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하나로 '아메리칸 드림'…뉴욕 메트오페라 달군 테너 백석종

[음표 위의 사람들] 테너 백석종 인터뷰

'목소리 하나로 기적을 만든 사람.'

테너 백석종(38)을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4년 전 바리톤에서 테너로 전향한 그는 음악가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 이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MET)에 잇따라 주연으로 발탁되며 화제를 모았다.

백석종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유명 무대에 서는 성악가여서가 아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재능이 반짝이는 영재도 아니었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않았다. 30대의 늦은 나이에 음역대가 다른 바리톤에서 테너로 길을 바꾸기까지 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는 오직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실력을 쌓았고, 기회를 잡아 지금의 자리에 왔다. '개천에서 난 용'이 사라진 시대, 그의 스토리가 한층 특별한 이유다. 유럽 순회 연주 준비로 분주한 백석종을 이메일로 만났다. 그의 글에는 '믿음', '꿈' 같은 단어가 빈번히 등장했다.

백석종 ©Karen Almond

- 올해 초 뉴욕 MET에 테너로 데뷔했습니다. 현지 반응은 매우 뜨거웠고요. (MET로부터) 캐스팅을 제안받았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했죠.(웃음) 2022년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대타로 '삼손과 데릴라' 무대에 서게 된 것도 운이 좋았는데, 그때 MET 캐스팅 디렉터가 영국 출장을 와서 제 무대를 보게 됐어요. 정말 운이 좋았죠. 특히, 투란도트 칼라프 역은 제가 늘 꿈꿔오던 역할이에요. 세계 최고의 극장에서 제가 꿈꾸던 역할을 할 수 있다니…. 다른 말이 필요있나요, 행복했죠."

그가 테너로 전향하게 된 건 학창시절, 바리톤이 낼 수 없는 고음이 나기 시작하면서였다. 홀로 성부 전향을 고민했지만 모두가 '너는 바리톤'이라고 했다. 그러던 중 선배 테너 이용훈의 조언이 그의 고민을 확신으로 바꿨고, 그는 테너의 길을 걷기 위해 다니던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극장을 관뒀다.

바리톤으로 쌓아온 안정된 커리어를 이어가는 대신, 모험을 택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런 도전을 할 수 있었는지. 그는 "그저 내 안에 믿음을 따라갔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는 홀로 독학하며 본인이 생각한 테너의 소리를 찾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팬데믹으로 소리를 다질 시간이 있었어요. 센프란시스코 한인 교회 예배당에서 매일 연습하며 소리에 집중했어요. 1년 6개월 정도 하니까 원하는 테너의 소리를 찾을 수 있었고 고음을 내는 부담도 없어졌습니다. 이후 콩루르에서 잇따라 좋은 생각을 내면서 데뷔의 기회도 찾아왔습니다. "

백석종 ©Karen Almond

'아메리칸 드림'은 그와 어울리는 단어다. 한국에서 전주예고와 추계예술대를 다니다 자퇴한 그는 한국 클래식계에서 주류가 될 수 있는 스펙과는 거리가 있었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더 많은 배움과 기회를 얻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중간에 한국에 돌아와야 했지만, 그럼에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맨하탄이라는 도시에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 때문이었다.

- 뉴욕에 10년 넘게 살았습니다. 뉴욕이란 당신에게 어떤 도시인가요?

"2010년부터 맨하탄 음대에서 학·석사를 했어요. 뉴욕은 꿈과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분야에서 최고들이 뉴욕에 모이지요. 기회를 찾으면 그만큼 구할 수 있는 곳이라고 봅니다. 음악가들의 도시이기도 하죠. 정말 많은 음악가들이 삽니다. 이런 환경과 기회에 감사하고 좋은 결과를 낸다면, 뉴욕에 있는 한인 음악가들, 동양인 음악가들에 대한 시선도 바뀌고 기회도 늘어날거라고 생각해요."

- 뉴욕에서 투란도트로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습니다. 최근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지금은 제가 하는 투란도트 '칼라프' 역을 마스터 하는 게 목표입니다. 제 트레이드 마트가 될 때까지 더 갈고 닦으려고 해요. 다음으로는 베르디의 작품들과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사실주의 오페라)에 도전하고 싶어요. "

그는 후배 음악가들에게 "길게 봐야한다"고 줄곧 이야기 해 왔다. 굳은 믿음을 바탕으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신념을 그는 강조했다.

"인생은 수많은 정거장의 연속입니다. 매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왈가왈부하지 말고,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일은 오늘의 연속입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따라 내일이 달려있죠. 요즘에 보면 마음과 생각을 뺏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거짓되고 불필요한 정보로부터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 다음 찾고자 하는것에 전념하는 거죠.

- 젊은 음악가들이 묵묵히 음악의 걸어가려고 해도, 세상에는 음악 특히 오페라 외에 즐길 것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페라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유명한 특정 가수만 쓰는게 아니라 더 여러 가수들에게 기회가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가수들이 크고 작은 프로젝트로 노래를 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연스럽게 대중과 더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경험도 중요합니다. 오페라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에, 극장에 오셔서 경험을 해보셔야 합니다. 직접 극장에서 라이브 소리와 무대 경험을 하면 오페라가 다르게 보일 겁니다."

- 한국 무대에서는 언제쯤 만나볼 수 있나요?

"향후 3~4년 계획이 가득 차 있습니다. 아직 한국 무대에 설 계획은 없지만 (한국 데뷔를) 학수고대 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훨씬 더 성장하겠습니다. "

최다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