 작품들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글로벌 미술시장 '풍향계' 아트바젤 홍콩, 첫날 판매실적도 공개 못한 까닭은?
업계에선 ‘홍콩의 중국화’가 부른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외국 갤러리스트는 “중국의 검열을 피해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홍콩을 떠난 영향도 크다”고 말했다. 특히 아트바젤을 불과 한 주 남긴 지난 19일 홍콩판 국가보안법이 통과되며 예술시장 내 불안감은 커졌다. 행사를 찾은 프랑스 갤러리스트는 “중국에 대한 반감이나 불안감 때문에 행사 직전 참가를 포기한 컬렉터들도 많다”고 했다.

아트바젤 홍콩의 부진으로 오는 9월 서울에서 열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프리즈 서울이 서양 갤러리들과 고객들을 끌어온다면 홍콩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등장했다. 한 갤러리스트는 “서울은 홍콩이 가진 ‘중국 리스크’가 없는데다 중국에 비해 경기 전망도 밝다”며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온다면 홍콩이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최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