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뒤늦은 與 공약…국민은 진작 민생 원했다
“여당은 원래 네거티브 정당이 아니에요. 진작 민생·정책으로 승부수를 걸었어야 하는데….”(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를 세종시로 완전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지난 27일, 정치권 관계자들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세종시를 사실상 입법·행정 수도화하고, 여의도 주변은 고도 제한을 풀어 개발하겠다는 이 정책은 스윙보터인 충청권과 여의도 주변 한강벨트 표심을 흔들 만한 내용이었다.

문제는 총선을 고작 2주 앞두고 나왔다는 점이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말 취임 이후 최근까지 ‘운동권 청산’과 ‘종북 세력 척결’을 내세워 야당을 공격하는 데 치중해 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을 범죄 세력으로 규정하고, 선거 슬로건도 이 대표의 대선 슬로건 ‘이재명은 합니다’를 의식해 ‘국민의힘은 지금 합니다’를 채택했다. 야당이 ‘못 살겠다, 심판하자’라는 슬로건으로 맞받자 ‘못 참겠다, 2찍(이 대표의 보수 정당 지지자 비하 표현) 발언’이라는 현수막을 곧바로 국회 앞에 내걸었다.

이 같은 야당 때리기 일변도의 모습은 유권자들에게 피로감만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대의 단점만 호소하니 정책 우위는 보여주지 못한 채 ‘비호감 선거’를 자초한 셈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달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유권자들은 야당이 주장해 온 ‘정권 심판’과 ‘검사 독재 청산’을 ‘운동권 청산’보다 더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기치 못한 조국혁신당의 돌풍도 그 과정에서 나왔다.

최근의 여당 위기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근에는 부산 해운대갑 등 ‘보수 텃밭’ 선거구에서까지 여당 우세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26일 부산 사하구 신평역 유세에서 만난 한 여당 후보는 “서민들에게 운동권, 범죄자 청산이 크게 의미가 있느냐”며 “고물가로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힘들다 보니 민심이 이탈한 것 같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뒤늦게 민생 카드를 꺼냈다. 이번주 들어 세 자녀 가정 등록금 전액 면제, 일부 생필품 부가가치세 인하 요구 등 눈길을 끄는 정책을 줄줄이 발표했다. ‘이 나라를 범죄자와 종북 세력에 내주지 말자’는 내용으로 제작한 당 선거 현수막도 철회를 지시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이 이슈를 선점하고, 파급력이 있는 공약을 들고나온 것은 정권 심판 일변도로 흐르는 여론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남은 기간이라도 진정성·실효성 있는 정책 의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패색이 드리운 여당에는 민생이 마지막 ‘동아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