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주와 타격 사이 반짝이는 피아노의 향연…트리포노프 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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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예술의전당 공연…피아노 역사 들려주는 이야기꾼의 연주
다닐 트리포노프의 음악은 진화 중이다.
이제는 그를 더 이상 러시아 피아니즘 혹은 격정의 비르투오소라는 말로 한정 지을 수 없다.
지난 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다닐 트리포노프는 마치 낭만시대까지의 피아노의 역사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된듯했다.
이미 전날 그는 베르크, 프로코피예프, 버르토크, 코플런드, 메시앙, 리게티, 슈토크하우젠, 존 애덤스, 코릴리아노에 이르는 20세기 피아노 음악의 향연을 선보였다.
'10년마다의 피아노 음악'이라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뒤이은 공연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에서도 특별한 음악적 경험을 선사했다.
라모의 '새로운 클라브생 모음곡' 가단조에서 트리포노프는 시종일관 음량을 세심하게 조절하고 거친 데가 없도록 소리를 조탁했다.
그렇다고 소위 로코코 풍의 프랑스적 감상에 빠진다거나 바로크적인 화려한 장식을 내세우는 법도 없었다.
구조를 지키면서도 분방한 움직임을 들려주고 절제하면서도 내적인 역동성을 적정수준에서 유지했는데, 이 모든 것이 제어되면서도 자유로운 인상을 주어 놀라웠다.
무엇보다 트리포노프는 라모의 작품에서 마치 류트, 기타 등 발현악기의 탄주(彈奏)를 듣는 것처럼 친밀하고도 자연스러운 분산리듬을 구사했다.
피아노의 전신 악기들을 떠올리게 하는 가슴에서 가까운 연주였다.
정중동의 묘한 생명력, 언제든 평정을 찾을 수 있다는 여유, 순간순간 피어나는 터치마다의 색채감 등 과장 없이도 음악은 생생했다.
이어진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2번도 매우 독특했다.
트리포노프의 해석은 단정하거나 고풍스럽거나 천진한 그간의 모차르트와는 달랐다.
마치 돌파해 들어가듯 빠르게 몰입하지만, 그 뒤에는 호흡을 풀어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는 듯한 연주였다.
2악장 아다지오에서는 내면의 고백과도 같은 깊은 서정성을 들려주었고 1악장과 3악장은 역동적이었는데, 트리포노프는 이 작품에서도 탄주의 효과와 타격의 효과를 적절하게 분배하며 악상을 세심하게 조형해냈다.
그의 모차르트는 갖가지 세밀한 대비효과로 가득 차 있어서 통상적인 단아함 대신 싱싱하고 왁자한 에너지가 두드러지는 재미있는 연주였다.
이러한 인상에는 고음역의 임팩트가 강하고 끊어치는 음에서 더없이 명료한 음색을 내는 파지올리 피아노의 몫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멘델스존의 '엄격 변주곡'은 이날 공연에서 가장 나중에 작곡된 낭만주의 시기 작품이지만, 사실은 바흐와 고전주의 시대의 작법을 의식하고 쓴 학구적인 작품이다.
라모에서 절제된 색채감을, 모차르트에서 싱싱한 생기를 들려주었던 트리포노프는 멘델스존에서 또 다른 음색을 들려주었다.
보다 풍성하고 두터운 울림을 부여하면서도 성부의 선명성을 지켰고, 선율 자체의 굴곡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앞 두 곡과 구분되는 낭만성을 드러냈다.
각 변주 사이의 호흡과 템포가 일정하고 성부 간 균형감이 뛰어나 변주의 기교성보다는 사색과 품위가 더 돋보이는 연주였다.
특히 멘델스존에서는 앞 두 곡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았던 저음역의 성격이 부각되었고 변주에 따라 탄주적인 요소와 타격의 요소가 긴장감 있게 교차하여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아마도 이 공연에 붙은 '함머클라비어'라는 부제는 탄주악기에서 출발해 해머로 타격하는 악기로 진화한 피아노 음악의 면면을 들려주려는 의도였으리라 생각된다.
2부에서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 또한 트리포노프만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 연주였지만, 탄주 대 타격이라는 구도에서는 1부의 해석과 일관성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수직으로 쌓아 올린 화음을 강력하게 타격하면 엄청난 충격이 전달된다.
반대로 선적으로 분산된 화음을 부드럽게 이어 연주하면 마치 하프나 류트 같은 탄주악기의 느낌이 되살아난다.
피아노 연주 효과란 결국 이 두 극단 사이에 스펙트럼으로서 존재한다.
트리포노프는 교향악적인 웅장함을 자랑하는 1악장의 타격 효과뿐 아니라 고음역에서 노래하는 2주제의 탄주 악기적인 친밀함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였고, 더 여유로운 호흡으로 충분히 표현하며 내면성을 강조했다.
전곡이 모두 설득력이 있었지만 3악장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3악장의 첫머리에서 타격 효과는 누그러져 박동이 되고 탄주적 효과 또한 느슨해지면서 잔잔한 율동이 된다.
그리하여 타격과 탄주는 트릴이 딸린 하나의 노래로 만나게 된다.
트리포노프는 이러한 음향적 결합의 과정을 더없이 탁월하게 재현했고, 관객들은 전체 공연의 방점이 이 깊고 내면적인 악장에 찍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트리포노프는 피아노가 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음향 메커니즘을 통해 악상의 가장 깊은 본질을 드러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4악장의 신비롭고도 엄숙한 푸가 부분에서도 트리포노프는 자신만의 확고한 해석을 들려주며 피아노의 역사를 아우르는 듯한 한편의 스토리텔링을 완성했다.
그저 레퍼토리가 넓은 것이 아니었다.
이 다양한 작품들을 하나로 엮어 의미로 바꿔낸 대단한 연주회요 감각과 사변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음악적, 철학적 상찬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트리포노프, 그는 관객들을 더 깊은 듣기로 이끄는 예술적 성숙에 날로 다가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는 그를 더 이상 러시아 피아니즘 혹은 격정의 비르투오소라는 말로 한정 지을 수 없다.
지난 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다닐 트리포노프는 마치 낭만시대까지의 피아노의 역사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된듯했다.
이미 전날 그는 베르크, 프로코피예프, 버르토크, 코플런드, 메시앙, 리게티, 슈토크하우젠, 존 애덤스, 코릴리아노에 이르는 20세기 피아노 음악의 향연을 선보였다.
'10년마다의 피아노 음악'이라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뒤이은 공연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에서도 특별한 음악적 경험을 선사했다.
라모의 '새로운 클라브생 모음곡' 가단조에서 트리포노프는 시종일관 음량을 세심하게 조절하고 거친 데가 없도록 소리를 조탁했다.
그렇다고 소위 로코코 풍의 프랑스적 감상에 빠진다거나 바로크적인 화려한 장식을 내세우는 법도 없었다.
구조를 지키면서도 분방한 움직임을 들려주고 절제하면서도 내적인 역동성을 적정수준에서 유지했는데, 이 모든 것이 제어되면서도 자유로운 인상을 주어 놀라웠다.
무엇보다 트리포노프는 라모의 작품에서 마치 류트, 기타 등 발현악기의 탄주(彈奏)를 듣는 것처럼 친밀하고도 자연스러운 분산리듬을 구사했다.
피아노의 전신 악기들을 떠올리게 하는 가슴에서 가까운 연주였다.
정중동의 묘한 생명력, 언제든 평정을 찾을 수 있다는 여유, 순간순간 피어나는 터치마다의 색채감 등 과장 없이도 음악은 생생했다.
이어진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2번도 매우 독특했다.
트리포노프의 해석은 단정하거나 고풍스럽거나 천진한 그간의 모차르트와는 달랐다.
마치 돌파해 들어가듯 빠르게 몰입하지만, 그 뒤에는 호흡을 풀어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는 듯한 연주였다.
2악장 아다지오에서는 내면의 고백과도 같은 깊은 서정성을 들려주었고 1악장과 3악장은 역동적이었는데, 트리포노프는 이 작품에서도 탄주의 효과와 타격의 효과를 적절하게 분배하며 악상을 세심하게 조형해냈다.
그의 모차르트는 갖가지 세밀한 대비효과로 가득 차 있어서 통상적인 단아함 대신 싱싱하고 왁자한 에너지가 두드러지는 재미있는 연주였다.
이러한 인상에는 고음역의 임팩트가 강하고 끊어치는 음에서 더없이 명료한 음색을 내는 파지올리 피아노의 몫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멘델스존의 '엄격 변주곡'은 이날 공연에서 가장 나중에 작곡된 낭만주의 시기 작품이지만, 사실은 바흐와 고전주의 시대의 작법을 의식하고 쓴 학구적인 작품이다.
라모에서 절제된 색채감을, 모차르트에서 싱싱한 생기를 들려주었던 트리포노프는 멘델스존에서 또 다른 음색을 들려주었다.
보다 풍성하고 두터운 울림을 부여하면서도 성부의 선명성을 지켰고, 선율 자체의 굴곡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앞 두 곡과 구분되는 낭만성을 드러냈다.
각 변주 사이의 호흡과 템포가 일정하고 성부 간 균형감이 뛰어나 변주의 기교성보다는 사색과 품위가 더 돋보이는 연주였다.
특히 멘델스존에서는 앞 두 곡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았던 저음역의 성격이 부각되었고 변주에 따라 탄주적인 요소와 타격의 요소가 긴장감 있게 교차하여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아마도 이 공연에 붙은 '함머클라비어'라는 부제는 탄주악기에서 출발해 해머로 타격하는 악기로 진화한 피아노 음악의 면면을 들려주려는 의도였으리라 생각된다.
2부에서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 또한 트리포노프만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 연주였지만, 탄주 대 타격이라는 구도에서는 1부의 해석과 일관성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수직으로 쌓아 올린 화음을 강력하게 타격하면 엄청난 충격이 전달된다.
반대로 선적으로 분산된 화음을 부드럽게 이어 연주하면 마치 하프나 류트 같은 탄주악기의 느낌이 되살아난다.
피아노 연주 효과란 결국 이 두 극단 사이에 스펙트럼으로서 존재한다.
트리포노프는 교향악적인 웅장함을 자랑하는 1악장의 타격 효과뿐 아니라 고음역에서 노래하는 2주제의 탄주 악기적인 친밀함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였고, 더 여유로운 호흡으로 충분히 표현하며 내면성을 강조했다.
전곡이 모두 설득력이 있었지만 3악장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3악장의 첫머리에서 타격 효과는 누그러져 박동이 되고 탄주적 효과 또한 느슨해지면서 잔잔한 율동이 된다.
그리하여 타격과 탄주는 트릴이 딸린 하나의 노래로 만나게 된다.
트리포노프는 이러한 음향적 결합의 과정을 더없이 탁월하게 재현했고, 관객들은 전체 공연의 방점이 이 깊고 내면적인 악장에 찍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트리포노프는 피아노가 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음향 메커니즘을 통해 악상의 가장 깊은 본질을 드러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4악장의 신비롭고도 엄숙한 푸가 부분에서도 트리포노프는 자신만의 확고한 해석을 들려주며 피아노의 역사를 아우르는 듯한 한편의 스토리텔링을 완성했다.
그저 레퍼토리가 넓은 것이 아니었다.
이 다양한 작품들을 하나로 엮어 의미로 바꿔낸 대단한 연주회요 감각과 사변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음악적, 철학적 상찬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트리포노프, 그는 관객들을 더 깊은 듣기로 이끄는 예술적 성숙에 날로 다가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