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기업들의 투자 규모가 확 늘었다. 석 달여 동안 기업들이 내놓은 투자 규모가 50조원을 훌쩍 넘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두 배로 급증한 규모다. 주로 고대역폭메모리(HBM)·2차전지·친환경 등 미래 성장동력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밸류업의 일환으로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장기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투자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로 밸류업 완성"…올들어 기업 시설투자 두배 늘었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전자 대한항공 현대제철 롯데쇼핑을 비롯한 37개사가 53조3746억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이 기간 시설투자, 유형자산 취득을 공시했거나 사업보고서를 통해 올해 설비투자 계획을 밝힌 기업을 추린 결과다. 이 같은 투자액은 작년 같은 기간 28개사가 밝힌 투자계획(26조4980억원)에 비해 101.4%(26조8766억원) 불어난 규모다.

기업별로 보면 대한항공이 지난달 에어버스의 대형 여객기 A350 33대를 18조4660억원에 사들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투자를 밝힌 기업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컸다. 현대차(12조5159억원), SK하이닉스(5조2000억원), LG전자(4조3845억원), 기아(3조3228억원), 현대모비스(3조1831억원), 현대제철(2조54억원), 에코프로머티리얼즈(9573억원), 엔씨소프트(5800억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 기업의 투자는 친환경차, 반도체, 2차전지 소재와 등 국내 경제를 견인할 신성장 산업에 집중됐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에만 함께 15조8387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지난해에 비해 10.7%(1조5322억원) 늘어난 수준이다.

SK하이닉스도 지난주 미국 인디애나주에 5조2000억원(약 38억7000만달러)을 투자해 HBM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HBM은 챗GPT 등을 구동하는 인공지능(AI) 가속기의 핵심 부품이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에코앤드림(1800억원), 대주전자재료(191억원) 등은 2차전지 소재 설비에 투자한다고 공시했다. LG이노텍은 스마트폰에 장착되는 광학솔루션(카메라 모듈) 생산공장 구축 등에 383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을 둘러싼 투자 환경은 팍팍한 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615개(금융업 등 제외)의 작년 영업이익은 123조8332억원으로 전년 대비 24.6% 줄었다. 현금창출력이 약화됐지만 투자를 늘린 것이다.

기업들이 중장기 기업가치 향상을 위해 투자를 늘렸다는 분석도 있다. 배당, 주식 소각을 비롯한 단기적 주주친화책은 물론 중장기 기업가치 향상에도 신경 쓰고 있다. 기아는 올해 배당금 총액을 2조1942억원(주당 5600원)으로 한 해 전보다 60.0% 늘리는 등 주주환원 확대에 나섰다. 여기에 올해 투자 규모도 3조3228억원으로 작년에 비해 48.5% 늘리기로 했다. 현대모비스도 올해 배당금(4500원)을 12.5% 늘렸다. 주식 66만 주를 소각한다고도 밝혔다. 지난해에 비해 3만 주 늘어난 규모다. 올해 투자 규모는 3조1831억원으로 한 해 전보다 69.2% 늘렸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