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인 '원포인트 인사' 후임에 재무통 허병훈
비상 경영 체제 돌입…CEO 물갈이 인사 이어질 듯

실적 위기에 빠진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회장이 승진 25일 만에 인적 쇄신의 칼을 빼 들었다.

신세계그룹은 정두영(59) 신세계건설 대표이사를 경질하고 신임 대표로 허병훈 경영전략실 경영총괄 부사장을 내정했다고 2일 밝혔다.

영업본부장과 영업 담당도 함께 교체했다.

이번 인사는 지난달 8일 정 회장 승진 이후 단행한 첫 쇄신 인사다.

지난해 11월 그룹 컨트롤타워인 경영전략실 개편과 함께 도입한 최고경영자(CEO) 수시 인사의 첫 사례이기도 하다.

신세계가 계열사 CEO에 대해 정기 인사가 아닌, '원포인트' 교체 인사를 단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신세계건설 이사회 이틀 뒤 전격적인 교체 인사가 단행된 것도 예상 외다.

그룹 측은 이날 신세계건설 임원 인사 보도자료에서 '경질'이라는 강한 표현을 썼다.

인적 쇄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 대표는 1990년 신세계에 입사한 뒤 2011년부터 줄곧 신세계건설 영업 업무를 담당해온 '건설맨'으로 2022년 10월 대표이사직에 오른 지 1년 6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신세계건설은 그간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분양 실적 부진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어왔다.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손실만 1천878억원에 달해 모기업인 이마트의 사상 첫 연간 영업손실의 원인이 됐다.

신세계 정용진, 실적 부진 건설 대표 전격교체…인적쇄신 착수(종합)
신임 대표로 내정된 허병훈 경영전략실 경영총괄 부사장은 198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구조조정본부 경영진단팀, 삼성물산 재무담당, 미주총괄 최고재무책임(CFO) 등을 거쳤다.

2011년부터 호텔신라로 이동해 경영지원장 겸 CFO를 맡았고 2018년 7월 신세계그룹에 입사해 전략실 기획총괄부사장보, 지원총괄 부사장, 관리총괄 부사장, 백화점부문 기획전략본부장, 전략실 재무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그룹 측은 허 부사장이 그룹 재무 관리를 총괄해온 만큼 신세계건설 재무 건전성을 회복시킬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그룹의 핵심 재무통인 허 부사장을 신임 건설 대표로 내정한 것은 그룹 차원에서 건설의 재무 이슈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건설은 조만간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허 내정자를 대표이사로 정식 선임할 예정이다.

허 내정자가 대표이사로 취임하면 잠재 리스크에 대한 선제 대응과 지속적인 추가 유동성 확보 등을 통해 부채비율을 낮추고 장기적인 사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신세계 정용진, 실적 부진 건설 대표 전격교체…인적쇄신 착수(종합)
신세계건설은 최근 영랑호리조트 흡수합병, 회사채 발행, 레저부문 양수도 등을 통해 상반기 도래하는 예정 자금 이상의 유동성을 확보하는 등 재무 건전성 강화에 힘써왔다.

건설업계 후발주자인 신세계건설은 2018년 자체 주거브랜드 '빌리브'를 내놓고 주상복합, 오피스텔 건설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대구에 건설한 빌리브 헤리티지, 라디체, 루센트 등에서 대거 미분양과 미수금이 발생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달 정기평가를 통해 신세계건설 신용등급과 전망을 'A'와 '부정적'에서 한 단계 낮은 'A-'와 '안정적'으로 변경했다.

지난해 11월 신세계건설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한 지 4개월여 만이다.

한신평은 보고서에서 공사원가 상승, 미분양 현장 관련 손실 등으로 인한 대규모 영업적자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리스크 증가 등을 평가요소로 삼았다고 밝혔다.

한신평은 "분양 경기가 크게 저하된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분양실적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공사대금 회수 차질, 사업성 저하로 인한 손실 등의 부담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며 작년 말 별도 기준 매출채권 4천529억원 가운데 대구 사업장 관련 채권이 2천억원 이상이라고 짚었다.

앞서 작년 11월 신세계건설은 재무 안전성 강화를 위해 신세계영랑호리조트를 흡수합병, 약 650억원 규모 자본을 확충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업계에서는 신세계그룹의 이번 교체 인사를 두고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 CEO 물갈이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룹 안팎에서는 수년간 적자를 지속하는 G마켓, SSG닷컴 등 그룹 온라인 계열사가 다음 타깃이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와 별도로 그룹의 핵심인 이마트는 지난달 희망퇴직 신청 접수를 시작으로 이미 인적 구조의 '다운사이징' 작업에 들어갔다.

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그룹이 실적 위기에 따른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간 만큼 올해 내내 인력 효율화, 부진한 사업 축소 등 인적·사업적 구조조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