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남중국해의 난파선 해상기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영토분쟁 지역 중 하나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 일대다. 18세기 말 이곳을 처음 발견한 선장의 이름을 딴 군도로 암초와 산호초로 이뤄져 있다. 가장 큰 섬인 서울 명동 절반 크기의 타이핑다오는 대만이, 두 번째로 큰 파가사섬은 필리핀이, 일대 산호섬 몇 곳은 베트남이 각각 실효 지배 중이다.

중국은 1960~1970년대 문화혁명과 마오쩌둥 사망 등 내부 혼란을 겪느라 영토 분쟁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1994년 필리핀 경비정이 우기인 몬순 시기에 근무를 일시적으로 중단한 틈을 타 암초인 미스치프 리프를 무력 점거했다. 중국은 이후 2015년 대규모 준설·매립 공사를 통해 이곳을 활주로 등을 갖춘 불침항모 인공섬으로 조성했다.

미스치프 리프는 필리핀에서 250㎞ 떨어진 곳으로, 필리핀의 200해리(370.4㎞)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 있다. 중국의 무력 도발에 발끈한 필리핀은 1997년 기발한 방법으로 맞섰다. 미스치프 리프에서 불과 37㎞ 떨어진 모래톱 세컨드 토머스 숄에 과거 미국에서 이양받은 전차상륙함 시에라 마드레함을 고의로 좌초시킨 뒤 시멘트와 철강, 케이블 등을 이용해 모래톱에 고착했다. 그러곤 해병대원 10여 명을 상주시켰다. 폐군함으로 대중국 해상 전진기지를 구축한 것이다.

시에라 마드레함 인근에선 한 달에 한 번꼴로 필리핀과 중국 간 분쟁이 발생한다. 필리핀 보급선이 접근할 때마다 중국 측이 레이저로 방해하거나, 경로를 막아서는 바람에 선박 간 충돌 사태도 있었다. 지난달에는 중국의 물대포 공격으로 필리핀 선원 4명이 부상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 기간 중인 오는 11일 미국·일본·필리핀 정상이 남중국해의 대중 공조에 관해 회담할 예정이다.

중국은 U자 형태의 해상 경계선인 ‘남해구단선’을 그어 놓고 336만7000㎢에 달하는 남중국해의 90%가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구단선의 법적 근거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막무가내다. 주변국을 대등한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전랑외교는 곳곳에서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