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아마추어 발레리나의 '간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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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마음으로 선율에 몸 맡겨
자신만의 진솔한 이야기 담아내
김용걸 발레리노
자신만의 진솔한 이야기 담아내
김용걸 발레리노
![[아르떼 칼럼] 아마추어 발레리나의 '간절함'](https://img.hankyung.com/photo/202403/07.35617819.1.jpg)
근래 예전과는 다르게 무용 경연대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참가자 부류가 있다. 바로 ‘비전공자’들이다. 그들의 경연 순서는 주로 경연의 가장 마지막쯤이다. 장시간 집중을 요하는 것이 심사인지라 대회 말미에는 꽤 피로한 상태지만 이들의 춤을 유심히 지켜보게 된다. 마치 식사 뒤 맛보는 디저트를 기대하는 마음처럼. 나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전공자의 춤에서는 잘 느낄 수 없는, 다른 무엇인가를 그들의 춤에서는 다양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심사표에는 참가자의 참가 번호와 작품 제목 말고는 거의 기재돼 있는 것이 없다. 쉬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비전공 참가자 중엔 젊은 층 외에도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30~40대, 심지어는 50대처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사실은 비전공자들이 전공자보다 동작이 마음에 와닿고 리듬을 더 잘 타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는 사실이다. “이거다!”라고 할 이유를 찾지는 못했지만, 내 나름대로 추론이 있긴 하다. 바로 ‘간절함’이다.
간절함이라는 단어만큼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감동하게 할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한때 전공했든,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매력을 알게 됐든 간에 비전공자들에게 발레는 전공자들이 생각하는 발레와는 또 다른 의미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몸매와 실력으로 많은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무대에 올라 몸에도 익지 않은 어색한 동작들로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출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웃는 얼굴로….
전공자인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데, 그들은 자신이 가장 순수한 시골 처녀인 양,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공주인 양, 자신만의 감정을 흐르는 음악 선율과 역할 속에 온전히 내맡겨 버린다. “도대체 발레가 뭐길래, 발레의 어떤 부분 때문에 저들은 발레를 할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평판 따위는 개나 줘 버리라는 듯한 모습이다.
보통 경연에서는 솔로로 춤을 추는 시간을 2분으로 제한한다. 어쩌면 그래서이기 때문일까? 2분도 채 안 되는 그 짧은 솔로 공연 속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 호소하는 듯 춤을 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캐릭터 속 인물을 해석해서 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캐릭터 속 인물을 넘어선 진정한 너 자신을 추는 것”이라고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한다. 바로 그것이 비전공자들은 2분이라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춤을 추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춤에 대해 가장 순수했고 가장 솔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치이며 살다 보니 그 소중했던 순간과 마음가짐은 이내 조금씩 잊히고 있었다. 하지만 경연의 마지막쯤에 비전공자들의 춤을 보면서 잃어버린 나에 대해 생각하고 다시 바라보는 예상 밖 경험을 하게 된다. 전공자든, 비전공자든 발레를 사랑하는 이 세상 모든 이에게 내가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