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의 뷰티 브랜드 ‘숨37°’의 모델인 배우 수지. 사진=LG생활건강
LG생활건강의 뷰티 브랜드 ‘숨37°’의 모델인 배우 수지. 사진=LG생활건강
"주가가 많이 내렸다고 저가 메리트만 생각해서 덥석 사기에는 전망이 안 좋아요. 아모레퍼시픽이면 몰라도 LG생활건강은 사지 말길 권합니다." (모 애널리스트)

한때 178만원을 넘던 주가가 꾸준히 밀리기만 해 약 3년 만에 30만원대 신세가 된 종목이 있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화장품·생활용품 제조사 LG생활건강이다. 이 기간 약 80%나 폭락했지만 증권가는 아직도 바닥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고가 브랜드인 '후' 중심으로만 중국 판매 전략만 고수해 온 게 현지 수요가 불확실해진 지금으로선 오히려 독이 됐다는 평가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일 LG생활건강은 2.56% 밀린 36만1000원에 장을 끝냈다. 최근 한 달간 반등세를 타면서 이달 1일 40만원선을 찍기도 했지만 이내 상승분을 반납했다.

주가는 2021년 7월 1일 장중에 역대 최고가인 178만4000원을 찍었지만 이후 수시로 떨어지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올 2월 중에는 장중 30만원까지 밀려나며 고점 대비 83.18%의 낙폭을 기록했다. '주가 200만원'을 외치던 주주들의 환호성은 3년도 채 안 된 지금 곡소리로 바뀌어 있다. 시가총액은 2021년의 고점 기준 27조8629억원에서 전일 종가 기준 5조6382억원으로 5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고점과 현재 주가와의 괴리가 큰 만큼 '물려있는' 주주들이 많은 상태다. NH투자증권 디지털 서비스인 나무증권에 따르면 이 증권사를 통해 LG생활건강에 투자 중인 약 2만명(총 보유수량 33만5216주)의 평균 단가는 약 82만원으로 손실투자자 비율이 무려 94%에 이른다. 종목토론방에서 한 주주는 "물타기만 몇 개월째인지…이러다 대주주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적었다. 다른 한 주주는 "스트레스 받다가 결국 손절했다"며 "LG생활건강 때문에 내 생활과 건강은 무너졌다"고 밝혔다.
LG생활건강의 후, 숨, 오휘 등의 화장품. 사진=연합뉴스
LG생활건강의 후, 숨, 오휘 등의 화장품.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개미들의 한숨이 짙지만 수급을 보면 외국인의 공백을 개인이 채워가는 모습이다. 주가가 '바닥에 근접했다'는 인식이 번지면서 저가 매수세가 집중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본전이라도 찾겠다는 심리에 많은 투자자들이 '물타기'에 나선 것이다.

최근 1년 동안 개인과 기관은 각각 LG생활건강 주식을 4098억원, 1113억원어치 사들였다. 반면 외국인은 5476억원어치 팔아치웠다. 기간을 최근 6개월로 좁혀봐도 매매 양상은 변함없다. 개인과 기관이 각각 1236억원, 1487억원어치 순매수하는 동안 외국인 홀로 2909억원어치 순매도했다.

LG생활건강은 대부분 사업부의 실적이 쪼그라든 상황이다. 지난해 4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1조5672억원과 547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3.3%, 57.6% 감소한 수치다. 중국 수요 약세와 면세 채널 부진으로 화장품 부문 실적이 안 좋게 나온 영향이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1분기에는 매출액 1조7055억원, 영업이익 1295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직전 분기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추정되는 셈이다.

하지만 증권가는 LG생활건강의 바닥은 아직 오지 않았다면서 개인들의 '줍줍'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오랜 시간 굳어진 '화장품주 왕좌' 자리를 아모레퍼시픽에 완전히 내줄 때가 됐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아모레퍼시픽(090430)과 LG생활건강(051900) 최근 1년 주가 흐름 비교. 차트=야후파이낸스
아모레퍼시픽(090430)과 LG생활건강(051900) 최근 1년 주가 흐름 비교. 차트=야후파이낸스
중국에 대한 의존을 벗어날 경우를 가정한 대비책들을 만들어 뒀는가가 두 회사의 희비를 갈랐다는 분석에서다. 이미 시가총액으로는 전일 종가 기준 아모레퍼시픽(7조8556억원)이 LG생활건강 대비 2조원 넘게 앞서있다.

하누리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최악은 지났지만 최선은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불확실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올해 추정 지배순이익은 3054억원으로 8년 만에 아모레퍼시픽(3447억원)에 왕좌를 내줄 것으로 보이며, 내년에는 두 회사의 격차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LG생활건강은 '후' 브랜드에만 집중했던 반면 아모레퍼시픽은 미국 등 비중국 국가로의 지역 확장, 제품 카테고리 확장 등을 시도해 왔다"며 "중국 경기가 워낙 안 좋은 데다 중국 내에서도 자국 제품 사용도가 높아져서 후와 설화수를 예전만큼 쓰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한 달간 주가가 소폭 반등했다가 다시 뱉어낸 것 또한 추세적 반등은 어렵다는 방증"이라며 "미국에서 비중 확대를 이어가고 있는 아모레퍼시픽는 매수를 할 만한 시기라고 보지만 LG생활건강은 아직 살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