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양혜규 사줘" 미술 싫다던 첫째는 아트바젤서 두 시간을 울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노현지의 디자인테라뱅
미대 교수 엄마의 조금 특별한 예술 교육
걷기 질색하는 두 아이와 함께 아트바젤 홍콩 탐험기
미대 교수 엄마의 조금 특별한 예술 교육
걷기 질색하는 두 아이와 함께 아트바젤 홍콩 탐험기
코로나 팬데믹 시기, 한국의 미술 시장에는 때아닌 호황이 찾아왔다. 격리로 인해 자기 공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집 안 빈 벽면을 한 점 그림으로 채우는 유행이 시작된 것이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그 무렵 이우환의 해외 옥션 경매가나 한국 단색화 가격 반등 같은 소식이 솔솔 퍼져나가 대중들이 미술품 투자에 부쩍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더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여러 기대감으로 시작된 컬렉션 열풍은 중년층부터 MZ세대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유행을 만들었다. 대중적 관심에 방점을 찍은 계기는 프리즈가 아시아 거점으로 서울을 픽하면서이다. 서울아트위크로 서울이 들썩들썩했던 만큼 예술 애호가 수도 불어났다.
나는 오래 미술을 공부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시작해, 예원, 예고를 졸업하고 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를 했다. 긴 세월 공부하며 전공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 선택에 만족한다. 그래서 그 대학에서 강사와 연구 교수로 후배들도 전공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나의 두 아이에게는 그림을 그리자며 그 흔한 선 긋기 한번 해보자고 한 일이 없다. 바쁜 탓이 컸지만, 또 별로 가르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나는 자꾸 이것저것 보여주려고 했다. 읽을 줄 모르는 이에게 쓰라고 할 수 없듯 볼 줄도 모르는데 그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올해 아이들과 홍콩 아트바젤에 참석할 기회가 생겼다. 프리즈 서울 이후 국제 아트페어에 대한 한국 컬렉터들의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고 자연스레 가까운 홍콩 아트바젤에 한국인 관람객도 매우 증가했다고 한다. 아트페어에는 동시대에 컬렉터들에게 관심을 받을만한 가장 트렌디한 작품들이 나온다. 여러 페어 중에서도 아트바젤은 권위가 있다. 1970년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되었으며 2002년부터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 2013년부터 아트바젤 홍콩, 2022년부터 아트바젤 + 파리가 매년 열리고 있다. 홍콩은 세계 금융의 허브이자 아시아의 올드 머니가 포진해 있는 국제 도시이니만큼 문화 교류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왔다. 아트바젤 홍콩은 아시아와 서구 예술을 잘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동시대 현대 미술의 흐름을 관찰하기에 좋다. 나는 아이들에게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홍콩에는 어려움이 있다. 중국 반환과정에서 홍콩의 많은 중산층이 영국이나 캐나다 등지로 이민을 했고, 코로나 팬데믹과 일거양제를 둘러싼 홍콩 시민들과 중국 정부의 불안한 상황을 이유로 많은 외국인들도 홍콩을 떠났다. 그럼에도 홍콩은 여전히 문화의 중심으로서의 자리를 확대해가고 있었다. 구룡을 중심으로 한 문화 지구가 형성되어 K11 Musea, 타이 퀀, M+ 뮤지엄 등의 문화 시설들이 사랑받고 있다. 센트럴에 포진한 여러 유명 갤러리들도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최근 세계 최고 규모의 미술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도 아시아태평양 본사를 센트럴에 더 핸더슨 빌딩으로 이전했다. 이번 홍콩 아트 위크에도 여러 문화 스팟과 아트 센트럴 등의 장소 여러 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아트 위크 기간 여러 장소를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초등학생 아이들 두 명과 함께이므로 3월 26일 VIP first choice 시작인 12시부터 8시까지, 그리고 3월 30일 마지막 날 1시부터 3시까지 아트바젤 장소만을 찾았다. 그러나 그조차 절대로 쉽지 않았다. 아트페어는 미술관 전시와는 다르다. 규모도 방대하고, 사람도 붐비는데 고가의 미술품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걷기 힘들어하고 행동 조절도 잘 안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럼에도 나의 무모한 도전은 꽤 괜찮았다는 것이다. 이유를 몇 가지 찾아보았다.
첫째, 아트페어는 원래 판매와 구매, 투자 등을 목적으로 하지만, 아트바젤은 애호가들의 감상을 위한 큐레이션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바로 ‘인카운터’가 섹터를 두어 볼거리를 만드는데, 그해 주요 작가들의 작업이 대규모로 설치된다. 국제갤러리가 설치한 양혜규의 작품도 작년에 이어 설치되었고, 그 외 여러 작품도 다양한 경험 요소가 있다. 작품 뒤로는 쇼파가 설치되어 아이들이 지치면 예술을 체험하면서 바쁜 걸음을 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작품 근처에 소속 갤러리도 있기 때문에 연계작을 보기에도 좋다. 또 작가 개인전 형식의 ‘케비넷’ 섹션들이 갤러리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이는 개별 작가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구간이다. 다양한 그림들이 툭툭 걸린, 섹션 사이사이에 이런 구간은 감상의 결을 정돈해 주었다. 특히 조현화랑의 케비넷에는 전시된 박서보의 후기 유작들이 감도 높게 설치되어 하나의 작은 개인전 느낌을 물씬 풍겼다. 또 아트바젤 홍콩을 위해 제작한 작품만을 소개하는 '디스커버리스' 섹션에는 김경태의 작품이 설치되어 주목받았다.
둘째, 이렇듯 중요 장소 곳곳에 한국 작가들이 있었다는 점이 아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나 역시 한국 미술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홍콩 바젤에는 서구권 갤러리들이 숫자가 조금 줄어 전체 122개 갤러리 중 3분의 2는 아시아 갤러리로 채워져 있었고, 그중 10곳 가량이 한국 갤러리라 한국 작가들이 잘 소개되고 있었다. 또 굵직한 해외 갤러리들이 소속 한국 작가들을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불, 박서보, 서도호, 이배, 양혜규, 성능경 등의 한국 현대 미술 작가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도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늘어난 한국인 관람객 숫자를 반영하듯 많은 해외 갤러리 부스 곳곳에 한국인 큐레이터들이 늘어나 있었고, 또 외국 갤러리스트들도 기본적인 한국어를 구사하며 친근하게 한국인들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셋째, 페어장에는 아이들이 한국 미술관에서 봤던 외국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있었다. 최근 일 년 사이 국내에는 아니쉬 카푸어, 데이비드 샬레,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이시 우드, 빅토르 바자렐리 같이 동시대 중요한 해외작가들의 전시가 있었다. 한국은 이제 동시대 미술 씬을 정확히 간파하고 세계 미술과 중요한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어린이가 고국의 미술관, 갤러리 곳곳에서 최근에 만나본 현대 미술을 더 생동감 있는 현장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반가워했다. 많은 이들은 이번 홍콩 아트바젤을 통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아시아권 미술 시장이 회복될 것을 기대했지만 아무래도 중국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슈퍼컬렉터가 아닌 평범한 한국인 방문객들에게는 편안해진 부분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은 지쳐갔다. 나도 처음에는 목이 아프게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는데, 나중에는 제발 눈으로라도 봐달라 달래기 바빴다. 하지만 전시 후반에 아이들은 기억에 남는 경험을 했다.
첫째 아이는 국제갤러리에 양혜규의 키네틱 작품을 좋아했는데, 다시 찾아가서도 계속 작품을 돌려보더니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자꾸 구매를 원했다. 이후 작품을 사주지 않는 부모를 원망하며 2시간 넘게 울었다. 그때 둘째는, 곱게 묶었던 머리도 산발이 되어있었고 다리가 아프다며 집에 돌아가자고 아우성을 부리고 있었다. 아이를 질질 끌고 나가는 길에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서용선 작품을 만났다. 아이들은 작년 아트선재 미술관 전시 때 도슨트 프로그램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서용선 작품을 공부한 적이 있다. 갑자기 신이 난 둘째는 작품에 대해 큐레이터분과 자꾸 말을 걸고, 이것저것 묻더니, 그만 가자는 나의 만류에 서울에서 곧 열리는 개인전에 꼭 찾아가겠노라 약속을 하고서야 그 자리를 떴다. 정말 정신이 쏙 빠지는 순간들이었지만 어쨌든 아이들이 감상이 조금 자라났음을 느껴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3월 30일 마지막 날, 다시 아이들과 함께 페어장으로 향했다. 아트바젤은 어린이 아트 스튜디오 프로그램, 주니어 도슨트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VIP 오픈 날은 인원 조절을 하기 때문에, 어린이 프로그램은 퍼블릭 오픈 후에 진행된다. 어린이 아트 스튜디오에서는 두 가지 프로그램이 교차로 진행 중이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평면 작업에 참여했다. 주니어 도슨트는 30분 단위로 45분간 진행했다. 신청 장소 10분 전에 가면 어린이들에게 단체 티셔츠를 선물해주고, 모두 그걸 입고, 인카운터 섹션을 중심으로 작품 투어를 한다. 이는 모두 무료였다! 전시와는 달리 페어는 미술품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이므로, 행사에서 제일 고가의 작품은 무엇인지, 어떤 작가가 인기가 많았는지, 어느 갤러리가 잘 팔았는지에 등의 숫자에 관심이 쏠린다. 이는 꼭 필요한 관심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트페어는 현재 미술의 트렌드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예술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관심이 몰리더라도, 이내 거품이 확 사라지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문화야말로 오래도록 축적해가야 하는 관심이 필요한 분야이다. 그래서 슈퍼컬렉터와 VIP 말고도 다양한 계층에 대한 배려와 교육이 필요하고 생각된다. 아이들에게 다가서기 좋은 곳은 모두에게 좋은 예술의 장이 되지 않을까?
2024년 한국의 곳곳에 다양한 아트페어가 시작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 집에는 그림 한 점 없더라도, 마음에 많은 그림을 담아둔 진정한 컬렉터가 늘어나는 것이 미래의 예술을 위한 제일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노현지 서울대 디자인학부 강사 ▶▶[관련 뉴스] 글로벌 미술시장 '풍향계' 아트바젤 홍콩, 첫날 판매실적도 공개 못한 까닭은?
▶▶[현장스케치] 생생한 사진과 영상으로 만나는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 홍콩 2024'
▶▶[관련 리뷰] 침사추이부터 센트럴까지, 지금 홍콩은 명작들의 천국
나는 오래 미술을 공부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시작해, 예원, 예고를 졸업하고 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를 했다. 긴 세월 공부하며 전공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 선택에 만족한다. 그래서 그 대학에서 강사와 연구 교수로 후배들도 전공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나의 두 아이에게는 그림을 그리자며 그 흔한 선 긋기 한번 해보자고 한 일이 없다. 바쁜 탓이 컸지만, 또 별로 가르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나는 자꾸 이것저것 보여주려고 했다. 읽을 줄 모르는 이에게 쓰라고 할 수 없듯 볼 줄도 모르는데 그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각 예술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많이 보여주어 예술적 감각을 눈으로 익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 이면에 그것이 함의를 해독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자부하건대 한국에는 좋은 전시도 많고 좋은 프로그램도 많다. 그런데 미술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우리 첫째는 전시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시각 예술은 그냥 멋지고 예쁜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야. 시대를 고민하고, 그 안에서 가진 생각과 감정을 시각 언어로 표현한 정수야. 그래서 네가 시대를 이해하려면, 네가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예술이 말하는 바를 반드시 알아야 해.”라고 늘 말해주었다.
그러던 중 올해 아이들과 홍콩 아트바젤에 참석할 기회가 생겼다. 프리즈 서울 이후 국제 아트페어에 대한 한국 컬렉터들의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고 자연스레 가까운 홍콩 아트바젤에 한국인 관람객도 매우 증가했다고 한다. 아트페어에는 동시대에 컬렉터들에게 관심을 받을만한 가장 트렌디한 작품들이 나온다. 여러 페어 중에서도 아트바젤은 권위가 있다. 1970년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되었으며 2002년부터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 2013년부터 아트바젤 홍콩, 2022년부터 아트바젤 + 파리가 매년 열리고 있다. 홍콩은 세계 금융의 허브이자 아시아의 올드 머니가 포진해 있는 국제 도시이니만큼 문화 교류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왔다. 아트바젤 홍콩은 아시아와 서구 예술을 잘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동시대 현대 미술의 흐름을 관찰하기에 좋다. 나는 아이들에게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홍콩에는 어려움이 있다. 중국 반환과정에서 홍콩의 많은 중산층이 영국이나 캐나다 등지로 이민을 했고, 코로나 팬데믹과 일거양제를 둘러싼 홍콩 시민들과 중국 정부의 불안한 상황을 이유로 많은 외국인들도 홍콩을 떠났다. 그럼에도 홍콩은 여전히 문화의 중심으로서의 자리를 확대해가고 있었다. 구룡을 중심으로 한 문화 지구가 형성되어 K11 Musea, 타이 퀀, M+ 뮤지엄 등의 문화 시설들이 사랑받고 있다. 센트럴에 포진한 여러 유명 갤러리들도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최근 세계 최고 규모의 미술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도 아시아태평양 본사를 센트럴에 더 핸더슨 빌딩으로 이전했다. 이번 홍콩 아트 위크에도 여러 문화 스팟과 아트 센트럴 등의 장소 여러 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아트 위크 기간 여러 장소를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초등학생 아이들 두 명과 함께이므로 3월 26일 VIP first choice 시작인 12시부터 8시까지, 그리고 3월 30일 마지막 날 1시부터 3시까지 아트바젤 장소만을 찾았다. 그러나 그조차 절대로 쉽지 않았다. 아트페어는 미술관 전시와는 다르다. 규모도 방대하고, 사람도 붐비는데 고가의 미술품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걷기 힘들어하고 행동 조절도 잘 안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럼에도 나의 무모한 도전은 꽤 괜찮았다는 것이다. 이유를 몇 가지 찾아보았다.
첫째, 아트페어는 원래 판매와 구매, 투자 등을 목적으로 하지만, 아트바젤은 애호가들의 감상을 위한 큐레이션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바로 ‘인카운터’가 섹터를 두어 볼거리를 만드는데, 그해 주요 작가들의 작업이 대규모로 설치된다. 국제갤러리가 설치한 양혜규의 작품도 작년에 이어 설치되었고, 그 외 여러 작품도 다양한 경험 요소가 있다. 작품 뒤로는 쇼파가 설치되어 아이들이 지치면 예술을 체험하면서 바쁜 걸음을 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작품 근처에 소속 갤러리도 있기 때문에 연계작을 보기에도 좋다. 또 작가 개인전 형식의 ‘케비넷’ 섹션들이 갤러리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이는 개별 작가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구간이다. 다양한 그림들이 툭툭 걸린, 섹션 사이사이에 이런 구간은 감상의 결을 정돈해 주었다. 특히 조현화랑의 케비넷에는 전시된 박서보의 후기 유작들이 감도 높게 설치되어 하나의 작은 개인전 느낌을 물씬 풍겼다. 또 아트바젤 홍콩을 위해 제작한 작품만을 소개하는 '디스커버리스' 섹션에는 김경태의 작품이 설치되어 주목받았다.
둘째, 이렇듯 중요 장소 곳곳에 한국 작가들이 있었다는 점이 아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나 역시 한국 미술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홍콩 바젤에는 서구권 갤러리들이 숫자가 조금 줄어 전체 122개 갤러리 중 3분의 2는 아시아 갤러리로 채워져 있었고, 그중 10곳 가량이 한국 갤러리라 한국 작가들이 잘 소개되고 있었다. 또 굵직한 해외 갤러리들이 소속 한국 작가들을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불, 박서보, 서도호, 이배, 양혜규, 성능경 등의 한국 현대 미술 작가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도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늘어난 한국인 관람객 숫자를 반영하듯 많은 해외 갤러리 부스 곳곳에 한국인 큐레이터들이 늘어나 있었고, 또 외국 갤러리스트들도 기본적인 한국어를 구사하며 친근하게 한국인들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셋째, 페어장에는 아이들이 한국 미술관에서 봤던 외국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있었다. 최근 일 년 사이 국내에는 아니쉬 카푸어, 데이비드 샬레,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이시 우드, 빅토르 바자렐리 같이 동시대 중요한 해외작가들의 전시가 있었다. 한국은 이제 동시대 미술 씬을 정확히 간파하고 세계 미술과 중요한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어린이가 고국의 미술관, 갤러리 곳곳에서 최근에 만나본 현대 미술을 더 생동감 있는 현장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반가워했다. 많은 이들은 이번 홍콩 아트바젤을 통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아시아권 미술 시장이 회복될 것을 기대했지만 아무래도 중국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슈퍼컬렉터가 아닌 평범한 한국인 방문객들에게는 편안해진 부분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은 지쳐갔다. 나도 처음에는 목이 아프게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는데, 나중에는 제발 눈으로라도 봐달라 달래기 바빴다. 하지만 전시 후반에 아이들은 기억에 남는 경험을 했다.
첫째 아이는 국제갤러리에 양혜규의 키네틱 작품을 좋아했는데, 다시 찾아가서도 계속 작품을 돌려보더니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자꾸 구매를 원했다. 이후 작품을 사주지 않는 부모를 원망하며 2시간 넘게 울었다. 그때 둘째는, 곱게 묶었던 머리도 산발이 되어있었고 다리가 아프다며 집에 돌아가자고 아우성을 부리고 있었다. 아이를 질질 끌고 나가는 길에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서용선 작품을 만났다. 아이들은 작년 아트선재 미술관 전시 때 도슨트 프로그램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서용선 작품을 공부한 적이 있다. 갑자기 신이 난 둘째는 작품에 대해 큐레이터분과 자꾸 말을 걸고, 이것저것 묻더니, 그만 가자는 나의 만류에 서울에서 곧 열리는 개인전에 꼭 찾아가겠노라 약속을 하고서야 그 자리를 떴다. 정말 정신이 쏙 빠지는 순간들이었지만 어쨌든 아이들이 감상이 조금 자라났음을 느껴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3월 30일 마지막 날, 다시 아이들과 함께 페어장으로 향했다. 아트바젤은 어린이 아트 스튜디오 프로그램, 주니어 도슨트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VIP 오픈 날은 인원 조절을 하기 때문에, 어린이 프로그램은 퍼블릭 오픈 후에 진행된다. 어린이 아트 스튜디오에서는 두 가지 프로그램이 교차로 진행 중이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평면 작업에 참여했다. 주니어 도슨트는 30분 단위로 45분간 진행했다. 신청 장소 10분 전에 가면 어린이들에게 단체 티셔츠를 선물해주고, 모두 그걸 입고, 인카운터 섹션을 중심으로 작품 투어를 한다. 이는 모두 무료였다! 전시와는 달리 페어는 미술품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이므로, 행사에서 제일 고가의 작품은 무엇인지, 어떤 작가가 인기가 많았는지, 어느 갤러리가 잘 팔았는지에 등의 숫자에 관심이 쏠린다. 이는 꼭 필요한 관심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트페어는 현재 미술의 트렌드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예술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관심이 몰리더라도, 이내 거품이 확 사라지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문화야말로 오래도록 축적해가야 하는 관심이 필요한 분야이다. 그래서 슈퍼컬렉터와 VIP 말고도 다양한 계층에 대한 배려와 교육이 필요하고 생각된다. 아이들에게 다가서기 좋은 곳은 모두에게 좋은 예술의 장이 되지 않을까?
2024년 한국의 곳곳에 다양한 아트페어가 시작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 집에는 그림 한 점 없더라도, 마음에 많은 그림을 담아둔 진정한 컬렉터가 늘어나는 것이 미래의 예술을 위한 제일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노현지 서울대 디자인학부 강사 ▶▶[관련 뉴스] 글로벌 미술시장 '풍향계' 아트바젤 홍콩, 첫날 판매실적도 공개 못한 까닭은?
▶▶[현장스케치] 생생한 사진과 영상으로 만나는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 홍콩 2024'
▶▶[관련 리뷰] 침사추이부터 센트럴까지, 지금 홍콩은 명작들의 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