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억 남기고 사망한 남편, 유언장에는…[김상훈의 상속비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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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유언장 작성 이후, 재혼했거나 자녀 낳아도 유언장 무효 안돼
유증 못받는 대신 유류분은 받을 수 있어
"새로운 배우자나 자녀를 위해 유언장 변경도 생각해봐야"
유언장 작성 이후, 재혼했거나 자녀 낳아도 유언장 무효 안돼
유증 못받는 대신 유류분은 받을 수 있어
"새로운 배우자나 자녀를 위해 유언장 변경도 생각해봐야"

그런데 이 후 A씨는 16살 연하 30대 X녀를 만나게 됐습니다. 2년 정도 교제 후 A씨가 53세였던 2017년에 X녀와 재혼하게 되었습니다. A씨는 X와의 사이에서 딸 Y를 낳았습니다. A씨는 딸이 네살이 되던 해인 2022년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습니다. A씨는 사망 당시 200억원 상당의 부동산과 70억원 상당의 금융자산을 남겼습니다. X와 Y는 A의 유언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요?
![270억 남기고 사망한 남편, 유언장에는…[김상훈의 상속비밀노트]](https://img.hankyung.com/photo/202404/01.36390532.1.jpg)
한국에서 유언이 무효가 되기 위해서는 유언장이 형식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제1060조), 유언자가 유언당시 유언능력이 없어야 합니다(제1063조). 아니면 착오, 사기, 강박에 의해 유언을 한 경우에 그 유언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유언자가 사망한 이후 유언자의 취소권을 상속인이 상속받아서 그 상속인이 취소를 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유언장 작성 이후에 태어난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누락된 상속인제도(Omitted Heirs)를 두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유언장이 작성된 이후에 태어난 자녀에 대해서는 유언이 없는 것으로 취급해 무유언상속법(Intestate Succession)에 따라 상속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통일상속법(Uniform Probate Code)에서는, 유언자가 의도적으로 상속인을 누락시킨 것이 유언장에 분명한 경우가 아닌 한, 유언장 작성 이후에 혼인한 배우자도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상속분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떤 상속인이 유언장 작성 이후에 태어나거나 혼인을 했다는 사정이 유언의 효력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유언자가 유언장을 작성한 후 재혼을 하거나 새로운 자녀를 낳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유언을 철회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대법원 1998. 5. 29. 선고 97다38503 판결). 따라서 X와 Y는 A씨의 유언을 무효로 하고 자신들의 법정상속분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X와 Y는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있을까요? 유류분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①유언장을 작성할 당시에 추정상속인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견해와 ②반드시 유언장 작성시에 존재할 필요는 없고 유언자가 사망할 때 존재하면 충분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전자인 ① 견해의 경우 A씨가 유언장을 작성할 당시에는 X가 A의 배우자도 아니었고 Y는 태어나지도 않았으므로 추정상속인의 지위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 X와 Y는 유류분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반면 후자인 ②의 견해에 의할 경우 A가 사망할 당시에 X는 이미 배우자의 지위에 있었고 Y는 자녀의 지위에 있었다는 겁니다. 따라서 X와 Y는 유류분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한국 민법은 유류분 권리자가 되기 위한 요건을 피상속인의 직계비속과 배우자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제1112조) 그러한 지위의 취득 시점을 제한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②인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X와 Y가 유류분 권리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들이 청구할 수 있는 유류분 가액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A씨가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았다면 총 상속재산 270억원 중 X의 상속분은 90억원(270억원*3/9)이고 A의 자녀들인 C, D와 Y의 상속분은 각각 60억원씩(270억원*2/9)이 됩니다. 그렇다면 X의 유류분은 그 중 1/2인 45억원이고, Y의 유류분은 30억원입니다. 따라서 두 아들인 C와 D가 A의 유언장에 기해서 A의 재산을 모두 취득할 경우, X와 Y는 C와 D에 대해 각각 45억원과 30억원의 유류분반환을 청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A씨는 자신의 사망 후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유언장을 작성했지만, 되레 이 때문에 기존 자녀들과 재혼한 배우자·자녀들 사이에 분쟁을 만들게 됐습니다. 기존 유언장이 새로운 배우자나 자녀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면, 유언장을 변경하는 것이 후일의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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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