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뜬 민주당 > 이재명 민주당 대표(앞줄 왼쪽 세 번째)와 김부겸(두 번째)·이해찬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네 번째)이 10일 개표 상황실에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본 뒤 손을 잡고 있다.  /최혁 기자
< 들뜬 민주당 > 이재명 민주당 대표(앞줄 왼쪽 세 번째)와 김부겸(두 번째)·이해찬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네 번째)이 10일 개표 상황실에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본 뒤 손을 잡고 있다. /최혁 기자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 마련된 국민의힘 개표상황실의 TV 볼륨은 10일 오후 6시 방송 3사(KBS·MBC·SBS) 출구조사 결과 보도가 시작된 지 10분 만에 꺼졌다. 22대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했다는 보도가 한창 나오던 시점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끝까지 개표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짤막한 소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2년 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여당은 4년 전에 이어 다시 한번 보수정당 사상 최악의 총선 참패를 당했다.

○용산발 악재 뒤 소통 실패

여당 안팎에서 분석하는 이번 총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소통 실패다. 특히 ‘용산발 악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실과 여당이 이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들어 본격적인 총선 국면이 시작된 이후 여당에 타격을 준 사건은 대부분 ‘용산’에서 나왔다. 연초 대통령실이 한동훈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하면서 불거진 이른바 ‘윤한 갈등’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 등을 통해 입장을 밝히라는 정치권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KBS와의 대담으로 대신했다. 이후에도 황상무 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부적절한 발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등 용산발 악재가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한 대통령실 참모는 “대선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윤 대통령에게 ‘불통’ ‘고집’ 등의 이미지를 씌웠는데, 취임 이후 행보에서도 이런 이미지를 해소하지 못했다”며 “정부가 이룬 다양한 성과를 홍보했지만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도 총선 패배의 이유로 “사실상 소통 자체를 금기시하는 여당 내 분위기 때문에 당내에서 여러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중도층도 보수층도 잃어

< 침통한 국민의힘 >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앞줄 왼쪽 세 번째)과 윤재옥 공동선대위원장(두 번째), 유일호 민생경제특위 위원장(네 번째)이 10일 개표 상황실에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강은구 기자
< 침통한 국민의힘 >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앞줄 왼쪽 세 번째)과 윤재옥 공동선대위원장(두 번째), 유일호 민생경제특위 위원장(네 번째)이 10일 개표 상황실에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강은구 기자
본격 선거운동 기간에 여당으로서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을 앞세워 야당을 공격한 것도 패인으로 분석됐다. 과반 정당이 되면 앞으로 어떤 정책을 펼칠지 제대로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한 위원장도 선거운동 기간 내내 야당 지도부와 후보들을 비판하는 데 연설 대부분을 할애했다.

막판에는 민주당의 양문석 후보(경기 안산갑)와 김준혁 후보(경기 수원정) 등의 막말 논란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지만 판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당 관계자는 “국민들에게는 너무 작은 부분으로 비치는 문제”라며 “한 위원장이 피하겠다고 그렇게 강조한 ‘여의도 사투리’의 전형적인 예시”라고 말했다.

중도층은 물론 전통적 보수 지지자의 마음을 얻는 데도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와 인천 등에서 2000년 이후 총선 최고 투표율을 보인 가운데 대구·경북(TK) 등 텃밭에서는 21대 총선보다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채 상병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보수표가 다 날아갔다”며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하고, 의료개혁 과정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인 것도 보수표 이탈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공천 실패까지 겹치며 패배

민주당에 비해 조용히 끝난 총선 공천도 결국 실패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역 의원을 대거 공천하면서 새로운 인물을 등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TK에서 공천된 현역 의원들은 선거전이 시작되자마자 지역구로 내려가며 야당과의 싸움을 회피했고, 서울 강남권에 새로 등용된 인사들은 유권자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정치권 인사는 “결국 총선은 개별 선거구에서의 인물 싸움”이라며 “좋은 후보를 내놓은 지역에서도 후보의 경쟁력을 제대로 내세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악재가 중첩되는 가운데 지난해 12월 정치권에 등장할 때만 해도 눈길을 끌었던 ‘한동훈 신드롬’도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한 위원장 스스로도 지원 유세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의 문제와 자신의 책임을 분리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여당이라면 아젠다를 제시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데 야당 심판밖에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경목/도병욱/박주연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