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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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자타공인 부자 도시다.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후 자동차와 조선(造船), 중화학 등 한국의 '3대 먹거리'를 책임져왔다. 울산의 현대자동차 공장과 현대중공업 등이 '산업화의 심장' 역할을 두둑이 해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숫자가 말해준다. 2022년 기준 울산의 1인당 지역 내 총생산(GRDP)은 7751만원으로 25년째 전국 1위를 수성했다. 소득 수준도 높다. 1997년 IMF 외환위기 국면에도 '개마저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농담이 돌만큼 호황을 누렸다.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양승훈 지음, 부키, 432쪽, 1만9800원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양승훈 지음, 부키, 432쪽, 1만9800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울산의 꽃 피던 시절도 옛말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출간된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30년 뒤 울산이 산업 쇠퇴와 고령화, 인구 감소로 인해 유령 도시로 변모할 것이라고 말한다. 첨단 산업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의 성장통, 그리고 이른바 '귀족 노조'로 인한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가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이다.

양승훈 저자가 경남 거제의 조선소에서 5년간 일하며 펴낸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사회학, 노동경제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울산의 암울한 미래와 한국 제조업의 불투명한 전망을 제시한다.
울산의 야경 /게티이미지뱅크
울산의 야경 /게티이미지뱅크
그동안 울산은 기적적인 성장을 일궈냈다. 지난 60여년 간 한국이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교역량을 자랑하는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을 견인했다. 태평양과의 교두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덕에 일찌감치 석유 기지로 활용된 것이 시작이었다.

1962년 울산공업지구가 들어서며 한국의 산업 수도로 급부상했다. 모험심 충만한 기업가들의 역할도 한몫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영국 바클레이 은행을 찾아 동전에 새겨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조선업의 물꼬를 튼 것은 익히 알려진 일화다.

이랬던 울산의 심장 박동이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꺼져가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20~30대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인구 유출이 보고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는다면 도시가 쇠락하는 건 자명한 일이다.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피츠버그, 영국의 맨체스터가 그랬다.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 현장. 2014년 6월 촬영. /게티이미지뱅크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 현장. 2014년 6월 촬영. /게티이미지뱅크
청년들은 왜 울산을 떠날까. '첨단산업의 쌀'이라고 일컬어지는 반도체 산업이 천안 이북에 집중된 것이 원인 중 하나다. 2014년 시작된 조선업 불황, 그로 인한 2015년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을 거치며 영남 지역 제조업은 하락세를 마주했다. 울산 청년들은 부가가치가 보다 높은 수도권으로 향하는 추세다.

젊은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2016년 기준 울산의 맞벌이 가족 비율은 37.6%로, 전국 평균인 44.9%에 한참 못 미쳤다. 그마저 여성들의 직종은 간호조무사와 어린이집 교사 등 '핑크 칼라' 위주였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된 요즘 시대에, 이들을 붙잡을만한 다양한 선택지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가장 큰 걸림돌은 경직된 노사협의체다. IMF 당시 동료들의 정리해고를 목도한 노동자들의 트라우마가 원인이 됐다. '잘리기 전 최대한 많이 벌어두겠다'는 심산은 소위 귀족 노조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됐다. 1970~1990년대 사이 입사한 이들은 높은 임금과 복리후생, 고용 안정 등 굳건한 기득권을 구축했다. 젊은 층이 들어설 공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귀족 노조가 주장하는 노동자 권익이 '남성, 정규직, 대기업'에 편중됐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밥꽃양 사태'가 단적인 예다. 1998년 현대자동차 노사협의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 보전을 식당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300여명의 해고와 맞바꾼 사건이다.

'젊은 도시' 울산의 아성을 되찾기 위한 첫걸음으로는 산학(産學) 연계를 지목한다. 저자는 "울산대학교 인문대와 유니스트(UNIST·울산과학기술원) 등 지역 산업과 동떨어진 대학의 지역 연계성을 강화해야 청년들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제조업의 쇠퇴, 그로 인해 한국 경제에 켜진 경고등은 울산만의 얘기가 아니다. 창원·거제·군산·당진 등 전국의 산업 도시가 공통으로 떠안은 고민이다. "대한민국 산업 수도 울산의 행보가 이들 모든 도시가 향할 길일지 모른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