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올 들어 경제 외교의 영토를 급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는 막대한 자본을 뿌리며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적대국에는 유화책을 통해 화해의 손길을 뻗는 모양새다. 서방이 전방위로 압박하자 경제 활로를 뚫으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차이나머니 위력에 달라진 밀레이

차이나머니 달콤함에…'中단교' 외치던 밀레이도 변심
4일(현지시간)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아르헨티나의 교역 관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며 “아르헨티나는 자유주의 국가인 만큼 국민이 중국과 사업을 하고 싶다면 마음껏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맺은 180억달러 규모 통화스와프 계약도 바꿀 의향이 없다”고 덧붙였다.

대선 전과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예비선거에서 1위를 한 뒤 선거 직전까지 반중 발언을 이어갔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면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공산국인 중국과 단교하겠다고 했다. 중국은 이에 반발해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작년 12월 65억달러 규모 통화스와프 협정을 중단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친서를 보내 통화스와프 협정 갱신을 요청했다. 중국도 취임식에 시 주석의 축전을 보내며 화해 무드를 조성했다. 우웨이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은 취임식에 특사로 참석해 양국 경제 교류를 강화하길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밀레이가 입장을 바꾼 이유는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오는 9월까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빌린 구제금융 자금 440억달러를 갚아야 하는 처지다. 지난해부터 아르헨티나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중국 위안화로 IMF 차관을 상환해왔다. 아르헨티나 컨설팅업체 에코고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순외환보유액(외환보유액에서 해외 부채를 차감한 금액)은 지난달 기준으로 -20억달러를 기록했다.

아르헨티나에 앞서 중남미 주요 국가도 중국 자본력에 흔들렸다. 친미 성향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은 2018년 대만을 방문하며 중국과 반목했다. 하지만 다음 해 화웨이가 브라질 5세대(5G) 이동통신 인프라에 8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하자 입장을 바꿨다. 온두라스는 중국의 인프라 투자를 대가로 지난해 대만과 국교를 단절했다. 칠레 싱크탱크 중국-중남미연구소(ICLAC)의 프란시스코 우르디네스 이사는 “중국은 항상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악화하려는 이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설명했다.

○적대국엔 유화책 내미는 中

중국 정부는 호주와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지난달 중국 정부는 호주산 와인에 물리던 반덤핑 관세를 전면 철폐했다. 이전까지 중국은 호주산 와인에 최대 218%의 관세를 부과했다. 2020년 호주 정부가 코로나19 발병 원인 규명을 중국에 촉구하면서 얼어붙은 양국 관계가 개선됐다는 평가다. 2022년 친중 성향인 노동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관계 개선 속도가 빨라졌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호주산 석탄과 보리에 대한 보복관세를 3년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유럽연합(EU)과의 관계 회복에도 주력하고 있다. 올해 1월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유럽 주요 6개국에 대해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 지난달에는 리후이 유라시아 특사를 유럽에 파견해 벨기에 프랑스 독일 등을 방문하며 ‘셔틀 외교’를 펼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에 화답하듯 다음달 시 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예고했다.

중국 정부는 경쟁국에도 유화책을 펼치고 있다. 외교 전문매체 디플로맷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20년 인도와 접경지역 카슈미르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진 뒤 19차례에 달하는 고위급 군사회담을 했다. 2022년 12월 양국은 분쟁 지역에서 철군하기로 합의했다. 디플로맷은 “양국의 적대관계가 무너지면서 지난해부터 베이징(중국)과 델리(인도)의 해빙 무드가 시작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 기업에 투자를 촉구하며 러브콜을 보냈다. 지난달 28일 시 주석은 보험사 처브, 블랙스톤, 퀄컴, 페덱스 등 미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중국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중국이 경제 외교를 강화하는 것은 미국 등 서방의 제재와 공동부유(다 함께 잘살자) 등 반시장적인 정책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지난해 330억달러를 기록하며 32년 만의 최저치를 찍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