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위, 판빙빙과 레드카펫을 함께 걸었다 … 홍콩 아트위크 정복기
3월의 홍콩은 그야말로 ‘예술에 미친 도시’였다. 구도심 침사추이와 홍콩의 중심 센트럴을 가르는 넓은 바다 위엔 ‘아트바젤 보트’가 쉴 새 없이 떠다녔다. 도시 어디에서나 눈에 보이는 모든 전광판엔 이번주에 일어날 예술 이벤트들의 예고편이 끊임없이 재생 중이었다. 삭막하고 냉정한 증권가 빌딩 사이를 거닐 때도, 피크 트램을 타고서 홍콩 가장 높은 곳에 오를 때도, 시민들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엔 예술이 존재했다.

지난 3월 20일부터 약 열흘간 이어진 ‘홍콩 아트위크’. 홍콩은 ‘우리가 예술에 얼마나 진심인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도시 전체를 예술 무대로 탈바꿈시켰다. 미술관과 갤러리라는 장소의 제약을 깨부수고 길거리, 학교, 성당 등 삶의 터전 곳곳에 예술을 덧입혔다. 홍콩 대형 쇼핑몰 식당가에 앉아 식사하면서도 호주 작가 대니얼 보이드의 신작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일상에 예술 작품을 심어 놓았다.
양조위, 판빙빙과 레드카펫을 함께 걸었다 … 홍콩 아트위크 정복기
‘예술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듯, 이 기간 홍콩은 세계에서 찾아온 VIP로 가득했다. 흔히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미술계 인사부터 정·재계 인물들, 왕족들, 퍼렐 윌리엄스의 뒤를 이을 패션계 슈퍼스타 …. 미디어에서나 접하던 사람들이 길거리를 활보했다.

이들은 ‘예술’이라는 우산 아래 매일 밤 새로운 파티와 이벤트를 만들고 교류했다. 아트위크가 이어지는 열흘 동안 홍콩은 단 하루도 잠들지 않았다. 초대장 없이는 구경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비밀 파티, ‘내 자리’를 갖기 위해 1000만원 혹은 그 이상을 기부해야 하는 자선 행사, 아시아에 처음으로 깃발을 꽂은 세계에서 가장 큰 패션 이벤트까지…. 홍콩 아트위크에서 발견한 ‘홍콩본색’을 소개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 자체, 더 칠드런 볼

'The Children Ball'을 찾은 양조위와 카리나 라우.
'The Children Ball'을 찾은 양조위와 카리나 라우.
지난달 21일 저녁, 홍콩의 야경이 빛나는 침사추이 빅토리아 독사이드에는 레드카펫이 깔렸다. 량차오웨이(梁朝偉), 판빙빙, 공효진을 비롯한 ‘셀럽’과 세계 정·재계 인사들이 드레스와 슈트를 갖춰 입고 포토월에 섰다.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VIP들을 평일 저녁 홍콩으로 불러 모은 행사는 패션쇼도, 영화제도 아닌 자선 행사다. 자선 행사를 연 주인공은 에이드리언 청 K11그룹 회장과 세계 최대 명품 기업 LVMH그룹의 첫째 며느리 나탈리아 보디아노바다. 두 사람은 어린이의 치료와 성장을 돕는 기부 행사인 ‘더 칠드런 볼(The Children Ball)’을 열었다.
양조위, 판빙빙과 레드카펫을 함께 걸었다 … 홍콩 아트위크 정복기
이 행사에는 450여 명의 인사가 참석했다. 선발 자격도 엄격했다. 참가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는 약 800만원의 자선 식사값을 내고, 아동 정신 치료 프로그램에 추가로 기부해야 했다. 행사는 ‘홍콩 아트 위크’ 시즌에 맞춰 필립스옥션과 함께 경매 형식으로 열렸다. 페이스갤러리부터 명품 브랜드 쇼메와 베르사체, 축구단 파리 생제르맹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자선 경매를 위해 작품과 특별 상품을 내놨다. 경매를 책임지는 경매사는 필립스옥션의 아시아 대표 조너선 크로켓.

페이스갤러리가 내놓은 로버트 나바의 작품은 행사 주최자인 에이드리언 청에게 팔렸다. 이날 그는 작품이 나오자마자 쉬지 않고 패널을 들어올리며 열정을 보였다. 5분여간 이어진 치열한 입찰 경쟁 끝에 나바의 작품은 약 1억8700만원에 청의 소유가 됐다.

파리올림픽이 원하는 모든 경기를 관람하는 2박3일간의 ‘VIP 스포츠 투어’, 파리 생제르맹 선수 라커룸에 들어가 선수들과 함께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특별한 이색 프로그램들도 경매에 올랐다. 파리올림픽 VIP 투어는 4000만원에, 파리 생제르맹 프로그램은 3000만원에 팔렸다. 이날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은 럭셔리 브랜드 베르사체가 내놓은 드레스였다. 어깨에 보석이 박힌 에메랄드빛 드레스는 3억700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이날 주인을 찾지 못한 작품과 프로그램은 단 하나도 없었다. 행사를 위해 홍콩을 찾은 전 세계 ‘슈퍼 리치’들이 흔쾌히 지갑을 연 결과다.

아시아 최초로 홍콩에 상륙한 콤플렉스콘

양조위, 판빙빙과 레드카펫을 함께 걸었다 … 홍콩 아트위크 정복기
아트위크의 주말, 홍콩 국제공항 옆 도심에서 40분 떨어진 아시아월드엑스포에는 때아니게 ‘패셔니스타’들이 몰려들었다. 지난달 22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세계 최대 패션 행사 중 하나인 ‘콤플렉스콘’을 보기 위해서였다. 8개 관을 통째로 빌려 각종 패션, 식음료(F&B) 브랜드와 갤러리들에 자리를 내줬다.

세계 패션 트렌드를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행사인 콤플렉스콘은 밖에서 보기도, 구하기도 어려운 한정판 특별 상품이 쏟아져 나와 패션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행사다. 퍼렐 윌리엄스가 루이비통 크리에이티브가 되기 직전까지 콤플렉스콘의 총감독을 맡았을 정도로 해외 셀럽들에게도 이미 세계 최고의 패션 이벤트로 통한다.

이번 콤플렉스콘이 더 주목을 받은 이유는 아시아에서 열리는 첫 행사이기 때문이다. ‘콧대가 높다’고 잘 알려진 콤플렉스콘은 미국 이외 다른 국가에 행사 기회를 주지 않았다. ‘홍콩에서 콤플렉스콘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온 직후 세계 패션계가 술렁였을 정도. 이날 행사장 입장에만 한 시간 이상이 걸릴 정도로 구름 관객이 모였다.
양조위, 판빙빙과 레드카펫을 함께 걸었다 … 홍콩 아트위크 정복기
행사장 한가운데에는 DJ 부스가 놓였다. 유명 DJ가 잇따라 무대를 장악했고, 관객들은 페스티벌에 온 듯 자유롭게 춤추고 즐겼다.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커스터마이징 부스’를 열고, 고객이 직접 옷이나 신발에 패치를 붙여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상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돈을 넣고 자판기 버튼을 누르면, 음료수가 나오듯 신발 박스가 쏟아져 나왔다.

맥도날드는 이번 행사의 총감독을 맡은 베르디와 손잡고 ‘베르디 X 맥도날드’ 매장을 열었다. 모든 컵과 햄버거 포장지에 베르디의 마스코트와 같은 강아지를 그려넣었다. 다 먹은 컵과 종이를 깨끗이 닦아 집으로 가져가는 관람객도 적지 않았다. 맥도날드는 콤플렉스콘의 아시아 첫 개최를 기념하는 ‘한정 메뉴’를 홍콩 전역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본 행사가 끝난 지난달 23일엔 행사장에서 콘서트가 열렸다. 한국 힙합 가수 사이먼 도미닉, 그레이, 로꼬 등이 현장을 찾아 무대를 선보였다.

초대장 없인 들어올 수 없다, 그들만의 세계

양조위, 판빙빙과 레드카펫을 함께 걸었다 … 홍콩 아트위크 정복기
아트바젤 홍콩 하루 전인 지난달 25일엔 ‘VIP 행사’가 열렸다. 전 세계 유명 갤러리스트와 예술계 인사 그리고 작가들이 K11 뮤제아 6층 전시장을 찾아왔다. 한스 울리히 오브히스트 서펜타인갤러리 디렉터, 카린 힌즈보 테이트모던 관장이 함께 잔을 기울이며 예술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인공지능(AI) 로봇과 인간이 함께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로 행사는 시작됐다. 세계 각지에서 홍콩을 찾아온 VIP들은 퍼포먼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K11 아트 프라이즈’의 초대 수상자 발표였다. 작가들을 지원하고 발굴하기 위해 올해 처음 시작된 K11 아트 프라이즈에는 전 세계에서 5000명 넘는 작가가 지원서를 냈다고. 단 10명에게만 본선행 티켓이 주어졌고, 이 자리에 모인 예술계 세계적 인사들의 심사를 거쳐 단 한 명의 수상자가 결정됐다. 첫 번째 수상의 영광은 홍콩 아티스트 신 리우가 차지했다.
양조위, 판빙빙과 레드카펫을 함께 걸었다 … 홍콩 아트위크 정복기
홍콩 센트럴에서 벗어난 산꼭대기에서도 ‘VIP 전시’가 열렸다. 경매사 크리스티가 진행하는 중국 작가 리우예의 전시다. 작품들은 모두 이미 소장자가 정해진 미판매 작품이다. 크리스티는 이번 홍콩 아트위크 기간 전시를 위해 그림을 사 간 소장자들에게 직접 연락해 작품을 빌려왔다. 이 전시는 갤러리도, 미술관도 아닌 ‘일반 가정집’에서 열렸다.

크리스티는 홍콩의 한 부동산과 협업해 미분양 상태인 펜트하우스 하나를 통째로 갤러리로 꾸몄다. 집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크리스티가 보낸 초대장이 필요했다. 현장에 작품을 보러 온 VIP들과 집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임차인들이 함께 북적거린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홍콩=최지희 기자/사진=최윤정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