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TV 안보는데 중기 홈쇼핑 또 늘리겠다는 정부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지난달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데이터홈쇼핑(T커머스) 채널 신설을 제안한 이후 홈쇼핑업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국민통합위가 정책을 제안한 만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검토를 거쳐 추진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홈쇼핑업계에선 채널 신설이 현실화하면 그 후폭풍을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국민통합위가 채널 신설을 제안하며 내세운 논리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판로 확대다. 대다수 채널 사업자가 대기업과 통신사인 만큼 중소상공인에게 최적화된 채널이 하나쯤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TV홈쇼핑 7개사의 중소기업 제품 의무 편성 비중은 55~70%다. 10개의 데이터홈쇼핑 채널은 이 비중이 70%에 달한다. 홈앤쇼핑과 공영홈쇼핑은 중소기업 제품만으로 프로그램을 편성해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홈쇼핑업계가 우려하는 건 공멸이다. TV 시청 인구가 매년 줄고 있는 상황에서 되레 채널을 늘리면 경쟁만 과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주 5일 이상 TV 수상기를 이용한 비율은 71.4%로 전년 대비 4.1%포인트 줄었다. 20대(29.8%)는 30%가 채 안 된다. TV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홈쇼핑은 e커머스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GS, CJ, 현대, 롯데 등 홈쇼핑 4사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0.4% 급감했다. 데이터홈쇼핑 업체도 모두 역성장했다.

가뜩이나 높은 송출 수수료가 더 오를 것이라는 공포도 깔려 있다. 송출 수수료는 홈쇼핑 업체가 유료 방송사업자(SO)에 내는 일종의 자릿세다. 사업자가 늘어나면 앞번호를 따내기 위한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져 송출 수수료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 2022년 기준 홈쇼핑업계의 송출 수수료 총액은 1조9000억원에 달했고, 지난해에는 2조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 홈쇼핑 업체는 지난해 막대한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송출 중단’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송출 수수료 협상 과정에서 을(乙)인 홈쇼핑 업체가 반기를 든 초유의 사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송출 수수료는 민간 사업자 간의 문제라며 갈등을 외면해온 정부가 이번엔 국민통합위를 통해 채널 신설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임기 중 중소기업을 위한 홈쇼핑 채널을 하나씩 신설했다. 문제는 단순히 채널 하나 늘린다고 중소기업 판로가 더 확대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명분만 앞세우다가 기존 홈쇼핑업계가 공멸하면 제품을 판매할 홈쇼핑 시장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