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이이찌산쿄 연구원이 신약 개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다이이찌산쿄 제공
일본 다이이찌산쿄 연구원이 신약 개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다이이찌산쿄 제공
일본 제약사인 다이이찌산쿄가 항체약물접합체(ADC)로 세계 의학계를 놀라게 한 것은 2022년이다. ‘암 올림픽’으로 불리는 미국종양학회(ASCO)에서 이 회사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함께 유방암 신약 엔허투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꾼 새 치료제 탄생에 수백 명의 의학자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ADC 항암제는 엔허투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강한 독성 탓에 부작용을 관리하지 못해 활용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항암 미사일’이 암만 골라서 공격

2년 전 암 올림픽에서 터져 나온 기립박수는 화학항암제, 표적항암제, 면역관문억제제로 이어지던 항암제 패권이 ADC로 바뀌는 신호탄이 됐다. ADC 시장의 글로벌 선두는 다이이찌산쿄다. 지난해 이 회사의 ADC 매출은 3조원에 달했다. 2028년엔 14조원으로 왕좌를 이어갈 것이란 평가다.
그래픽=허라미 기자
그래픽=허라미 기자
1946년 2차 세계대전에 활용된 화학무기가 항암제로 변신한 뒤 과학자들의 관심은 ‘선택적 독성’이었다. 정상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암만 공격해야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ADC는 정확도와 살상력을 하나의 무기에 담았다. 암 수색꾼인 항체에 고리(링커)를 달아 암세포를 죽일 폭탄(약물)을 실어 나른다. ‘항암 유도미사일’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정상세포 영향 줄이고 침투력 강화

다이이찌산쿄의 무기는 약물-항체 비율(DAR)이다. 통상 2~4개 정도 부착 가능한 약물을 8개로 늘렸다. 공격용 미사일이 두 배 이상 늘었다는 의미다. 항체와 약물을 연결하는 고리도 중요한 요소다. 항체가 암세포를 찾아갈 때까지 약물을 단단히 잘 붙잡고 있어야 한다.

와타루 다카사키 연구개발본부장
와타루 다카사키 연구개발본부장
암세포 안으로 들어가면 고리가 끊어져 폭탄을 투하한다. 잘못 끊어져 혈관 속으로 퍼진 약물은 빠르게 사라져야 한다. 다이이찌산쿄는 이런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약물 반감기를 짧게 설계했다. 암에 투하한 폭탄이 주변부까지 함께 파괴하는 ‘방관자 효과’도 이 회사 ADC만의 특성이다. 와타루 다카사키 다이이찌산쿄 연구개발본부장은 “이런 조합이 강력하고 독창적인 ADC 프로토콜을 만들었다”고 했다.

장기적으론 면역세포를 활용한 치료제에서 답을 찾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의 키메릭항원수용체(CAR)-T세포 치료제 킴리아는 혈액암 완치 시대를 열었다. 초기 투여 환자도 10년 넘게 재발 없이 장기 생존하고 있다. 면역 T세포가 암만 찾아 공격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ADC와 유사하다.

“유전자 편집·맞춤 백신 시대 열린다”

그래픽=허라미 기자
그래픽=허라미 기자
암이 어디에 있든 공격할 수 있는 백신 개발도 한창이다. ‘맞춤형 조기 치료 시대’를 열 것이란 평가다. 핵심은 암에만 있는 특이 단백질인 신생항원이다. 미국 모더나는 정상세포와 암세포 유전자 서열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신생항원 발굴 역량을 높였다. 최대 34개 신생항원 정보를 담은 mRNA를 주사해 면역계에 ‘수배범’ 전단지를 배포한다. 악성 피부암인 흑색종, 치료제가 많지 않은 췌장암 등에서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동물에서도 힌트를 얻고 있다. 덩치 크고 세포가 많으면 변이가 늘어 암 위험도 증가할 것이란 게 과학계 상식이었다. 하지만 코끼리의 암 사망률은 3%로 사람(22%)보다 낮다. ‘페토의 역설’이다. 차이는 망가진 DNA를 복구하는 ‘TP53’. 사람에겐 한 쌍뿐인 이 유전자를 코끼리는 20쌍 갖고 있다. 유전자 편집을 활용한 암 정복 시도가 이어지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암이 ‘만성질환’처럼 공생하는 방향으로 정복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암의 증식과 전파를 억제하면 기대수명만큼 살 수 있어서다.

도쿄=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