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국민연금 개혁 방향을 논의하는 시민대표단 500명에게 제공하는 학습자료에 재정수지 전망 지표를 대거 제외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민대표단이 부실 자료를 토대로 연금개혁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연금 개혁안에 '재정악화 지표' 뺀 공론화委
11일 복수의 공론화위 및 산하 기구 관계자에 따르면 시민대표단이 13일부터 시작하는 연금개혁 토론 때 기초로 삼는 자료집에는 공론화위가 제시한 두 가지 연금개혁안의 적자 전환 시점, 기금 고갈 시점, 부과 방식 비용률(고갈 후 그해 보험료 수입으로 연금 지급액을 충당할 때 필요한 보험료율), 국내총생산(GDP) 대비 급여 지출 규모 등이 담겼다. 두 개혁안은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0%에서 50%로 인상하는 ‘1안’과 보험료율을 12%로 높이고 소득대체율은 40%로 유지하는 ‘2안’이다.

하지만 공론화위는 개혁안별 미래 재정 상황과 재정 안정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재정수지 전망 지표들을 자료집에서 대거 뺐다. 향후 70년간 연금의 구체적 재정 상황을 보여주는 ‘연도별 수지차’, 재정 균형을 위해 필요한 보험료율을 제시하는 ‘수지균형보험료율’, 기금 고갈 후 출생 연도에 따라 달라지는 세대별 보험료 차이 등이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가 이들 자료를 공론화위에 제출했음에도 공론화위원들은 이런 자료가 없어도 시민대표단이 판단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자료집에서 뺀 것으로 알려졌다.

연금 고갈시기는 '1년 차이'
미래세대 떠넘기는 빚은 '2700조원 차이'

공론화위원회는 연도별 수지차 등 재정수지 전망 지표 없이 기금 고갈 시점, 부과 방식 비용률 정도만 자료집에 넣어도 두 연금개혁안의 차이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자료집에 포함된 숫자만으로는 ‘더 내고 더 받는’ 1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과 ‘더 내고 똑같이 받는’ 2안(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40%)의 실제 재정 효과를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1안의 재정 안정 효과가 어느 정도 있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자료집에 포함된 기금 고갈 시점을 기준으로 1안은 2061년, 2안은 2062년으로 1년 차이가 날 뿐이다. 받는 돈을 더 늘리는데도 기금 고갈 시점에 별 차이가 없어 1안에 대한 시민대표단의 선호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료집에서 빠진 재정수지를 기준으로 보면 1안과 2안의 차이가 상당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안은 향후 70년간 누적적자를 1970조원 줄이는 반면 1안은 오히려 702조원 늘린다. 기금 고갈 시기는 1안과 2안이 불과 1년 차이지만 누적적자는 2700조원가량 차이 나는 것이다. 시민대표단 자료집이 ‘반쪽짜리 교과서’가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공론화위 산하조직의 한 관계자는 “기금소진 시점만으로 재정 안정성을 판단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청한 공론화위 관계자도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하는 빚의 관점에서 1안과 2안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며 “누적적자와 같은 수치를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착시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구조적으로 소득대체율 인상 효과가 뒤늦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보험료율을 높이면 수입이 즉각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소득대체율 인상은 가입기간이 끝난 뒤 연금을 탈 때부터 시차를 두고 재정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득대체율을 높인 1안은 시간이 갈수록 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부 공론화위 산하조직 관계자는 1안을 채택할 경우 향후 70년 뒤 적립배율 1배(가입자에게 보험료를 걷지 않아도 1년치 연금을 지급할 수 있을 만큼 기금이 확보된 상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율도 자료집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금 고갈 후 점차 늘어나는 보험료 부담을 출생연도별로 나타낸 지표도 복지부가 시나리오별로 제시했지만 최종 자료집에서 제외됐다.

500명으로 구성된 시민대표단은 연금제도와 관련한 학습을 마친 뒤 13일부터 21일까지 네 차례 생방송 토론회를 열고 연금개혁과 관련한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이 논의를 토대로 국회가 단일안을 만들면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다음달 29일까지 통과시킨다는 목표다. 하지만 야당이 총선에서 압승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표 연금개혁이 힘을 잃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허세민/황정환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