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의 좌우 대립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어져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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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상우의 아주 사적인 연극일기
극단 돌파구의 ‘고목’ 리뷰
함세덕 작가의 1947년 희곡
극단 돌파구의 ‘고목’ 리뷰
함세덕 작가의 1947년 희곡
오늘은 2024년 4월3일.
제주 4.3 사건의 76주년이고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정확히 1주일 남겨 놓은 날이다. 그저 팩트의 나열일 뿐인 이 한 문장만으로도 누군가는 나의 정치적 성향을 재단하려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저놈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이 지긋지긋한 좌우 편가르기는 해방 직후 본격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목’ 은 극작가 함세덕이 바로 그 시기인 1947년에 발표한 희곡이다. 마을 지주 박거복과 그를 둘러싼 주민들, 청년들 사이의 계급, 이념, 세대 갈등을 다뤘다. 옛날 작품이라 좀 올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도 극장을 찾은 이유는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 극단 돌파구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들이 공연한 ‘키리에’ 를 2023년 최고의 연극으로 꼽는다. 그리고 지난해 ‘베로나의 두 신사’ 에서 ‘수리오’ 역할을 기가 막히게 한 김은희 배우에 대한 팬심 때문이기도. 전인철 연출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 작품을 전혀 낡지 않은 느낌으로 세련되고 역동적으로 재탄생시켰다. ‘키리에’ 때처럼 무대는 심플했고 배우들은 객석과 무대를 오가며 등장했다. 스무 명 남짓한 젊은 배우들이 2층에서 코러스와 군중의 함성 소리 효과 등을 냈다.
시놉시스는 이러하다. 미군정 시대 어느 마을의 지주 박거복은 각하(이승만 대통령임을 짐작할 수 있음)가 마을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3대째 내려온 오백 년 된 은행나무를 베어 바둑판과 화로로 만들어 각하에게 바쳐 말단 관직을 하나 얻을 작정이다. 그러나 몸이 불편한 그 대신 기부 접수를 하러 간 어머니가 각하의 부인이 외국 여자인 것을 보고 어찌 서양 사람을 왕비로 모실 수 있냐며 그냥 돌아와버리고, 관청에서는 기부금을 낸 다른 이에게 보직을 준다. 수해 복구를 위해 은행나무를 기부해 달라던 청년회의 요청도 거절하고 그들을 공산당으로 여겨 멸시했던 박거복은 배신감을 느끼고 공무원들 앞에서 외친다. “공산당 만세!” 박거복 역의 김정호, 어머니 역의 김은희 배우 때문에 많이 웃었다. 동시에 저 당시의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 갑갑하고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해방 직후 이 땅은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서로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며 수많은 폭력을 일삼았고 정치적 암살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여운형이 이끈 중도좌파 성격의 인민위원회, 보수 우익세력이 결집한 한국민주당, 김구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 세력, 박헌영의 조선 공산당 등 수많은 정치적 단체들의 혼란은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으로 더욱 첨예해졌다. 통일된 민주 정부를 수립하고자 한때 좌우합작운동이 일기도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남북에 각각 독립적인 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1950년 결국 같은 민족끼리 서로를 죽이는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그 후로 지금까지 약 80년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좌파냐 우파냐 편을 정하고 정치색을 덧씌웠다. 달라진 것이라곤 지금은 보수당이 빨강, 야당이 파랑으로 서로의 상징 색깔을 바꿔 가진 것뿐. 물론 진보 정당에서 포퓰리즘 정책을 앞세우고, 보수당은 기득권의 이익을 우선하는 등의 한계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좌우가 대립하여 서로를 공격하게 된 것은 그것을 지지 세력화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토대를 굳건하게 하려 한 정치인들 탓이 크다. 박거복의 시대에는 광폭한 빨갱이도, 반공을 내건 폭력적 극우단체도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저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념보다 먹고 사는 현실이다. 해방 이후의 우익도 대개 지주 박거복처럼 단지 애써 모은 자신의 재산을 온당히 지키고 싶은 마음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박거복은 나중에야 실토한다. 난 그저 내 천마지기 땅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라고. 사람들은 사안에 따라 박거복처럼 손바닥 뒤집듯 정치적 입장을 뒤집기도 했을 것이다. 이 작품을 쓴 함세덕 작가는 인천에서 태어났으나 1947년 월북했고 6.25 전쟁 중에 사망했다. 나의 친한 친구는 반대로 북에서 월남하여 인천에 자리를 잡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좌우의 서로를 향한 폭력과 증오는 마치 데칼코마니 같은 것이다. 그 생채기는 똑같이 내 쪽에도 생겨난다. 지금의 시대는 MZ세대가 사회에 진출해있고,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디지털 환경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으며 인구감소와 기후변화가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이제 근 백 년을 끌어온 좌우의 낡은 논쟁 프레임을 던져버릴 때도 되었다. 이 또한 오래된 문장이지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처럼 부디 이번 총선에서는 새로운 시대로 비상하기 위한 화두와 토론의 장이 펼쳐지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오래된 희곡을 세련된 작품으로 만들어낸 극단처럼 모두가 과거의 유산을 유연하게 타고 넘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제주 4.3 사건의 76주년이고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정확히 1주일 남겨 놓은 날이다. 그저 팩트의 나열일 뿐인 이 한 문장만으로도 누군가는 나의 정치적 성향을 재단하려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저놈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이 지긋지긋한 좌우 편가르기는 해방 직후 본격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목’ 은 극작가 함세덕이 바로 그 시기인 1947년에 발표한 희곡이다. 마을 지주 박거복과 그를 둘러싼 주민들, 청년들 사이의 계급, 이념, 세대 갈등을 다뤘다. 옛날 작품이라 좀 올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도 극장을 찾은 이유는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 극단 돌파구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들이 공연한 ‘키리에’ 를 2023년 최고의 연극으로 꼽는다. 그리고 지난해 ‘베로나의 두 신사’ 에서 ‘수리오’ 역할을 기가 막히게 한 김은희 배우에 대한 팬심 때문이기도. 전인철 연출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 작품을 전혀 낡지 않은 느낌으로 세련되고 역동적으로 재탄생시켰다. ‘키리에’ 때처럼 무대는 심플했고 배우들은 객석과 무대를 오가며 등장했다. 스무 명 남짓한 젊은 배우들이 2층에서 코러스와 군중의 함성 소리 효과 등을 냈다.
시놉시스는 이러하다. 미군정 시대 어느 마을의 지주 박거복은 각하(이승만 대통령임을 짐작할 수 있음)가 마을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3대째 내려온 오백 년 된 은행나무를 베어 바둑판과 화로로 만들어 각하에게 바쳐 말단 관직을 하나 얻을 작정이다. 그러나 몸이 불편한 그 대신 기부 접수를 하러 간 어머니가 각하의 부인이 외국 여자인 것을 보고 어찌 서양 사람을 왕비로 모실 수 있냐며 그냥 돌아와버리고, 관청에서는 기부금을 낸 다른 이에게 보직을 준다. 수해 복구를 위해 은행나무를 기부해 달라던 청년회의 요청도 거절하고 그들을 공산당으로 여겨 멸시했던 박거복은 배신감을 느끼고 공무원들 앞에서 외친다. “공산당 만세!” 박거복 역의 김정호, 어머니 역의 김은희 배우 때문에 많이 웃었다. 동시에 저 당시의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 갑갑하고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해방 직후 이 땅은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서로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며 수많은 폭력을 일삼았고 정치적 암살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여운형이 이끈 중도좌파 성격의 인민위원회, 보수 우익세력이 결집한 한국민주당, 김구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 세력, 박헌영의 조선 공산당 등 수많은 정치적 단체들의 혼란은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으로 더욱 첨예해졌다. 통일된 민주 정부를 수립하고자 한때 좌우합작운동이 일기도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남북에 각각 독립적인 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1950년 결국 같은 민족끼리 서로를 죽이는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그 후로 지금까지 약 80년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좌파냐 우파냐 편을 정하고 정치색을 덧씌웠다. 달라진 것이라곤 지금은 보수당이 빨강, 야당이 파랑으로 서로의 상징 색깔을 바꿔 가진 것뿐. 물론 진보 정당에서 포퓰리즘 정책을 앞세우고, 보수당은 기득권의 이익을 우선하는 등의 한계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좌우가 대립하여 서로를 공격하게 된 것은 그것을 지지 세력화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토대를 굳건하게 하려 한 정치인들 탓이 크다. 박거복의 시대에는 광폭한 빨갱이도, 반공을 내건 폭력적 극우단체도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저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념보다 먹고 사는 현실이다. 해방 이후의 우익도 대개 지주 박거복처럼 단지 애써 모은 자신의 재산을 온당히 지키고 싶은 마음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박거복은 나중에야 실토한다. 난 그저 내 천마지기 땅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라고. 사람들은 사안에 따라 박거복처럼 손바닥 뒤집듯 정치적 입장을 뒤집기도 했을 것이다. 이 작품을 쓴 함세덕 작가는 인천에서 태어났으나 1947년 월북했고 6.25 전쟁 중에 사망했다. 나의 친한 친구는 반대로 북에서 월남하여 인천에 자리를 잡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좌우의 서로를 향한 폭력과 증오는 마치 데칼코마니 같은 것이다. 그 생채기는 똑같이 내 쪽에도 생겨난다. 지금의 시대는 MZ세대가 사회에 진출해있고,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디지털 환경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으며 인구감소와 기후변화가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이제 근 백 년을 끌어온 좌우의 낡은 논쟁 프레임을 던져버릴 때도 되었다. 이 또한 오래된 문장이지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처럼 부디 이번 총선에서는 새로운 시대로 비상하기 위한 화두와 토론의 장이 펼쳐지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오래된 희곡을 세련된 작품으로 만들어낸 극단처럼 모두가 과거의 유산을 유연하게 타고 넘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