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익숙함에서 탈피해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중학교 2학년 때다. 학교 가려고 집을 나설 때 아버지가 편지 심부름을 시켰다. “군청 뒤에 사시는 어르신을 찾아뵙고 편지를 전해드리라”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편지를 받아든 채 “군청이 어디 있어요?”라고 되물었던 일 때문이다. 기차 놓친다고 성화 부리는 어머니 말씀에 떠밀리듯 집을 나섰지만, 내 말을 듣자 그때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진 아버지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라서다.
동급생들이 가르쳐준 군청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집은 더 쉽게 찾았다. 편지를 받아든 인척은 먹을 것을 내줬다. 돌아와 아버지께 받아온 답신을 드리자 펴보지 않고 책상에 밀어둔 채 “한심한 놈”이라고 야단부터 쳤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로는 처음으로 오래 꿇어앉아 야단맞았다. “1년이나 지났는데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면서 옆에 있는 군청을 모른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라고 말문을 연 아버지에게 “학교 가는 길만 다니니까요”라고 한 내 대답이 화를 돋웠다. 바로 하신 말씀이 “익숙해야 하지만 거기 빠지면 독이 된다. 익숙함에서 탈피해라”였다.
아버지는 “사람은 먹고 싸고 자는 일이 불편할 때 가장 바쁘다. 너는 그게 해결되자 이내 적응해버렸다”라고 진단하며 “불편한 환경을 맞닥뜨리면 인간은 거기에 바로 적응하게 된다. 일단 적응하고 나면 불편함이 체화돼 불편을 더는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나중에 환경을 개선할 더 나은 방법이 나타나도 그걸 활용하려는 욕구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네가 군청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게 익숙함에 빠져 있다는 증거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익숙함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성장을 방해한다”라며 위험성을 경고한 아버지는 “틀에 박힌 사고방식은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의적인 생각마저 방해한다. 익숙함은 잠재적인 위험을 숨길 수 있다”라며 “위험을 예측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익숙해지면 삶의 단조로움과 지루함도 함께 불러일으켜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라고 한 아버지는 “익숙함이 타성(惰性)을 부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타성은 그 속성이 나태함이다”라고 분석한 아버지는 “근면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라고 몇 번 강조했다. 아버지는 “환경이 바뀌면 궁금하지도 않았느냐?”면서 당신의 자식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던 일을 열거해가며 질책했다. “일 년이면 읍내 길이란 길, 골목이면 골목을 모두 다녀볼 수 있는 시간이다. 매일 다른 길로 통학하면 거저 알게 되는 일이다. 500명이 채 안 되는 네 동급생 중 너는 몇이나 알고 있느냐?”며 캐물은 아버지는 “읍내 중학교에 진학한 거는 네 삶의 영역이 그만큼 커진 거다. 지금 사는 이곳의 산천과 길을 속속들이 알 듯 읍내 상황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 학교 공부가 다가 아니다. 그 나이 때에 꼭 배워야 할 것 중 지극히 최소한의 것일 뿐이다”라고 일깨웠다.
“익숙해지면 타성에 젖게 된다”고 다시 강조한 아버지는 “법률이나 제도, 관습이나 문화, 과학이나 기술에 이르기까지 인간 사회는 한번 형성되어 버리면 환경이나 여러 조건이 더 좋게 변경되어도 종래부터의 내용이나 형태가 그대로 존속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그때는 얼른 알아듣지 못했지만, 과거 하나의 선택이 관성 때문에 쉽게 달라지지 않는 현상이 ‘경로의존성(經路依存性, path dependence)이다. 과거에 형성된 관행이나 제도, 규격, 제품 등에 익숙해져 이에 의존한 탓에 시간이 지난 후 비효율적인 것으로 밝혀지거나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때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사회경제적 현상을 뜻한다.
그날 말미에 “익숙함에서 탈피하기란 익숙하기보다 더 어렵다”라며 든 고사성어가 ’파부침주(破釜沈舟)‘다.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말이다.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비유한다. 진(秦)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항우(項羽)가 거록(鉅鹿)의 싸움에서, 출진에 즈음해 타고 온 배를 가라앉히고 쓰던 솥을 깨뜨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온다. 강을 건넌 항우가 갑자기 타고 왔던 배를 부수어 침몰시키라고 명령을 내리고, 뒤이어 싣고 온 솥마저도 깨뜨려 버리고 주위의 집들도 모두 불태워버리도록 했다. 병사들에게는 3일분의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돌아갈 배도 없고 밥을 지어 먹을 솥마저 없었던 병사들은 결사적으로 싸웠다. 아홉 번을 싸우는 동안 진나라의 주력부대는 궤멸하고, 이 싸움으로 항우는 제장(諸將)의 맹주가 되었다.
“고기가 익으면 뼈는 버린다”라며 익숙함에서 탈피하기를 다시 강조한 아버지는 파부침주를 실행한 항우의 결단력을 배우라고 당부했다. 익숙해지면 쉽게 안주하는 손주들에게도 꼭 물려줘야 할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동급생들이 가르쳐준 군청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집은 더 쉽게 찾았다. 편지를 받아든 인척은 먹을 것을 내줬다. 돌아와 아버지께 받아온 답신을 드리자 펴보지 않고 책상에 밀어둔 채 “한심한 놈”이라고 야단부터 쳤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로는 처음으로 오래 꿇어앉아 야단맞았다. “1년이나 지났는데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면서 옆에 있는 군청을 모른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라고 말문을 연 아버지에게 “학교 가는 길만 다니니까요”라고 한 내 대답이 화를 돋웠다. 바로 하신 말씀이 “익숙해야 하지만 거기 빠지면 독이 된다. 익숙함에서 탈피해라”였다.
아버지는 “사람은 먹고 싸고 자는 일이 불편할 때 가장 바쁘다. 너는 그게 해결되자 이내 적응해버렸다”라고 진단하며 “불편한 환경을 맞닥뜨리면 인간은 거기에 바로 적응하게 된다. 일단 적응하고 나면 불편함이 체화돼 불편을 더는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나중에 환경을 개선할 더 나은 방법이 나타나도 그걸 활용하려는 욕구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네가 군청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게 익숙함에 빠져 있다는 증거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익숙함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성장을 방해한다”라며 위험성을 경고한 아버지는 “틀에 박힌 사고방식은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의적인 생각마저 방해한다. 익숙함은 잠재적인 위험을 숨길 수 있다”라며 “위험을 예측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익숙해지면 삶의 단조로움과 지루함도 함께 불러일으켜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라고 한 아버지는 “익숙함이 타성(惰性)을 부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타성은 그 속성이 나태함이다”라고 분석한 아버지는 “근면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라고 몇 번 강조했다. 아버지는 “환경이 바뀌면 궁금하지도 않았느냐?”면서 당신의 자식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던 일을 열거해가며 질책했다. “일 년이면 읍내 길이란 길, 골목이면 골목을 모두 다녀볼 수 있는 시간이다. 매일 다른 길로 통학하면 거저 알게 되는 일이다. 500명이 채 안 되는 네 동급생 중 너는 몇이나 알고 있느냐?”며 캐물은 아버지는 “읍내 중학교에 진학한 거는 네 삶의 영역이 그만큼 커진 거다. 지금 사는 이곳의 산천과 길을 속속들이 알 듯 읍내 상황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 학교 공부가 다가 아니다. 그 나이 때에 꼭 배워야 할 것 중 지극히 최소한의 것일 뿐이다”라고 일깨웠다.
“익숙해지면 타성에 젖게 된다”고 다시 강조한 아버지는 “법률이나 제도, 관습이나 문화, 과학이나 기술에 이르기까지 인간 사회는 한번 형성되어 버리면 환경이나 여러 조건이 더 좋게 변경되어도 종래부터의 내용이나 형태가 그대로 존속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그때는 얼른 알아듣지 못했지만, 과거 하나의 선택이 관성 때문에 쉽게 달라지지 않는 현상이 ‘경로의존성(經路依存性, path dependence)이다. 과거에 형성된 관행이나 제도, 규격, 제품 등에 익숙해져 이에 의존한 탓에 시간이 지난 후 비효율적인 것으로 밝혀지거나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때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사회경제적 현상을 뜻한다.
그날 말미에 “익숙함에서 탈피하기란 익숙하기보다 더 어렵다”라며 든 고사성어가 ’파부침주(破釜沈舟)‘다.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말이다.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비유한다. 진(秦)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항우(項羽)가 거록(鉅鹿)의 싸움에서, 출진에 즈음해 타고 온 배를 가라앉히고 쓰던 솥을 깨뜨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온다. 강을 건넌 항우가 갑자기 타고 왔던 배를 부수어 침몰시키라고 명령을 내리고, 뒤이어 싣고 온 솥마저도 깨뜨려 버리고 주위의 집들도 모두 불태워버리도록 했다. 병사들에게는 3일분의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돌아갈 배도 없고 밥을 지어 먹을 솥마저 없었던 병사들은 결사적으로 싸웠다. 아홉 번을 싸우는 동안 진나라의 주력부대는 궤멸하고, 이 싸움으로 항우는 제장(諸將)의 맹주가 되었다.
“고기가 익으면 뼈는 버린다”라며 익숙함에서 탈피하기를 다시 강조한 아버지는 파부침주를 실행한 항우의 결단력을 배우라고 당부했다. 익숙해지면 쉽게 안주하는 손주들에게도 꼭 물려줘야 할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