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2천명 협상 불가'→'절대적 숫자 아니다' 전향적 자세
공은 의사 쪽 넘어와…'2천명 백지화' 벗어나 협상 여부 주목
의협·전공의 강경론 불변…"백지화해야 복귀", "정원 감축해야"
'타협' 가능성 열어둔 교수들이 최후 희망…타협 없으면 의대 정원 5월 '최종 확정'
정부 '2천명 조정' 여지 뒀는데, 의사들 '백지화' 주장 벗어날까
정부가 대통령 담화를 통해 의대 증원 2천명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지 않겠다며 협상 여지를 둔 가운데, 의료계도 그동안의 '백지화' 주장에서 벗어날지 주목된다.

정부가 '2천명에서 줄이려면 통일안을 내달라'고 의료계에 요청한 만큼, 공은 의료계로 넘어온 셈이다.

하지만 법정 의료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집단행동의 주역인 전공의들은 강경론을 굽히지 않고 있어 의료계 차원의 통일된 제안이 나올지 미지수다.

정부와의 협상에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의대 교수들이 유일한 희망이지만, 이들마저 '중재'에 실패하면 의대 증원은 다음 달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2천명 조정' 여지 뒀는데, 의사들 '백지화' 주장 벗어날까
◇ '2천명 협상 불가→절대적 숫자 아니다' 달라진 정부 입장
2일 의료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전날 대국민 담화는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는 점에서 "기존과 달라진 게 뭐냐"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2천명 증원 협상 불가'에서 한발짝 물러섰다는 점에서 전향적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에 "증원 규모를 2천명에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집단행동이 아니라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통일된 안을 정부에 제시해야 마땅하다"고 요구했다.

나아가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 "정부의 정책은 늘 열려 있다",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인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부 정책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등의 발언도 했다.

이런 발언은 그동안 정부가 고수해온 '2천명 증원'에 벗어나 조정 여지를 처음으로 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의료개혁을 특정 직역과 흥정하듯 뒤집는 일은 없을 것", "2천명 증원은 최소한의 확충 규모" 등의 발언을 통해 의사들과 대화는 하더라도 '2천명 증원'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강조해왔지만, 여기서 한걸음 물러선 것이다.

대통령실도 이러한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재확인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전날 방송에 출연해 "2천명 숫자가 절대적 수치란 입장은 아니다"며 "정부는 2천명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의대 증원 규모를 포함해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책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오랜 기간 동안 절차를 거쳐 산출한 숫자이기 때문에 이해 관계자들이 반발한다고 갑자기 1천500명, 1천700명 이렇게 근거 없이 바꿀 순 없다"며 "그래서 (의료계가) 집단행동을 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 조정안을 제시해 주면 낮은 자세로 이에 대해 임하겠단 뜻"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2천명 조정' 여지 뒀는데, 의사들 '백지화' 주장 벗어날까
◇ '강경론' 고수하는 의협…전공의·의대생들 "증원 백지화해야"
정부의 입장 변화로 '공'은 의사들 쪽으로 넘어왔지만,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담화에 대해 유일한 법정 의료단체인 의협은 싸늘한 반응으로 답했다.

전날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2천명이라는 의대 증원 숫자에 대한 후퇴 없이는 협상할 수 없다"며 정부가 '먼저' 2천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임현택 의협 차기 회장은 연합뉴스에 "'입장이 없음'이 공식 입장"이라며 "그 이유조차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논평하고 싶지 않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임 당선자는 되레 의대 정원을 500∼1천명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집단행동의 주역인 전공의들과 의대생들도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다.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 씨가 지난달 29일부터 전날까지 전공의·의대생 1천58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4.1%는 '한국 의료 현실과 교육환경을 고려할 때 의대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존 정원인 3천58명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31.9%였다.

의대 정원을 감축 또는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이 전체의 96.0%를 차지한 것이다.

향후 전공의 수련 의사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의 93%는 복귀 조건으로 '의대 증원·필수의료 패키지 백지화'를 꼽아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을 연출했다.

정부 '2천명 조정' 여지 뒀는데, 의사들 '백지화' 주장 벗어날까
◇ 의대 교수들, 구심점 될지 미지수…협상 없으면 의대 증원 5월말 '최종 확정'
의료계 내에서는 그나마 의대 교수들이 정부의 태도 변화에 다소 공감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윤정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대협) 비대위 홍보위원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의료계의 통일된 안을 달라'는 대통령의 요구에 대해 "현실성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전의교협의) 김창수 회장이 의협 비대위 정책위원회 위원장이고, 의협의 김택우 비대위원장,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대표 등과 끊임없이 7주째 얘기해왔다"며 의료계가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전날 저녁 온라인 회의를 연 전의대협은 이날 대통령 담화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협상을 위한 통일안을 마련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백지화' 원칙을 포기할지, 포기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의 증원을 양보할지, 오히려 정원 감축을 요구할지를 둘러싸고 의견 일치를 보기 쉽지 않아 보인다.

대화를 위해 어느 정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을 때 강경파들의 반발도 변수다.

방재승 전국의대교수비대위(전의비) 위원장의 경우 지난달 21일 한 방송에 출연해 "정부가 전공의 조치를 풀어주고 대화의 장을 만들면 저희 교수들도 사직서 제출을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유화적 발언을 했다가 비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가 재신임됐다.

현재 의대 교수들은 전의비와 전의교협 등 2개 단체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사단체들은 서로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통일된 협상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논의를 이끌 '구심점'이 없을 경우 각 단체 사이의 시각차만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의사들과 정부의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가면 의대 정원은 다음 달 '2천명 증원'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정부가 대학별로 배정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반영해 각 대학은 학칙 개정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승인을 받아' 2025학년도 입학전형 시행계획'을 변경하게 된다.

이렇게 변경된 내용은 통상 5월 하순 공고되는 '2025학년도 대입전형 수시모집요강'에 최종 반영된다.

이는 2천명 의대 증원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마침내 '최종 확정'된다는 뜻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