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아홉살 옛날집, 부산 오!초량에서 만난 매화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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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한국신사 유람일기
내년이면 지어진 지 백 년, 대한민국의 제1항구로 서슬 퍼런 수탈의 일본 강점기의 산증인으로, 광란의 6·25전쟁 땐 전국 각지의 피난민들을 수용하며 대한민국의 제2도시로 성장해온 부산에서 재개발의 역풍을 이겨내며 고요하게 자리를 지켜낸 오!초량은 부산 동구 초량동에 위치한 아흔아홉살 일본식 옛날 집이다.
부산역에 내려 분주한 인파를 뒤로 물리고 빼곡한 건물들을 지나 숨 막히는 신축 아파트 사이에 다다르면 뜻 밖에도 아담하게 자리한 초록의 공간이 숨어 있다. 입구엔 공들인 것이 분명한 독특한 필체의 예쁜 명패가 보이고 얼기설기 대나무 담 사이로 조금은 낯선 형태의 오래된 저택이 눈에 들어온다. '이 거대한 콘크리트 숲 안쪽에 어찌하여 이런 집이 남아 있을까' 그 사연이 궁금해진다.
금속 틀에 대나무를 얹은 사립문을 당겨 현관에 들어서면 삭막한 새것으로 도시를 채우고 싶어 했을 개발업자에게 이 집이 얼마나 눈엣가시였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정원에 들어서 위를 올려다보면 저 위에 사는 주민들에게 이 푸름이 그들에게 얼마나 귀한 선물이 되었을까로 생각이 바뀐다. 순간 숫자놀음과 개발을 향한 경제 논리로 스러져갔을 인근의 다른 건물과 공간들을 상상하면서 등골이 서늘해졌다가 새마을을 향한 의지로 우리의 좋은 문화유산의 명맥이 끊긴 지나간 사연들마저 떠올려보면 이렇게 남겨진 오!초량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식민지 시절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수탈과 사욕을 채우기 위해 이 땅으로 이사 온 일본인이 고즈넉한 경치의 부산 바닷가 언덕 위에 세운 근사한 목조 주택은 해방과 함께 오랜 세월 한국 사람의 집으로 집주인의 취향과 삶의 방식에 따라 조금씩 변모하면서 긴 세월을 버텼고, 가장 오래 이 집의 주인이었던 가문의 혜안과 배려로 오롯하게 살아남아 이제는 독특한 전시 공간으로, 어두운 역사를 견딘 새 문화 창조의 복합교육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일맥문화재단의 애정 어린 관리와 공을 많이 들인 재단장으로 오래된 집 구석구석에는 예술의 향기가 깃들고 방문하는 이들의 따뜻한 눈길과 차와 꽃향기의 싱그러운 조합 속에 우아한 쉼을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공간, 오!초량이다. 일맥문화재단의 알찬 기획으로 매 계절 특별한 전시와 이벤트로 예약을 통해 일반에 공개되는 오!초량은 부산 원도심의 허파 같은 곳이다. 부산을 잠시 잠깐 다녀가는 여행자들에게 부산은 여행하기 조금은 번거롭고 불편한 도시다. 내륙의 도시들과는 달리 바다를 따라 도시가 길게 뻗어있기 때문이다. 전쟁 통에 집중된 엄청난 인구를 먹여 살리고 그 후에도 대한민국의 산업화의 일등 공신으로 가까운 일본과의 교류의 창이자 전세계를 향하는 국내 최대의 무역항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바다에 면한 산이 많은 이 도시의 기형적 확장은 필연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일본 강점기 수탈을 위한 근대화라는 탈을 쓰고 이뤄진 다양한 개발 사업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자신의 번영을 과시하려고 지은 집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한 가문의 집으로 소유주가 바뀌었다. 그 집에 살던 현 재단 대표에게 남다른 유년 시절을 간직하게 된 문화적 터전이 되었고, 그 집의 시대적 문화적 가치에 집중한 그는 이 집 구석구석을 예술과 공예로 채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일본식 부산 가옥, 일본풍의 한국식 문화가옥으로 키워냈다.
부산의 원도심, 부산역과 부산항 가까운 곳에 자리한 오!초량에서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부산 유람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4월 말까지 수선화가 가득 핀 예쁜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오!초량 내부에서는 바보처럼 매화에 빠졌던 퇴계 이황 선생의 마음을 닮은 전시 <매화바보>가 진행 중이다. 이른 봄 짙은 향기와 함께 차가운 냉기를 물려 보내는 봄의 전령, 매화를 다양한 매체로 풀어낸 아름다운 전시가 이어진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으로만 남았던 궁중채화를 복원하여 잊힐 뻔했던 일종의 조화를 되살려낸 황수로 국가무형문화재 124호 궁중채화장의 작품과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이자 일맥재단의 대표인 최성우를 비롯한 작가들의 매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들은 이미 봄의 한가운데로 접어든 우리에게 짙은 이른 봄의 매화 향기를 다각적으로 전해준다. 부산하게 성장을 이어온 부산에서 만나는 전혀 부산스럽지 않은 고요의 순간, 부산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이 부산스러운 공간과 그곳을 가득 메운 예술작품들은 물론 매화와 그 매화를 바라던 바보 같은 마음까지 담아 올 수 있는 이 특별한 전시를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던 전국의 상춘객들에게 옆구리 꾹 찔러 권해본다. 특별하게 준비된 찻자리 행사를 함께 즐기면 그 감동은 오래오래 잊히지 않으리라. 전시정보를 꼭 확인하고 얼른 기차표를 예약하시길!
/한국신사 이헌 칼럼니스트
▷오!초량 전시 정보 <매화바보> ▶전시명 : 매화바보
▶전시기간 : 24년 3월13일-4월28일 *월/화 휴무
▶관람시간 : 10:30-12:00 (12인) / 14:00-15:30 (12인) *네이버 사전예약 필수
▶전시장소 : (재)일맥문화재단 복합교육문화 공간 오!초량 (등록문화재 제349호)
▶입장료 : 29,000원 (관람, 차 바구니, 다식, 엽서 포함 / 1시간30분 관람)
부산역에 내려 분주한 인파를 뒤로 물리고 빼곡한 건물들을 지나 숨 막히는 신축 아파트 사이에 다다르면 뜻 밖에도 아담하게 자리한 초록의 공간이 숨어 있다. 입구엔 공들인 것이 분명한 독특한 필체의 예쁜 명패가 보이고 얼기설기 대나무 담 사이로 조금은 낯선 형태의 오래된 저택이 눈에 들어온다. '이 거대한 콘크리트 숲 안쪽에 어찌하여 이런 집이 남아 있을까' 그 사연이 궁금해진다.
금속 틀에 대나무를 얹은 사립문을 당겨 현관에 들어서면 삭막한 새것으로 도시를 채우고 싶어 했을 개발업자에게 이 집이 얼마나 눈엣가시였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정원에 들어서 위를 올려다보면 저 위에 사는 주민들에게 이 푸름이 그들에게 얼마나 귀한 선물이 되었을까로 생각이 바뀐다. 순간 숫자놀음과 개발을 향한 경제 논리로 스러져갔을 인근의 다른 건물과 공간들을 상상하면서 등골이 서늘해졌다가 새마을을 향한 의지로 우리의 좋은 문화유산의 명맥이 끊긴 지나간 사연들마저 떠올려보면 이렇게 남겨진 오!초량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식민지 시절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수탈과 사욕을 채우기 위해 이 땅으로 이사 온 일본인이 고즈넉한 경치의 부산 바닷가 언덕 위에 세운 근사한 목조 주택은 해방과 함께 오랜 세월 한국 사람의 집으로 집주인의 취향과 삶의 방식에 따라 조금씩 변모하면서 긴 세월을 버텼고, 가장 오래 이 집의 주인이었던 가문의 혜안과 배려로 오롯하게 살아남아 이제는 독특한 전시 공간으로, 어두운 역사를 견딘 새 문화 창조의 복합교육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일맥문화재단의 애정 어린 관리와 공을 많이 들인 재단장으로 오래된 집 구석구석에는 예술의 향기가 깃들고 방문하는 이들의 따뜻한 눈길과 차와 꽃향기의 싱그러운 조합 속에 우아한 쉼을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공간, 오!초량이다. 일맥문화재단의 알찬 기획으로 매 계절 특별한 전시와 이벤트로 예약을 통해 일반에 공개되는 오!초량은 부산 원도심의 허파 같은 곳이다. 부산을 잠시 잠깐 다녀가는 여행자들에게 부산은 여행하기 조금은 번거롭고 불편한 도시다. 내륙의 도시들과는 달리 바다를 따라 도시가 길게 뻗어있기 때문이다. 전쟁 통에 집중된 엄청난 인구를 먹여 살리고 그 후에도 대한민국의 산업화의 일등 공신으로 가까운 일본과의 교류의 창이자 전세계를 향하는 국내 최대의 무역항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바다에 면한 산이 많은 이 도시의 기형적 확장은 필연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일본 강점기 수탈을 위한 근대화라는 탈을 쓰고 이뤄진 다양한 개발 사업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자신의 번영을 과시하려고 지은 집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한 가문의 집으로 소유주가 바뀌었다. 그 집에 살던 현 재단 대표에게 남다른 유년 시절을 간직하게 된 문화적 터전이 되었고, 그 집의 시대적 문화적 가치에 집중한 그는 이 집 구석구석을 예술과 공예로 채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일본식 부산 가옥, 일본풍의 한국식 문화가옥으로 키워냈다.
부산의 원도심, 부산역과 부산항 가까운 곳에 자리한 오!초량에서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부산 유람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4월 말까지 수선화가 가득 핀 예쁜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오!초량 내부에서는 바보처럼 매화에 빠졌던 퇴계 이황 선생의 마음을 닮은 전시 <매화바보>가 진행 중이다. 이른 봄 짙은 향기와 함께 차가운 냉기를 물려 보내는 봄의 전령, 매화를 다양한 매체로 풀어낸 아름다운 전시가 이어진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으로만 남았던 궁중채화를 복원하여 잊힐 뻔했던 일종의 조화를 되살려낸 황수로 국가무형문화재 124호 궁중채화장의 작품과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이자 일맥재단의 대표인 최성우를 비롯한 작가들의 매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들은 이미 봄의 한가운데로 접어든 우리에게 짙은 이른 봄의 매화 향기를 다각적으로 전해준다. 부산하게 성장을 이어온 부산에서 만나는 전혀 부산스럽지 않은 고요의 순간, 부산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이 부산스러운 공간과 그곳을 가득 메운 예술작품들은 물론 매화와 그 매화를 바라던 바보 같은 마음까지 담아 올 수 있는 이 특별한 전시를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던 전국의 상춘객들에게 옆구리 꾹 찔러 권해본다. 특별하게 준비된 찻자리 행사를 함께 즐기면 그 감동은 오래오래 잊히지 않으리라. 전시정보를 꼭 확인하고 얼른 기차표를 예약하시길!
/한국신사 이헌 칼럼니스트
▷오!초량 전시 정보 <매화바보> ▶전시명 : 매화바보
▶전시기간 : 24년 3월13일-4월28일 *월/화 휴무
▶관람시간 : 10:30-12:00 (12인) / 14:00-15:30 (12인) *네이버 사전예약 필수
▶전시장소 : (재)일맥문화재단 복합교육문화 공간 오!초량 (등록문화재 제349호)
▶입장료 : 29,000원 (관람, 차 바구니, 다식, 엽서 포함 / 1시간30분 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