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뽑지말라"…회사에 '채용 블랙리스트' 내민 노조 간부
노조 간부가 노조 내부 반대 조직의 친인척들을 채용하지 말라며 회사에 블랙리스트를 제공했다. 법원은 회사가 해당 노조간부를 해고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회사 인사에 개입하려는 노조에 대한 강력 대응에 힘을 실어주는 판결이라 눈길을 끈다.

서울행정법원 제13부는 지난 2월 자동차 부품사 C사의 전 직원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청구를 기각하고 중노위와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반대파 친인척 뽑지마" 강요한 노조 간부

1985년 완성차 업체에 자동차 내장 부품을 공급하는 C사에 입사한 A씨는 2017년 이 회사 근로자 490여명 중 420여 명이 가입한 노조의 수석 부지회장을 지내고 있었다.

A는 2018년 2월 갑자기 채용업무를 담당하는 경영지원팀장에게 '신규인원 채용관련 집행부 요구사항'이라는 문서를 제출하면서 노조 내부 경쟁세력인 반대 조직 소속 근로자들 72명의 이름이 기재돼 있는 문서를 별도로 건넸다. 그리고 "신규채용에서 반대조직 소속 근로자들과 관련 있는 자들을 최대한 배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노조위원장이 회사 측 채용 절차에 개입하려 한 것이다. A는 "2011년과 2013년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반대파인 자신의 이전 노조 집행부가) 자신들의 지인, 친인척 등을 대거 입사시킨 행위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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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압박을 받은 회사의 경영지원팀은 이를 전사 차원에서 알렸다.

경영지원팀은 "A가 특정 조직원들의 명단과 함께 이 사건 채용 과정에서 그 자녀와 친인척들을 채용배제할 것을 요구해 왔다'는 내용을 담은 회사 소식지를 배포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반대 조직 측도 고용노동지청에 근로기준법 위반(취업 방해) 혐의로 진정을 제기했고, A는 기소된 끝에 취업방해 등의 혐의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게 됐다.

근로기준법 40조는 '누구든지 근로자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결국 A에 대한 유죄 판결이 확정된 이후인 2020년, 회사는 징계위를 소집해 A에 대한 징계 해고를 의결했다. 이에 A는 지노위와 중노위에 구제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A는 재판 과정에서 "채용을 독점한 세력들이 다시 채용을 독점하는 것은 막고 공정한 채용이 이뤄지기 바라는 마음이었다"며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재차 주장했다.

◆법원 "기업질서 심각하게 저해...해고 가능"

법원은 "A의 행위는 회사 취업규칙이 중징계(징계해고, 출근정지, 강등) 사유로 정한 '직장 질서를 문란케 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동기도 노조 내부에서 A가 속한 현장 조직과 경쟁 관계에 있는 조직 소속 근로자의 증가를 견제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속한 조직의 영향력 유지를 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A의 비위행위로 참가인은 인사권 행사에 있어서 상당한 압박을 받았으며, 반대 조직 근로자들 역시 상당한 불안감을 느꼈다"며 "이런 일련의 행위로 회사와 근로자들 사이 및 근로자들 내부에서 반목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회사의 명예와 기업질서가 심각하게 저해됐다"고 꼬집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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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제공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채용대상자 선정은 기본적으로 참가인의 고유 권한"이라며 "설령 A의 말대로 2011년 및 2013년 채용 과정에서 반대 조직 관계자들이 부당한 우대를 받았다 하더라도, 불법의 평등은 인정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채용절차에서의 공정함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해쳤고, A의 비위행위가 건전한 노동질서 확립을 상당히 저해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징계해고가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없다"고 지적하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전문가들 "노조의 채용 관여는 불법 소지...단호히 대처해야"

한편 노조 조합원들의 친인척들이 회사에 대거 지원하는 것도 모자라 이들을 뽑거나 뽑지 말라고 주문하는 노조의 '짬짜미 채용 구조'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대차 노조의 경우 지난해 1월엔 이례적으로 “채용 관련 어떠한 불법행위도 근절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채용 과정에 청탁·압력·강요·금품·향응은 있을 수 없다. 비리 연루자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법적 책임을 묻고 일벌백계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너무나 당연한 입장이 나온 이유는 과거 현대차 등 완성차 분야에서는 생산직 채용 비리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2005년에는 입사 추천 대가로 브로커를 통해 4억원대 금품을 받은 노조 간부 등 8명이 구속된 바 있다.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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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은 취업 불황 시기에 안정적인 직장인 중견기업에 자신들의 처자식을 채용할 수 있는 것은 상당한 메리트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정부도 채용절차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활용해 강력 대응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김용문 덴톤스리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누구든지’ ‘법령을 위반하여 채용에 관한 부당한 청탁, 압력, 강요 등을 하는 행위’와 ‘채용과 관련하여 금전, 물품, 향응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거나 수수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엄격하게 규율하고 있다"며 "한편, 공정한 채용을 방해하는 행위가 허위사실 유포, 위계, 위력에 의해 이루어질 경우에는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되고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최근 사회 전반적으로 분배의 정의와 공정이 보편적 가치로 정립되고 있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채용권자인 기업으로서는 채용의 공정성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분명하게 대응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나 공동행위책임에 따른 리스크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