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이 북향으로 피는 까닭 [고두현의 아침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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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북향으로 피는 까닭
고두현
해마다
목련이 북향으로 피는 것은
햇살 잘 받는
남쪽 잎부터 자라기 때문이네.
내 마음
남쪽서 망울져 북쪽으로 벙그는 건
그대 사는 윗마을에
봄이 먼저 닿는 까닭이네.
---------------------------- 최근 새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제목은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입니다.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시집이라 마음이 쓰이고 면구스럽고 설레고 걱정도 되고 그렇습니다. 마침 목련꽃이 한창인지라 목련 시 두 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목련(木蓮)은 꽃 모양이 연꽃을 닮아서 목련, 은은한 향기가 난초 향 같다고 해서 목란(木蘭)이라고도 부르지요. 자세히 보면 꽃봉오리가 북쪽을 보고 핍니다. 대부분의 꽃이 해바라기하듯 남으로 피는 것과 다르지요. 왜 그럴까요. 따뜻한 햇살을 받는 꽃잎의 엉덩이 쪽이 먼저 부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향화(北向花)라고도 하지요.
목련은 꽃잎이 커서 한 그루가 꽃을 피우면 주변이 온통 환해집니다. 등불 같은 이 꽃을 볼 수 있는 기간은 불과 열흘 남짓이지만, 그래도 온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 덕분에 모두가 새삼 희망을 갖고 용기도 내 봅니다. 목련 관련 시 한 편 더 읽어드릴게요.
꽃자루에 꽃 하나씩 피는 목련
꽃 피는 데도 순서가 있다는데
네 끝에서 처음 피는 꽃과
내 속에서 마지막 피는 꽃이
물망초처럼 좌우 교대로 피는 순간은 언제일까.
우리 만나고 합치고 꽃 피우느라
이만큼 아래위 앞뒤 서로 부볐으니
이제는 누가 먼저 꽃씨 열매 품었는지
넌지시 속 보여줄 때도 되지 않았을라나 몰라.
그렇습니다. 자연의 이치는 오묘해서 봄꽃이 피는 데도 순서가 있지요. 혹한 속에 망울을 내밀기 시작한 동백부터 매화,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 등의 순으로 꽃잎을 터뜨립니다. 같은 지역에서도 양지와 응달에서 피는 순서가 다른데, 꽃대가 충분히 따스해져야 꽃눈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한 줄기에서 나는 꽃잎의 차례도 다릅니다. 이걸 ‘꽃차례’라고 부르지요. 꽃대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며 피는 것은 ‘무한 꽃차례’, 위에서 아래로 피는 건 ‘유한 꽃차례’라고 합니다. 꽃이 시차를 두고 피는 이유는 개화 시기를 늘리고 꽃가루받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봄꽃이 지고 나면 여름꽃이 피고, 늦더위 가고 나면 가을꽃이 피지요. 서리가 내리면 뭇 수풀이 시들고, 나뭇잎은 엽록소를 잃습니다. 서리가 내리는 때를 상강(霜降)이라고 하는데,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를 ‘무서리’라고 부르지요. 상강 무렵에 쓴 시 한 편도 들려드리겠습니다.
상강(霜降) 아침
발밑 어두운 줄 모르고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다
바삭,
서릿발
밟은 아침
아뿔싸,
지금
땅속으로
막 동면할 벌레들
숨어드는 때 아닌가.
이 시에 대해서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대신 이번 시집에 해설을 쓴 손택수 시인의 말을 옮겨 봅니다.
“인간과 비인간의 완고한 경계가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날렵한 감각이 돋보이는 시다. 그냥 서리가 아니라 하필 ‘서릿발’인 것은 서리를 밟는 일상적 행위가 타자의 발을 밟는 낯선 느낌을 환기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타자성은 자연스럽게 동면에 드는 벌레들의 처지에 대한 근심으로 이어진다. 나열된 일상의 포도를 밟는 습관이 ‘바삭’하는 순간적 경험과 함께 ‘아뿔싸’ 하는 성찰을 부르면서 ‘고개 빳빳이’ 쳐든 수직적 우월감으로부터 풀려나는 화자를 엿볼 수 있다.”
이상 새 시집에 관한 짧은 보고였습니다. 이 봄 기쁜 일, 좋은 일 많으시길 빕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해마다
목련이 북향으로 피는 것은
햇살 잘 받는
남쪽 잎부터 자라기 때문이네.
내 마음
남쪽서 망울져 북쪽으로 벙그는 건
그대 사는 윗마을에
봄이 먼저 닿는 까닭이네.
---------------------------- 최근 새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제목은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입니다.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시집이라 마음이 쓰이고 면구스럽고 설레고 걱정도 되고 그렇습니다. 마침 목련꽃이 한창인지라 목련 시 두 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목련(木蓮)은 꽃 모양이 연꽃을 닮아서 목련, 은은한 향기가 난초 향 같다고 해서 목란(木蘭)이라고도 부르지요. 자세히 보면 꽃봉오리가 북쪽을 보고 핍니다. 대부분의 꽃이 해바라기하듯 남으로 피는 것과 다르지요. 왜 그럴까요. 따뜻한 햇살을 받는 꽃잎의 엉덩이 쪽이 먼저 부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향화(北向花)라고도 하지요.
목련은 꽃잎이 커서 한 그루가 꽃을 피우면 주변이 온통 환해집니다. 등불 같은 이 꽃을 볼 수 있는 기간은 불과 열흘 남짓이지만, 그래도 온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 덕분에 모두가 새삼 희망을 갖고 용기도 내 봅니다. 목련 관련 시 한 편 더 읽어드릴게요.
꽃자루에 꽃 하나씩 피는 목련
꽃 피는 데도 순서가 있다는데
네 끝에서 처음 피는 꽃과
내 속에서 마지막 피는 꽃이
물망초처럼 좌우 교대로 피는 순간은 언제일까.
우리 만나고 합치고 꽃 피우느라
이만큼 아래위 앞뒤 서로 부볐으니
이제는 누가 먼저 꽃씨 열매 품었는지
넌지시 속 보여줄 때도 되지 않았을라나 몰라.
그렇습니다. 자연의 이치는 오묘해서 봄꽃이 피는 데도 순서가 있지요. 혹한 속에 망울을 내밀기 시작한 동백부터 매화,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 등의 순으로 꽃잎을 터뜨립니다. 같은 지역에서도 양지와 응달에서 피는 순서가 다른데, 꽃대가 충분히 따스해져야 꽃눈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한 줄기에서 나는 꽃잎의 차례도 다릅니다. 이걸 ‘꽃차례’라고 부르지요. 꽃대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며 피는 것은 ‘무한 꽃차례’, 위에서 아래로 피는 건 ‘유한 꽃차례’라고 합니다. 꽃이 시차를 두고 피는 이유는 개화 시기를 늘리고 꽃가루받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봄꽃이 지고 나면 여름꽃이 피고, 늦더위 가고 나면 가을꽃이 피지요. 서리가 내리면 뭇 수풀이 시들고, 나뭇잎은 엽록소를 잃습니다. 서리가 내리는 때를 상강(霜降)이라고 하는데,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를 ‘무서리’라고 부르지요. 상강 무렵에 쓴 시 한 편도 들려드리겠습니다.
상강(霜降) 아침
발밑 어두운 줄 모르고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다
바삭,
서릿발
밟은 아침
아뿔싸,
지금
땅속으로
막 동면할 벌레들
숨어드는 때 아닌가.
이 시에 대해서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대신 이번 시집에 해설을 쓴 손택수 시인의 말을 옮겨 봅니다.
“인간과 비인간의 완고한 경계가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날렵한 감각이 돋보이는 시다. 그냥 서리가 아니라 하필 ‘서릿발’인 것은 서리를 밟는 일상적 행위가 타자의 발을 밟는 낯선 느낌을 환기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타자성은 자연스럽게 동면에 드는 벌레들의 처지에 대한 근심으로 이어진다. 나열된 일상의 포도를 밟는 습관이 ‘바삭’하는 순간적 경험과 함께 ‘아뿔싸’ 하는 성찰을 부르면서 ‘고개 빳빳이’ 쳐든 수직적 우월감으로부터 풀려나는 화자를 엿볼 수 있다.”
이상 새 시집에 관한 짧은 보고였습니다. 이 봄 기쁜 일, 좋은 일 많으시길 빕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