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비례 의석 포함 175석), 조국당(12석) 등 개혁신당을 제외한 범야권이 180석을 넘겼다. 대통령 탄핵과 개헌을 빼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일반 법안 통과는 물론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릴 수도 있다.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할 수 있고,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 자리 대부분을 확보한다. 민주당이 응징을 외치는 조국당과 선명성 경쟁이라도 벌인다면 입법 폭주는 21대 국회보다 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력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 민주당이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글로벌 기술·산업 전쟁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고, 지정학적 안보 불안은 가중되고 있으며, 저출산·국민연금 등 국내 난제들도 켜켜이 쌓여 있음을 민주당도 잘 알 것이다. 원내 제1당이라면 미래를 보고 국가 현안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등 생산적인 국회로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있다. 고물가·고금리 여파로 내수 침체가 깊어지는 상황에서 저급한 퍼주기와 반(反)대기업, 부자 감세 프레임에 기댈 게 아니라 무엇이 진정 서민에게 도움을 주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지 냉철하게 살펴보길 바란다. 국민이 준 큰 힘을 규제 혁신과 노동 개혁 등에 쏟는 게 진정한 보답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민주당은 자체 역량, 비전으로 압승했다고 볼 수 없다. ‘비명횡사’로 상징되는 공천 불공정과 혐오스런 막말, 편법 대출 의혹 등 악재에도 승리한 것은 반윤석열 정서에 따른 반사이익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절제와 통합이 민의에 부합하는 길인데, 벌써부터 우려의 신호가 켜졌다. 조국당은 한동훈 특검법을 1호 법안으로 제출하겠다고 공언하고, 민주당 강경파도 여기에 동조하는 것은 물론 ‘김건희 특검법’, 각종 국정조사,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등에 대해서도 드라이브를 걸 태세다. 게다가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는 선거 과정에서 윤 대통령 탄핵 시사 발언을 수없이 쏟아냈다. 조국당은 윤 대통령 사퇴 결의안까지 낸다고 한다. 22대 국회 초반부터 작정하고 국회를 싸움터로 만들 판이다. 민주당은 비록 선거에는 이겼지만, 입법 폭주에 불안감을 가진 국민도 많다는 점을 유념하고 ‘한풀이 정치’와 선을 긋고 균형을 잡는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민주당은 정체성도 명확히 밝혀야 한다. 한·미 동맹 해체를 주장하고 간첩사건에도 연루된 극단 세력까지 손을 잡은 행태는 헌법 가치를 뿌리째 흔드는 것이다. 아무리 표가 급하더라도 대한민국 공당으로서 해선 안 되는 일이다. 이 대표가 평소 ‘유능한 안보 정당’이라고 해놓고, 가는 길은 반대라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나.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이 대표 강성 호위무사로 둘러싸인 명실상부한 ‘찐명당’이 됐다. 이를 더 두터운 사법 방탄으로 다시 활용하려 들고, 악성 진영 정치에 매몰된다면 수권정당이 될 자격이 없다. 선거 승리를 또다시 폭주 면허라도 받은 듯 여긴다면 민심은 언제든지 배를 뒤집을 것이다.