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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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을 쓰면 소득이 감소하는 게 부담스럽고 경력 단절 우려도 있어서 육아기 단축근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사팀이 이듬해 연차가 줄어든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육아휴직을 쓴 동료는 연차휴가가 보전된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됐어요. 이런 황당한 법 제도는 빨리 개선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쓰고 있는 한 40대 워킹맘 A씨가 한국경제신문에 보낸 이메일에 담긴 내용이다.

3일 노무업계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사용한 근로자는 단축 근로시간만큼 이듬해 연차 휴가가 줄어든다. 특히 육아휴직을 쓰고 아예 쉰 근로자는 연차가 그대로 보존되는 것과 비교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황당하다”는 워킹맘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육아기 단축근무로 인한 연차휴가 불이익을 없애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3년이 넘도록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육아휴직보다 연차 휴가 적다니" 분통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은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근로자가 사업주에 1년간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 근로시간 단축 기간이 가산돼 자녀 한 명당 최대 2년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단축 후 근로시간은 주당 15시간 이상이어야 하고 35시간을 넘겨서는 안 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겐 다음 해에 최소 15일의 유급 연차휴가를 주도록 돼 있다. 하지만 육아기 단축근무 사용자의 연차휴가는 단축된 근로시간에 비례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입사 2년 차 근로자가 1일 소정근로시간 8시간 중 4시간씩 1년 동안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사용했다면 이듬해 연차유급휴가도 7.5일(15일×(4시간÷8시간))로 반토막이 난다. 일반 단기 근로자의 연차 휴가와 마찬가지 계산법이다.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연차가 감소한 것이 당연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문제는 육아휴직을 쓴 직원과의 형평성이다. 육아휴직을 사용한 근로자에게는 법에 따라 이듬해 연차휴가가 그대로 보전되기 때문이다. 국회는 2018년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연차휴가를 계산할 때 ‘출근한 것’으로 보는 항목에 ‘육아휴직으로 휴업한 기간’을 포함했다. 휴직 기간은 정상 근로로 보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육아기 단축근무 사용자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쉬지 않고 일을 계속 한 단축근무 사용자가 일을 아예 쉰 휴직자보다 연차 휴가가 적은 셈이다. 이듬해 연차휴가를 쓰지 못해 받는 연차휴가보수당도 줄어드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와 관련,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3년이 넘도록 관련 논의는 공회전 중이다.

○"사실상 중소기업 근로자 차별"

10인 규모 중소기업에 다니는 워킹맘 B씨는 “열악한 회사 사정과 동료에 대한 미안함 탓에 단축근무 사용조차 눈치 보이는데, 휴가마저 불이익을 주는 것은 중소기업 근로자에 대한 차별”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는 초저출산 시대를 맞아 육아 부담을 최대한 덜어주겠다는 정부 방침과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에 따르면 육아기 단축근로 사용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확대 중이다.

지난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 사용자는 2만 3188명으로 전년보다 19.1% 늘었다. 2023년 전체 육아휴직 사용자가 12만 6008명으로 전년 대비 4%가량 감소한 것과 대조된다.

특히 단축제도 사용자 중 중소기업(우선지원대상기업) 근로자는 1만4939명으로 전체 사용자의 64.4%에 달한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즐겨 쓴다는 뜻이다.

이은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경력 단절·소득 감소 부담을 한꺼번에 덜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이 육아기 단축근무”라며 “육아휴직과 마찬가지로 불이익을 주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법 개정 사항이니만큼 국회 계류 중인 법안 등을 감안해 대책 마련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재원 확보 방안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올해부터 통상임금 100%를 지급하는 단축 근로시간을 주 5시간에서 주 10시간으로 늘리고 사용 가능 자녀의 나이를 기존 8세에서 12세로 연장하는 등 제도 적용 대상을 확대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번 개편에 따라 5년간 5701억원이 추가로 소요될 예정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