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불편을 조속히 해소해드리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늘 송구한 마음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을 향한 사과로 운을 뗐다. 지난 2월 의료개혁 추진으로 의정 갈등 사태가 벌어진 뒤 윤 대통령이 “송구하다”는 표현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1분 동안 1만1385자 분량의 담화를 읽어간 윤 대통령은 말미에도 “대통령은 국민에게 겸손해야 하고 사회적 약자에게는 더 깊이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와 정부는 더욱 자세를 낮추고 우리 사회의 약자와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겠다”며 “작은 목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국민을 위한 일이라면 온 힘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의료개혁뿐 아니라 각종 국정 현안에서 보인 강경한 이미지와는 달리 자세를 낮춘 모습이었다.

윤 대통령은 전날 밤까지 소수의 참모와 담화문을 다듬으며 송구하다는 메시지에 강조점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저와 우리 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국민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국민의 아주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를 향해서도 유화적인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가 장래 수입 감소를 걱정하는 것이라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고 또 수많은 국민의 건강을 지켜낼 여러분을 제재하거나 처벌하고 싶겠느냐”며 “지금이라도 의료 현장으로 돌아와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불법 집단행동에 대해선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윤 대통령은 “독점적 권한을 무기로 의무는 내팽개친 채 국민의 생명을 인질로 잡고 불법 집단행동을 벌인다면 국가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다”며 “집단행동을 하겠다면 의사 증원을 반대하면서 할 게 아니라 제가 여러분에게 드린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의사 단체들의 ‘총선 개입’ ‘정권 퇴진’ 발언을 두고는 “이런 행태는 대통령인 저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한 것은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직후, 지난해 11월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 불발 직후에 이어 세 번째다. 윤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담화 직후 지역 2차 병원인 대전 유성선병원을 방문해 의료진의 건의 사항을 들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의료 개혁은 대의와 원칙만 가지고 안 되고, 디테일에서 승부가 결정된다”며 “보건복지부 서기관, 사무관들이 의료기관에 가서 실제로 행정 근무를 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지시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