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공정 세상? 이게 다 세종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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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불문, 억울함 호소했던 조선
한글창제로 고소장 작성 쉬워져
불만 자유롭게 제기하던 풍토 덕에
적극적으로 '부당함'에 문제 제기
오늘도 부글부글 끓는 공론장
법조계 AI 도입 앞당기는 촉매될까
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
한글창제로 고소장 작성 쉬워져
불만 자유롭게 제기하던 풍토 덕에
적극적으로 '부당함'에 문제 제기
오늘도 부글부글 끓는 공론장
법조계 AI 도입 앞당기는 촉매될까
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
조선은 한양을 수도로 건설하며 18.6㎞의 성벽을 건축했고 거기에 네 개의 대문을 냈다. 과정을 주도한 정도전은 유가의 인의예지(仁義禮智)에서 한 자씩 떼어 대문의 이름을 붙였다. 동대문(흥인문), 서대문(돈의문), 남대문(숭례문)까지는 순서대로 잘 나갔는데 북쪽은 느닷없이 숙청문(肅淸門)이다. ‘지(智)’는 어디로? 원래는 ‘지혜를 넓힌다’라는 홍지문(弘智門)이었는데 ‘백성들이 똑똑하면 다스리기가 피곤해진다’며 ‘지혜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의미의 숙청(肅淸)으로 정한다. 지도층이라는 사대부의 시각이 그따위였다. 백성이란 소처럼 묵묵히 농사나 짓고 세금만 딱딱 내면 충분한 ‘수단’이었다.
그런 생각에 반기를 들고 ‘이루고자 할 바가 있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한 자가 많은 걸 불쌍히’ 여긴 별난 분이 등장하셨다. 그런데 그분이 말한 ‘이루고자 할 바’가 무엇이었을까? 힘 있는 자들에게 억울하게 당했을 때 그 부당함을 해소하는 방법이었다. 조선은 신분 불문, 남녀불문 억울하면 관가에 고소할 수 있었다. 게다가 사또의 판결에 수긍이 안 되면 그 위의 관찰사, 한양에 있는 정부까지 상고할 수 있는 3심제도가 경국대전에 딱 나와 있다.
제도는 탁월한데 고소장 작성, 그게 문제였다. 그래서 어린 백성도 고소문을 작성해서 ‘뜻을 펼칠 수’ 있도록 한글을 만드셨다. 약자들이 뜻을 펴도록 돕는 한글? 당연히 사대부들은 죽자고 반대할 수밖에. 결국 그들의 우려처럼 고소장은 몰려들었고 사대부들이 난감해졌다. 노비들이 주인에게 당한 억울함을 고소한 사건도 상당하다. 그걸 다 받아주고 분석하고 판결하는 시스템을 조선은 500년간 운영했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떨까? 2018년을 기준으로 10만 명당 피고소인이 1172명이란다. 비슷한 법체계를 가진 일본은 5.4명에 불과하니 무려 217배! 엄청나다. 한국 법원이 일본보다 공정한 해결자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걸까? 영국 레가툼연구소의 2023년 자료를 보면 한국의 번영지수는 167개국에서 29위이지만 그 구성요소인 ‘사법 체제의 신뢰’는 처참하게도 155위다. 한마디로 못 믿겠다는 거다. 하지만 부당함을 느끼면 공론의 장에 적극적으로 노출하는 게 일종의 문화이자 전통으로 굳어진 거다. 한국의 엘리트인 판사님들, 과로사하기에 ‘딱’이다. 뭐 억울해하지 마시라. 기록을 보면 조선의 지방 관료들도 고소 때문에 과로사 직전까지 몰렸으니까.
일본은 메이지유신(1867년) 이전에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다. 게다가 지도층인 사무라이는 백성들을 즉결 처분할 권한까지 있었다. 그 권한의 상징으로 늘 칼을 차고 다니시는 분을 고소한다? 부당함을 바로잡으려던 용자(勇者)는 즉시 목이 잘리고 자식을 못 남겼다. 이러니 마을 사회는 사무라이가 개입할 여지를 줄이려고 사전에 자기검열을 하고 알아서 기었다. 그런 암묵적 규칙들을 어기면 무라하치부(村八分)라는 집단 이지메를 했는데 협업이 필수인 농업사회에선 서서히 말라 죽을 수밖에. 그런 세월이 1000년, 용감한 자의 유전자는 사라지고 수많은 규칙에 얽힌 거미줄과 같은 사회만 남았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환경에서 포기하고 참는 게 일상이니 도전정신도 실종될 수밖에. 자민당이 68년 중 62년을, 아들 손자에게 지역구를 물려가며 집권해도 묵묵부답이다. 상황이 이러니 70년 묵은 할머니들의 한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송을 이해나 하겠나!
우린 다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굴속에서 마늘만 씹으며 버티는 오기가 있다. 삐딱하거나 부당하다? 죽어도 못 참는다. 3·1운동, 4·19혁명, 민주항쟁, 촛불까지 연이어진 반복 경험을 통해 불의에 용감하게 항거하면 공동체가 함께해줄 거라는 믿음이 강건하다. 늘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우리는 공론장과 거기에 적극 참여하는 한국인의 집단지성을 굳게 믿는다. 세상의 모든 혁신은 ‘일상의 불편을 못 참음’에서 시작되는 법인데 우린 그걸 못 참는다. 그래서 인구가 줄어드는 위기는 닮았지만, 일본과는 다른 길로 갈 수밖에. 하지만 걱정이다. 이젠 인공지능(AI)이 고소장도 자동으로 생성해줄 판인데 판사님들의 과로는 어찌할꼬. 결국 판결문도 AI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그런 생각에 반기를 들고 ‘이루고자 할 바가 있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한 자가 많은 걸 불쌍히’ 여긴 별난 분이 등장하셨다. 그런데 그분이 말한 ‘이루고자 할 바’가 무엇이었을까? 힘 있는 자들에게 억울하게 당했을 때 그 부당함을 해소하는 방법이었다. 조선은 신분 불문, 남녀불문 억울하면 관가에 고소할 수 있었다. 게다가 사또의 판결에 수긍이 안 되면 그 위의 관찰사, 한양에 있는 정부까지 상고할 수 있는 3심제도가 경국대전에 딱 나와 있다.
제도는 탁월한데 고소장 작성, 그게 문제였다. 그래서 어린 백성도 고소문을 작성해서 ‘뜻을 펼칠 수’ 있도록 한글을 만드셨다. 약자들이 뜻을 펴도록 돕는 한글? 당연히 사대부들은 죽자고 반대할 수밖에. 결국 그들의 우려처럼 고소장은 몰려들었고 사대부들이 난감해졌다. 노비들이 주인에게 당한 억울함을 고소한 사건도 상당하다. 그걸 다 받아주고 분석하고 판결하는 시스템을 조선은 500년간 운영했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떨까? 2018년을 기준으로 10만 명당 피고소인이 1172명이란다. 비슷한 법체계를 가진 일본은 5.4명에 불과하니 무려 217배! 엄청나다. 한국 법원이 일본보다 공정한 해결자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걸까? 영국 레가툼연구소의 2023년 자료를 보면 한국의 번영지수는 167개국에서 29위이지만 그 구성요소인 ‘사법 체제의 신뢰’는 처참하게도 155위다. 한마디로 못 믿겠다는 거다. 하지만 부당함을 느끼면 공론의 장에 적극적으로 노출하는 게 일종의 문화이자 전통으로 굳어진 거다. 한국의 엘리트인 판사님들, 과로사하기에 ‘딱’이다. 뭐 억울해하지 마시라. 기록을 보면 조선의 지방 관료들도 고소 때문에 과로사 직전까지 몰렸으니까.
일본은 메이지유신(1867년) 이전에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다. 게다가 지도층인 사무라이는 백성들을 즉결 처분할 권한까지 있었다. 그 권한의 상징으로 늘 칼을 차고 다니시는 분을 고소한다? 부당함을 바로잡으려던 용자(勇者)는 즉시 목이 잘리고 자식을 못 남겼다. 이러니 마을 사회는 사무라이가 개입할 여지를 줄이려고 사전에 자기검열을 하고 알아서 기었다. 그런 암묵적 규칙들을 어기면 무라하치부(村八分)라는 집단 이지메를 했는데 협업이 필수인 농업사회에선 서서히 말라 죽을 수밖에. 그런 세월이 1000년, 용감한 자의 유전자는 사라지고 수많은 규칙에 얽힌 거미줄과 같은 사회만 남았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환경에서 포기하고 참는 게 일상이니 도전정신도 실종될 수밖에. 자민당이 68년 중 62년을, 아들 손자에게 지역구를 물려가며 집권해도 묵묵부답이다. 상황이 이러니 70년 묵은 할머니들의 한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송을 이해나 하겠나!
우린 다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굴속에서 마늘만 씹으며 버티는 오기가 있다. 삐딱하거나 부당하다? 죽어도 못 참는다. 3·1운동, 4·19혁명, 민주항쟁, 촛불까지 연이어진 반복 경험을 통해 불의에 용감하게 항거하면 공동체가 함께해줄 거라는 믿음이 강건하다. 늘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우리는 공론장과 거기에 적극 참여하는 한국인의 집단지성을 굳게 믿는다. 세상의 모든 혁신은 ‘일상의 불편을 못 참음’에서 시작되는 법인데 우린 그걸 못 참는다. 그래서 인구가 줄어드는 위기는 닮았지만, 일본과는 다른 길로 갈 수밖에. 하지만 걱정이다. 이젠 인공지능(AI)이 고소장도 자동으로 생성해줄 판인데 판사님들의 과로는 어찌할꼬. 결국 판결문도 AI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