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헤란 분노…美·이스라엘 국기 화형식 > 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팔레스타인 광장에서 열린 시위에서 이란인들이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군이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이란군 7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란에선 미국과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AFP연합뉴스
< 테헤란 분노…美·이스라엘 국기 화형식 > 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팔레스타인 광장에서 열린 시위에서 이란인들이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군이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이란군 7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란에선 미국과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을 공습해 이란혁명수비대(IRGC) 고위사령관 등 7명이 사망했다. 자국 영토로 간주되는 외교 시설을 공격당한 이란이 보복을 예고하면서 중동에 확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등 7명 사망

이스라엘, 영사관 기습 폭격에…이란 "똑같이 되돌려줄 것"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방위군(IDF) 소속 F-35 전투기 2대가 1일(현지시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는 이란 대사관 부지 내 영사관 건물을 폭격했다. IRGC는 이 공격으로 조직 내 특수부대 쿠드스군의 사령관인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 등 7명과 시리아인 6명까지 총 13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자헤디는 시리아와 레바논 등에서 쿠드스를 지휘해 이란의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이다. IRGC 관계자에 따르면 자헤디는 이란 정보당국,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등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관련 비밀 회의를 열 계획이었다.

호세인 아크바리 시리아 주재 이란 대사는 “이번 공격과 똑같은 강도의 보복을 반드시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이스라엘의 최대 지원국인 미국을 향해서도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이란제 무기를 쓰는 등 이란과 밀착해온 러시아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요청하면서 이스라엘을 맹비난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성명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밖에서의 도발적인 군사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다니엘 하가리 IDF 대변인은 “이곳은 영사관도 대사관도 아닌 민간인 건물로 위장한 쿠드스군의 군사건물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공격으로 가자지구 분쟁이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면 대결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알리 바에즈 국제위기그룹 이란 수석분석가는 “이스라엘과 이란은 이른바 ‘그림자 전쟁’을 벌여왔지만 오늘의 공격은 그 이름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림자 전쟁은 이란과 이스라엘이 수십 년간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벌여온 대리전을 말한다. 이란은 자국에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을 피하고 레바논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하마스 등 무장단체들을 지원해 이스라엘을 견제했다. 이스라엘 역시 해외에 있는 이란 핵과학자, 군사 지도자를 암살하는 등 물밑에서 이란의 확장을 억제했다. 그러나 이번 공격은 암암리에 벌이던 신경전과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다. CNN은 “이란 영사관은 이란의 주권 영토이므로 이번 사건은 수년 만의 이란 영토에 대한 가장 노골적인 공격”이라고 지적했다.

궁지 몰린 네타냐후의 초강수

이번 공습이 국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치적 도박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전날 예루살렘에서는 네타냐후 총리의 사퇴와 즉각적인 조기 총선, 인질 협상 합의를 촉구하는 10만 명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다. 네타냐후 총리는 “무엇보다 승리가 임박한 전시 상황에서 선거를 요구하면 이스라엘이 최소 6개월이나 8개월 마비될 것”이라며 정권 교체 요구를 일축했다. 이스라엘의 최우방인 미국에서도 네타냐후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척 슈머 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새로운 선거가 이스라엘의 건전하고 개방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란 지도부 역시 ‘전쟁 또는 리더십 상실’이라는 곤란한 양자택일 상황에 놓였다는 평가다. 이란은 지난 1월 이스라엘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공습해 헤즈볼라 고위급 지휘관을 사살하는 등 친이란 무장단체가 공격당할 때도 직접적인 보복은 자제했다. 그러나 이번에 사망한 자헤디는 2020년 미국 공습으로 사망한 쿠드스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 이후 IRGC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 중 하나다. 보복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지휘관을 잃은 이란 친위대의 분노가 최고지도자 세예드 알리 호세이니 하메네이에게 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모하마드 알리 샤바니 암와즈미디어 이란 분석가는 “이번 사건은 이스라엘이 하메네이를 상자 속에 가두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